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무리 인권 감수성과 역사적 성찰이 부족한 정권이라지만,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요? 일제고사를 거부한 아이들의 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해임과 파면이라니. 곧 교사가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사주해 시험을 강제로 막아 학습권을 침해했다고 '제멋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제고사가 사교육비 급등을 부추기고 초등학생들마저 입시 지옥으로 빠뜨릴 수 있는 반교육적 조치라며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수차례 소신을 밝혔고, 인터넷 신문과 아고라 등에 글을 올린 저는 파면을 넘어 구속감입니다. 일제고사의 부당성을 강조했더라도 아이들 모두 시험을 치렀으니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한다면, 단지 시험을 단호히 거부할 만큼 '머리 굵은' 아이들의 담임을 맡았다는 것이 파면의 이유라는 겁니까?

 

시험 당일 대학수능시험인 양 잔뜩 긴장한 나머지 땀을 뻘뻘 흘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내신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험 시작 1분도 안 돼 모두 '찍고' 엎드려 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시험은 아까운 시간 낭비이며, 종이 낭비이며, 나아가 멀쩡한 수업 시간을 빼앗은 셈이니 이야말로 진정한 학습권 침해입니다.

 

더욱이 적지 않은 학교에서 일제고사를 대비한 모의고사를 치렀다고 하니 교육 당국의 비호와 학교의 묵인 아래 아이들의 학습권이 이중 삼중으로 묵살된 것입니다. 왜 이에 대한 책임은 묻지조차 않는 것입니까?

 

교육에서 무리수는 체벌만 양산할 뿐입니다

 

아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열정적인 교사들이 느닷없이 쫓겨나고, 하루아침에 담임을 잃게 된 아이들의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시험 성적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일부 상류층, 그리고 그들의 '의식'을 맹목적으로 좇는 가엾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제외하면 일제고사가 남긴 생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단언컨대, 단 한 명의 아이라도 교육적 신념을 이유로 일제고사를 보지 않겠다고, 그 시간 '합법적인' 체험학습으로 대체하겠다고 요구하면, 설득력 있게 돌려세울 수 있는 교사는 없습니다. 단지 정부의 방침이다, 교육청의 지시다, 거부했다간 처벌이 따를 수 있다 등의 '으름장'만 늘어놓을 수 있을 뿐 '합리적' 이유가 원천적으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그 어떤 요구든 스스로 마음을 바꾸게 할 수 없다면, 곧 감화시킬 수 없다면 '교육'이 아닙니다.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보여줄 수 없으니 자꾸만 무리수를 두게 되고, 그것은 곧 비교육적인 체벌을 낳기 십상입니다. 교권보호법이니, 체벌금지법이니 하는 것들을 고민하기 이전에 교사들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교육하고, 아이들과 교감하며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양심'은 절대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와 교육청이 '시범 케이스' 삼아 휘두른 파면 조치는 전국의 모든 교사들에게 '영혼 없는' 꼭두각시가 되라는 공식적이고 굴욕적인 강요입니다. 교사이기 이전에 국록을 먹는 공무원이니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국가와 권력자를 동일시하는 군사정권 시절의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어김없이 동원되었습니다.

 

명령을 따를 수 없다면 교직을 그만 두라는 악의적인 공격도 이어집니다. 경제 위기 속에 능력 있는 젊은 '백수'들이 널리고 널린 요즘 배부른 소리 그만하라는 단순무식한 논리도 늘 그렇듯 등장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절망적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까닭입니다.

 

분명한 역사의 퇴행 속에서 성찰 없는 권력의 칼이 수많은 '양심'들을 난도질해대고 있지만, 순간 주눅이 들어 움찔할지언정 꺾이거나 스러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파면을 당한 한 젊은 교사의 눈물을 보면서, 그와 일면식도 없지만 마치 제가 파면 당한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맞선 그에게 우산이 되어 줄 능력이 없으니, 그저 그의 곁에 서서 함께 비를 맞아주고 싶습니다. 이런 '당연한' 외침과 함께.

 

"그 따위가 죄라면 나도 파면하라!"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일제고사, #체험학습 교사 파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