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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균 보건의료단체 정책실장
 우석균 보건의료단체 정책실장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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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와 똑같다. 연초에 추진하려다 여론의 반대로 무산된 의료 민영화를 이름만 바꿔서 다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의료 선진화 법안'들을 대운하에 비유했다. 대운하가 국민 여론의 반대에 부딪히자 이름만 바꿔 재추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4대강 물길 잇기 및 수계정비사업'에 빗댄 것이다.

우 실장은 "건강보험을 죽이고 민간보험을 늘리는 것을 보험업법 개정으로, 의료행위 제3자 알선행위를 의료법 개정으로, 영리병원 도입을 제주자치구 영리병원 도입과 경제자유구역 외국의료기관 설립 특별법으로, '주식회사 병원'을 만들려고 한 것을 의료채권법으로,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다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보험업법 개정, 의료법 개정, 의료채권 발행에 관한 법률 제정,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의료기관 등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 제정 등 외국영리병원에 대한 특례법 등의 법안들은 의료 관련 노조·시민단체로부터 '의료 민영화 4대 악법'이라는 명칭으로 통한다.

이 4가지 법안들이 결국 한국 의료제도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3대 제도인 의료기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전 국민 건강보험 의무가입제, 의료기관 비영리법인 지정제 등을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제도의 근간을 바꿔버릴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의료법 개정] 외국인 환자 유치 위해 알선도 하고, 병원이 호텔도 운영?

현행 의료법은 영리를 위한 환자의 유인 및 알선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개정안은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유인·알선행위를 허용하고, 이를 더욱 용이하게 하기 위해 병원이 호텔 등을 지어 관광숙박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동남아 등에 비해서는 한국의 의료수준이 높아 외국인 환자를 많이 유치할 수 있고, 이들 병원의 수익증대는 결국 의료장비와 시설 확충 등 의료산업에 대한 재투자로 이어져 전반적인 의료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의료법 개정 취지다.

그러나 이러한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 조치가 민영의료보험 도입으로 가는 전초 단계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알선행위가 허용되면, 민영보험사들이 외국인에게 의료보험 상품을 팔고, 이 보험사들이 국내 병원과 계약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재는 당연지정제에 의해 '국내 의료기관-국민건강보험'이라는 조합이 작동하고 있는데, 국민건강보험 가입 대상이 아닌 외국인이라는 의료 수요자가 등장하면서 '국내 의료기관-민영의료보험'의 조합이 추가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우려에 대해 "의료법 개정과 의료 민영화는 무관하다"며 "건강보험 민영화는 절대 추진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근간으로 한 의료제도의 틀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국내 환자의 역차별 문제도 있다. 해외에서 유치한 환자들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병원들은 내국인 환자보다 외국인 환자를 더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경우엔 외국인 환자가 왔을 땐 '빈 병실이 있습니다'라며 친절히 안내하고 내국인 환자에게는 '빈 병실이 없습니다'라며 문전박대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도 예상해볼 수 있다.

[의료채권법] 병원이 채권 발행... 병원을 시장으로 내모나?

의료법 개정안과 더불어 보건복지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법안은 의료채권법이다. 병원은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자금조달 방법이 금융기관 대출 등에 한정될 수 밖에 없고, 자기자본 이상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이 병원 경영과 장비·시설 확충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므로 의료채권 발행을 통해 이를 타개하겠다는 것이 법 제정 추진 이유다.

보건복지부가 제출한 '의료채권 발행에 관한 법률 제정안'에서는 상법상 회사채 형식으로 의료기관 순자산액의 4배까지 의료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의료채권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은 의료기관 개설, 의료장비 및 의료시설 확충, 의료인과 직원의 임금, 의학에 관한 조사연구 등에만 쓸 수 있도록 했다.

의료채권 발행을 위해서는 신용평가기관의 평가를 거쳐야 하므로, 의료기관 회계 투명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의료채권법 제정에 반대하는 의료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 의료채권 제도를 '병원을 시장으로 내모는 의료상업화법' 또는 '주식회사 병원법'으로 보고있다.

의료채권은 비영리법인이 발행하기 때문에 일반 채권처럼 높은 수익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성형외과 등과 같이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적고 수익성이 높은 특정과목으로 채권 발행 및 매수가 쏠릴 가능성이 있다.

투자자들이 재무구조가 안정적인 대형병원의 채권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은 것도 문제다. 중소병원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한 제도가 결국은 잘되는 대형병원만 더 잘되게 해서 중소병원과 격차를 더욱 크게 벌려놓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의료채권은 비영리 의료법인에 대해 사실상의 투자 유치를 허용하는 것으로, 거액의 자금조달을 하는 병원은 채권자들의 이윤을 위해 수익성 위주의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병원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이 법은 사실상 '주식회사 병원'을 만드는 전 단계가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경제자유구역 외국의료기관 설립] 영리병원, 첫발 떼나?

