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도 도시 풍경과 어울릴 수 있다?유럽의 중심 브뤼셀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풍경이다. 작은 언덕도 보이고, 떡갈나무 숲이 넓게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도 평지 숲이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휴경지가 늘어나는데 그곳에 숲을 만들면 자원도 조성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도 있겠는데. 언덕 위 군데군데 농가도 정겹게 보인다.
브뤼셀에 가까워질 무렵. 참 놀라운 풍경도 보인다. 도심 한 가운데 원자력발전소가 하얀 연기를 자랑하듯 뿜어내고 있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할까? 더욱 놀라운 것은 주민들과 합의를 하여 설치하고 가동한단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방폐장(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만드는 데 그 난리를 쳤는데….
유럽의 심장 .브뤼셀벨기에(België)를 유럽의 심장이라고 한다. 베네룩스부터 시작해서 EU(유럽연합)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도 있겠지만 지리적 위치도 한 몫을 한다. 해저터널로 영국은 1시간, 고속열차로 파리는 1시간 20분 걸린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EU본부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본부 등 1500개의 국제기구가 자리를 잡고 있다.
EU는 거대한 하나의 나라다. EU를 움직이는 주요 기구를 살펴보면 회원국 국가원수 등으로 구성되는 유럽이사회가 있고, 회원국의 소관부처 장관들로 구성된 각료이사회가 있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유럽의회와 회원국들로부터 독립된 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는 유럽집행위원회도 있다. 형식적인 연합형태가 아닌 법을 공통적으로 규정하고 회원국들은 EU의 규율에 따라야 하는 실질적인 연합 국가이다.
12개의 별로 시작한 EU는 현재 27개 회원국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국기에 새겨 놓은 별은 그대로 12개란다. 회원국이 늘어날 때마다 국기를 바꿀 수 없단다.
EU본부 건물은 날개를 셋 단 바람개비 모양이다. 특이한 건물형태다. 규모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처음에는 학교 건물로 사용되던 것을 일부 임대해 사용하다가, 조직이 점차로 커지자 건물 전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새로 지은 건물이 아닐지라도 유럽연합의 이미지를 기막히게 잘 살린 건물이다. 주변 일대는 의회건물 등 EU 운영건물들로 꽉 차 있다.
벨기에 독립을 기념하는 개선문벨기에는 스페인, 오스트리아,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네덜란드에 다시 합병된다. 하지만 신교와 구교 간 종교 갈등으로 1830년에 레오폴드를 국왕으로 옹립하고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이후 네덜란드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1839년 독립을 승인받게 되었다.
종교가 다르다고 서로 간에 갈등한다면 종교의 참뜻은 아닐 것인데. 전쟁도 하고 나라도 나누어지고….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독립 후 1840년대 유럽대륙에서는 처음으로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레오폴드2세 때 아프리카 콩고를 식민지배하면서 많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오게 된다. 이런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독립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개선문 건립을 하지만 자금부족으로 15년 후인 1905년 완공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개선문 아래에 섰다. 엄청나게 크다. 커다란 돌들을 반듯반듯 다듬어 세웠다. 가운데로 벨기에 국기가 늘어서 있다. 꼭대기에는 마차를 타고 달리는 힘찬 조형물을 얻어 놓았다. 양쪽으로 팔을 벌린 듯 박물관이 있고, 군사역사박물관으로 들어서면 개선문 위로 올라갈 수 있다. 기념문 위에 서니 아래로 공원과 어울린 브뤼셀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막힘없는 도시 풍경이 시원하기만 하다.
군사역사박물관은 벨기에의 얼마 안 된 역사지만 많은 군사유물을 모아 전시해 놓았다. 다른 건 그저 그런데 정교하게 문양과 글자를 새긴 칼에 관심이 간다. 하지만 전시된 칼과 총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모를 일이다. 군사박물관이 그리 기분 좋은 곳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있다는데….
브뤼셀 거리를 거닐며브뤼셀 도심 풍경은 친근하게 다가온다. 가로수가 잘 조성되어 있고, 적당한 언덕길도 자주 만난다. 도심은 적당히 차가 막히고 옛 건물과 현대적 건물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서울 남대문 주변 풍경이 연상된다.
