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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귀의 객이 됐을지도 모를 재중동포들이 익명의 후원자 도움 덕분에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들은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그분을 '귀향천사'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한국에 왔다가 병들거나 사고를 당한 동포, 거동조차 불편한 고령의 동포 등은 돈벌이는커녕 제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듭니다. 귀향 여비조차 없어 오도 가도 못한 신세가 된 이들은 각종 병으로 쓰러지거나 혹은 객사하기도 합니다. '코리안드림'의 어두운 그림자인 것입니다.

 

김해성(중국동포의집 대표) 목사가 지난해 방송에서 재중동포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습니다. 마침 방송을 들은 귀향천사(40~50대 여성)는 지난해 8월 30일에 500만원 후원을 시작으로 지난 4월과 12월에 각각 200만원과 500만원을 비롯해 모두 3차례에 걸쳐 1200만원을 (사)지구촌사랑나눔에 후원했습니다.

 

귀향천사의 후원으로 지난 6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모두 14명이 귀향했습니다. 60~70대 고령자가 대다수인 이들이 한국에 계속 발이 묶였다면 불귀(不歸)의 객(客)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에게 고향은 비록 가난한 땅이지만 그래도 가족이 기다리는 귀향의 땅입니다.

 

꿈에 그리던 조국, 그러나...

 

한국에 연고가 있는 동포는 친척 초청으로, 무연고 동포는 추첨과 한국어시험 등 험난한 관문을 뚫고 인천공항과 연안부두에 도착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짐 가방을 들고 꿈에 그리던 조국에 도착하지만 꿈에 그리던 포근한 조국은 아닙니다. '코리안드림'이 안기는 것은 희망과 기쁨이 아니라 냉대와 차별인 것입니다.

 

일제의 수탈과 굶주림을 피해 간도로 이주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처럼 낮선 땅이나 다름없는 한국에서의 생활은 고달플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조국은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열심히만 일하면 중국에서보다는 한몫 쥘 수 있는 '코리안드림'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식당 종업원, 간병인, 농장일꾼, 모텔종업원, 노가다 일꾼 등 한국인들이 꺼려하는 소위 3D 업종이 이들의 일터입니다. 업주들은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소통이 시원치 않은 동남아시아 사람들보다는 한 핏줄인 동포들을 선호합니다. 그렇게 밀어닥친 코리안드림의 거센 물결이 도처에 출렁거립니다.

 

돈 번 사람은 제법 벌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서 온 동포들이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습니다. 동포들은 임금체불과 산업재해, 사기와 폭행,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기 일쑤입니다. 한국인 노동자들도 이 같은 피해를 당하면 권리구제가 쉽지 않은데 동포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억울함을 풀지 못하면 원한이 되기 마련입니다. 피해를 당한 동포들은 사방팔방을 헤매다가 분노와 증오를 품고 불귀의 객이 되거나 심신이 망가진 채 귀향합니다. "고향을 꼭 찾아가 선산을 찾아보고 친척도 만나보라"는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찾아온 고국은 꿈에 그리던 포근한 희망의 땅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원한 대신 감사를 품고 귀향한 사람들

 

귀향천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원한을 품었을 동포들이 감사의 마음을 품고 귀향했습니다.

 

한국인 동료들의 폭행을 피하려다 추락 사고를 당한 40대의 현서은씨는 목발을 짚고 한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인해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못한 현씨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의 무료치료와 익명 천사의 도움 덕분에 분노와 원망 대신에 감사의 글을 남기고 고향 흑룡강으로 귀향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며 번 돈을 모두 중국에 보내고 또 다리가 상하여 병원치료를 받아보니 경제 형편이 어려워졌습니다. 이럴 때 선생님께서 배표를 사주시니 대단히 고맙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후 어디에 가서나 선생님처럼 어려운 사람들에게 봉사활동을 많이 하겠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돌아가서 고향 여러분들에게 한국에는 고마운 분들이 많은 우리 아버지의 나라라고 똑똑히 알려주겠습니다."

 

길림이 고향인 박재국씨의 사연도 눈물겹습니다. 1995년 한국에 온 60대의 박씨는 공사현장에서 일해 번 돈 2천만 원가량을 '오야지'에게 떼였습니다. 그런 판국에 간경화에 뇌졸중까지 덮쳤던 것입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중국동포교회와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에서 위로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고, 그 치료 덕분에 거동할 수 있게 됐습니다.

 

불법체류자인 그는 지난 6월 중으로 출국하면 재입국 기회를 주겠다는 법무부의 특별조치에 따라 귀국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렇게 여비 때문에 발걸음을 동동거리던 박씨는 귀향천사의 도움 받아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은 박씨가 남기고 간 감사편지입니다.

 

"불법체류자인 나에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출국기한은 다가오는데 여비는 없고 하여 많이 근심 걱정을 하였는데 고마우신 분이 집으로 돌아가게끔 여비를 대어준다니 마음속의 천근 무게를 씻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서 중국동포교회와 고마우신 분을 많이 선전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조호진 기자는 (사)지구촌사랑나눔 정책-홍보위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귀향, #불법체류자, #재중동포, #중국동포의집, #익명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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