지난 10월에는 제주자치도에서 영리 의료기관 설립이 추진되다가 의료기관의 영리추구 경향 강화를 우려하는 도민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17일 열린 건강연대의 '제주도 영리병원 허용 중단' 요구 기자회견
 지난 10월에는 제주자치도에서 영리 의료기관 설립이 추진되다가 의료기관의 영리추구 경향 강화를 우려하는 도민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17일 열린 건강연대의 '제주도 영리병원 허용 중단' 요구 기자회견
ⓒ 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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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의료기관 등 설립, 운영에 관한 특별법'은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적정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기본 취지다. 쉽게 말해서 외국인들이 경제자유구역에 있는 외국의 병원과 약국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외국 의료기관에 대한 각종 혜택을 보장하는 것이다.

일견 경제자유구역의 활성화를 위해 당연한 조치인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국내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내용들이 있다. 외국 의료기관들의 한국 진출로 영리병원 설립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기관 설립 주체를 의료인과 비영리법인으로 제한하고 있다. 병원을 비영리법인으로 제한함으로써 의료 전반을 국가의 규제 하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리법인 병원이라면 대규모 적자 시 문을 닫아버리면 그만이지만 비영리 병원은 국가의 지원으로 의료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의료기관 설립을 비영리법인에 제한함으로써 병원이 시장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셈이다.

경제자유구역 외국의료기관 특별법이 통과되면 외국계 영리의료기관들이 제한적으로나마 국내에 진출하게 된다. 병원이 설립되는 지역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내국인 진료도 가능하다.

시민단체들은 경제자유구역 내에 생기는 외국계 병원을 필두로 해서 국내 병원도 영리법인화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여론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영리병원 설립에 대한 여론조성 작업이 계속돼 왔기 때문이다. 지난 10월에는 제주자치도에서 영리 의료기관 설립이 추진되다가 의료기관의 영리추구 경향 강화를 우려하는 도민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또 내국인도 외국계 병원과 약국을 이용할 수 있는 반면 이들 의료기관에 공급되는 의약품들은 국내의 안전성, 가격 적정성 등의 기준을 지킬 필요가 없어 국민 건강 관리에도 허점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르고 있다.

[보험업법 개정] 개인질병정보 보험사 제공, 일단은 막았지만...

금융위원회가 입법예고했던 보험업법 개정안은 건보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질병정보를 보험회사가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목적은 연간 2조원에 달하는 보험사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보험사기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면 현행 형사소송법이나 경찰 수사를 통해서도 범죄사실 확인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다. 이 개정안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개인 정보 유출 가능성뿐 아니라 법 개정으로 보험회사들에게 넘어갈 개인 질병정보가 결국은 보험회사의 보험상품 개발에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개인 질병정보 공유 시도는 현재 좌절된 상태다. 지난 9일 국무회의는 보험업법 개정안 중에서 개인질병정보 공유 부분을 삭제한 채 의결했다. 그러나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보건복지가족부가 반대할 경우 해당 조항을 삭제하겠지만 논의의 틀은 계속 열어놨으면 한다"고 말했다. 개인 질병정보 공유 논의가 언제든지 다시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복지위 전혜숙 의원 "의료법 개정안 많이 수정했지만 걱정"

이 4가지 법안 중에서 국회 상임위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끝낸 법안은 의료법 개정안뿐이다. 이 법안은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 과정에서 상당히 많이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소속 법안심사소위 위원인 전혜숙 의원은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알선행위를 할 수 있는 주체에 대한 제한이 없어 보험사가 뛰어들어 공보험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며 "보험사와 또 이와 유사한 금융기관, '보험'자가 들어가는 곳은 알선행위를 할 수 없도록 못을 박았다"고 밝혔다.

전 의원은 또 "외국인 환자 유치로 인해 국내 건강보험 수급자들이 역차별이나 홀대를 받을 우려가 있어, 전체 병상의 5%를 넘지 않는 선에서 외국인 환자를 받도록 법안을 수정하도록 부대 의견을 달았다"며 "또 병원이 호텔을 짓는 것 자체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부대시설 허용 부분을 아예 삭제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병원과 환자의 등록을 의무화해서 부실 의료를 방지했고,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광고도 국내에선 불허하고 해외에서만 하도록 했다는 것이 전 의원의 설명이다.

전 의원은 "법을 고쳐서 여러 가지 부작용들을 막으려고 애를 썼지만 의료 민영화의 물꼬를 터놨다는 점에서 걱정되는 부분도 있다"며 "법망을 빠져나가 엉뚱한 일이 벌어질까봐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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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MB악법, #의료 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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