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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건 아니에요. 왜 이 사회는 진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진실로 만드나요? 이런 식으로 성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처음이었어요. 제 의견 존중해주고 진정한 교육을 해주신 분은. 이게 공부라고 생각했어요." (길동초등학교 최혜원 교사에게 한 제자가 쓴 편지 중에서)

 

파면 3명, 해임 4명.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선택한 교사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가혹했다. 교사들은 짧으면 3년, 길면 5년 동안 강제로 학교를 떠나야 할 위기에 처했다.

 

11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서울시교육청 항의방문에는 이번에 중징계를 받은 교사들도 동참했다. 교사들은 "교과부와 교육청이 전체 학생들을 상대로 일제고사를 강제하는 것은 학부모와 학생들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험에 응하지 않을 자유를 박탈하는 것을 더 이상 교육이라고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송용운 교사(성서초교)는 "금품 수수하고 성추행한 교사에게는 솜방망이 휘둘러댄 사람들이 일제고사에 불참할 권리를 줬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상용 교사(구산초교)는 "나이 많은 세 교사는 파면시키고 젊은 친구들은 해임 조치를 내리는 등 징계가 굉장히 자의적"이라고 평했다.

 

 

본보기로 삼기 위해 징계 수위를 일괄 조정?

 

이번에 해임된 유현초교 설은주 교사의 학급에서는 일제고사가 실시된 10월 14일 29명 중 11명이 체험학습을 떠나려고 했다. 학생·학부모들은 설 교사를 통해 '일제고사를 희망하지 않는다'는 동의서와 체험학습신청서를 학교에 제출했다.

 

이러자 교감과 부장 교사들이 학부모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체험학습 중단과 일제고사 응시를 강요했다. 학교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 학부모들에게는 "부모가 잘못된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고 훈계하는가 하면, 학생의 할머니에게까지 불안감을 주는 뉘앙스의 전화를 걸어 집안 분위기를 발칵 뒤집어놓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체험학습을 떠나려던 학생 2명은 "오늘은 도서실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부장교사의 거짓말에 속아 어쩔 수 없이 일제고사를 치렀다고 한다. 용감하게 체험학습을 택한 학생들은 "얼빠진 녀석들이 놀러 간다니까 땡땡이나 친다"는 다른 교사의 모멸찬 언사를 전해 들어야 했고, 수업시간 중에 불려나가 경위서를 써야 했다.

 

학교는 교사가 일제고사에 대한 학부모들의 의견을 묻는 편지를 발송한 것도 명령 불복종으로 몰았다. 교사가 '가정통신문'을 발송하면서 학교장 결재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징계를 내린 이유를 납득할 수 없지만, 징계 수위도 너무 가혹하다는 게 교사들의 주장이다. 7명의 교사 중 누구는 파면되고 누구는 해임됐지만, 교육청이 이들을 본보기로 삼기 위해 징계 수위를 일괄적으로 짜맞춘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서명하는 교사는 인사상의 불이익... 하려면 해봐라"

 

교사가 된 지 2년을 갓 넘긴 최혜원 교사는 이날 기자회견에 오기 전에 이미 '인터넷스타'가 되어 있었다. 그가 교육청의 해임 통보를 받은 후 자신의 심경을 밝힌 글을 올리자 하루가 안 돼 3000여개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얻은 것이다.

 

교육청은 최 교사에 대한 징계를 내리기 전에 동료 교사와 학부모들의 탄원서를 받지도 않았다고 한다.

 

최 교사는 "나도 학생들 곁을 떠나기 싫어서 동료 교사들의 탄원서를 받았는데, 교장 선생님이 '이런 데 서명하는 교사는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교장협회의 공문이 왔다, 하려면 해봐라'는 말까지 하더라"며 "이런 분위기에서도 탄원서를 써주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징계위는 탄원서를 받지도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복직을 위해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이들은 기억에서 잊혀질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최혜원 교사는 "혹시 출근투쟁이라도 할까봐 겨울방학을 앞두고 징계를 결정한 것 같다, 방학이 끝나고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내가 아프고 피 흘리는 것이 쉽게 잊혀지 않을까"라며 영화 <호텔 르완다>의 대사를 인용했다.

 

영화에서 르완다 학살을 목격한 백인 종군기자 역의 호아킨 피닉스는 "사람들이 TV에서 이 장면을 본다면 너무 끔찍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저녁을 먹겠지"라고 말한다.

 

최 교사는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담임선생에게 감화되어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담임선생에게 닥친 비극을 지켜본 아이들은 어떤 교사를 꿈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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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전교조, #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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