벨기에 왕궁을 보러갔다. 울타리 너머로 나무하나 심지 않은 마당에 반듯한 건물을 세웠다. 참 단순한 느낌이다. 이게 왕궁이구나! 그러고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건물보다 아름답다거나 웅장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다. 생각보다 싱겁다.
차로 이동해서 대법원 광장에 내렸다. 대법원 건물은 둥근 첨탑을 위시해서 웅장하다. 광장에서는 고풍스러운 시내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이 나라도 법원 건물은 높은 곳에 있는가 보다. 법원 들어갈 일은 없겠지. 사실 이런 데 오면 들어가서 만져보고 해야 하는데 남의 나라에 와서 마음대로 행동할 수도 없고….
거리를 따라 걸었다. 도로는 넓지 않다. 양 옆으로 고풍스런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브뤼셀 거리 건물들의 특징은 회색빛이 많다. 처음에는 시멘트를 진하게 섞어서 조각도 찍어내고 커다란 벽돌도 만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석회석이 많아 부드럽고 조각하기가 쉬워서 돌로 외벽을 장식한단다. 그러다보니 새로 지은 건물도 고풍스럽게 보인다.
벽에 조형물을 아름답게 장식한 성당도 지나고, 군데군데 동상들이 서 있는 광장도 지난다. 우리나라도 건물 지을 때 예술품 일색의 조형물 보다는 설화나 역사적인 인물들을 활용해 역동적인 동상들을 세워주면 좋을 텐데….
도시는 깔끔하게 느껴진다. 들어가 보고 싶은 건물은 많은데 그냥 외관을 보면서 감동하는데 만족해야겠다. 한참을 걸어가니 왕관을 쓰고 말을 탄 동상이 보인다. 십자군 전쟁 때 이 지역 출신으로 전쟁에 참전해 예루살렘 초대 왕으로 추대된 고드프루아(Godfrey de Bouillon 1066~1099) 동상이란다. 동상은 시내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힘차게 달려 나갈 기세다. 벨기에의 짧은 역사를 생각하면 상당히 중요한 인물인 것 같다.
유럽의 중심에도 낙서와 부랑아는 있다현대적 건물인 미술관을 지나 계속 도심을 걷는다. 브뤼셀 거리는 낙서에 관대한 것 같다. 벽만 보이면 낙서. 동상에도 낙서. 작은 구조물에도 낙서. 근데 이 낙서들은 보기 싫은 것도 있지만 나름대로 잘 어울린다. 낙서도 하나의 예술?
미술관 광장에 바닥 석재 교체공사가 한창이다. 그라인더로 돌을 갈아대고 있다. 엄청나게 자극적인 소리와 함께 돌가루는 사방으로 날리고 있다. 사람들이 지나가든 말든 아랑곳 하지 않는다. 공사하는 인부는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돌가루를 뒤집어쓰고 있다. 먼지가 엄청 날린다.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아름다운 도시만큼 공사도 예술적으로?
벨기에를 부흥시켰던 레오폴드2세 동상을 지나 첨탑을 향해 걷는다. 동상에도 낙서를 해 놓았다. 낙서가 있건 말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히잡을 쓴 여자들이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동전을 달라고 한다. 왜 히잡을 쓴 여인들일까? 마음이 씁쓸하다.
작은 공원정도의 공간에는 부랑아로 보이는 남자들이 몇 달을 씻지 않은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여기도 부랑아들은 모여 다니나보다. 아! 아무리 도시가 깨끗하고 부유하게 보여도 있을 건 있구나.
깔끔한 건물. 잘 정리된 도시. 그 속에는 아름다운 모습만 있는 건 아니다. 구걸하는 사람도 있고, 노숙하는 사람도 있다. 먹고 살아가는 것. 브뤼셀이라는 도시에도 가장 인간적인 고통이 꿈틀거리며 살아 있다.
덧붙이는 글 | 11월 9일부터 16일까지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