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쟁의 폐허 속에서 '분홍바늘꽃'처럼 피어난 세계인권선언 60년이 된 어제(10일)는, 제 32번째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솜이불에서 파묻혀 있다 느직이 일어나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밤새 불려놓은 묵은 미역으로 쇠고기를 넣고 어머니께서 끓여놓은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올게 왔구나!' 기다리던 책이 도착한 것을 직감했습니다. 차가운 황소바람이 새어들어오는 현관을 빠져나가 책을 건네준 택배직원을 돌려보낸 뒤, 위드블로그에서 보내온 그 책을 조심스레 열어보았습니다.

 

자개장에 박혀 있는 화려한 꽃무늬처럼 오색빛깔과 짙은 분홍색 바탕을 발하는 책은, 바로 옛사람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어 온 옛날이야기를 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두루 즐길 수 있게 펴냈다는 '까마득한 이야기'의 첫번째인 <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였습니다.

 

책을 손에 들고 요리조리 살펴본 뒤, 한곳에 잘 놓아두고 이런저런 숙제를 마치고 저녁께 어머니께서 방앗간에서 맞춘 떡 케이크로 생일축하 노래를 듣고 돌아와 솜이불에 파묻혀 찬찬히 삼신할머니를 열어보았습니다.

 

 

아기를 점지해 주는 삼신할머니 이야기는 어렸을 적부터 들어왔습니다. 여름밤이면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전설의 고향>에서도 종종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헌데 삼신할머니가 어떤 신인지? 어디에 사는지? 어떻게 아이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어머니 뱃속에서 아홉달 열달이 되던 날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지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삼신할머니는 마마대별상(천연두)처럼 아이들을 해코지 하거나 하는 잡신으로부터, 뱃속의 아기와 어머니 다리 사이로 나온 아이를 지켜주는 자애롭고 할머니 등처럼 따듯한 신이라는 것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휘휭휭" 거리는 겨울밤 할머니 등에 엎혀 듣던 옛이야기 떠올라...

 

왜냐구요?

 

어머니께서 많이 고생하셨다고 하는데, 저는 소독내가 풍기는 병원 수술대 위에서 태어나지 않고 군불을 지펴 방을 따뜻하게 데운 안방에서 옛방식(자연분만)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7형제를 둔 할머니와 마을 온파 그리고 삼신할머니의 도움과 보살핌으로 세상속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할머니 등에 업혀 자란 저는 삼신할머니의 존재를 눈에 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지 않아도 잠결에 숨을 고르는 사이 알 수 있었습니다. 서천꽃밭에 푸른 꽃, 하얀 꽃, 붉은 꽃, 검은 꽃, 노란 꽃을 피워 아기를 바라는 어머니에게 점지해주고 금줄처럼 갓난 생명을 지켜주는 명긴국의 지혜로운 아가씨를 말입니다.

 

 

<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는 그 삼신아가씨가가 어떤 분인지, 제주도 <삼승할망 본풀이>를 바탕으로 옛풍의 삽화와 함께 '두두둥'하고 할머니가 손자에게 겨울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읊어줍니다.

 

동해용왕과 마음이 못난 용왕딸,  인간세상을 돌보는 하늘왕, 아기를 돌보는 구덕(바구니)삼신, 아기를 업어 키우는 업게삼신, 아기 똥산 기저귀를 빨아주는 걸레삼신, 아이에게 해코지하는 마마대별상 등 생명을 갖고 태어나는 아기와 관련된 신들, 급속한 산업화·도시화·서구화로 인해 각박해진 사람들의 마음과 마을에서 사라져간 전통과 풍습, 옛신들을 모두 만나볼 수도 있습니다.

 

황새가 보자기에 아이를 담아 날아다준다는 서양동화와는 다른,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고 생명을 얻는지 제주도의 역사와 신화 그리고 삼신할망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눈처럼 하얀 백설기를 만들듯 정성껏 엮어내고 있습니다.

 

"애애앵" 거리며 한창 두발로 서서 뛰어다니며 말썽을 피우기 시작한 "떼쟁이" 어린조카에게 읽어줄 만한 이야기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찬바람이 "휘휘휭" 거리는 겨울밤 할머니 등에 엎혀 옛이야기와 노래를 제가 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책도 다 읽었으니 조카에게 선물해야겠네요.  

 

아참, 삼신아가씨는 어머니께 어떤 꽃을 건네주신걸까? 궁금하네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

편해문 글, 노은정 그림, 소나무(2008)


태그:#책, #아기를주시는삼신할머니, #삼신, #구전신화, #생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