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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서 야쿠르트 아줌마 박순녀(40)씨의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2007년 겨울이었다.

 

"야쿠르트 아줌마 있죠? 얼마 전 봤는데 학교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더라구요. 낮에는 야쿠르트하고 밤에는 붕어빵 팔고.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은 정말 처음 봐요."

 

반가움에 그리고 호기심에 바로 찾아가보고 싶었지만 갑작스럽게 집에 일이 생겨서 그 해 겨울을 그냥 보내고 말았었다. 그리고 올해 겨울 다시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붕어빵을 시작했어요. 우리도 가끔 사먹는데 맛도 좋더라구요. 김기자님 잘 계시느냐고 묻던데요?"

 

일년 만에 다시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된 날 급한 마음에 우선 전화부터 들었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저 잘 지내고 있어요. 붕어빵 파는 게 뭐가 대단해서요. 저 말고도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녀의 겸손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전화 말미에 "저기요… 제가 아는 분이 너무 어려운 사정이 있어서요. 남편은 실명하고 아내도 장애가 있어서 살길이 막막한데…"라며 남의 걱정을 하는 것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매서운 한파가 한풀 꺾인 지난 12월 10일 저녁 경기도 성남의 한 대학교 앞에서 붕어빵을 팔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오늘은 날씨가 따뜻해서 너무 좋아요. 지난 금요일은 정말 추웠잖아요. 너무 추워서 그런지 길에 사람들도 뜸하고 붕어빵도 덜 나가더라구요."

 

건강상의 문제로 더 이상 야쿠르트 배달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그녀. 하지만 네 아이의 학비며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겨울 몇 개월 동안이지만 붕어빵 장사라도 해야 다음해 아이들의 학비며 생활비며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오전에 야쿠르트 하고 저녁에 붕어빵을 했는데 올해부터는 붕어빵만 해요.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하는데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에 하루 매상의 대부분을 팔게 되요. 가장 바쁜 시간이지요. 처음 붕어빵 할 때는 많이 팔 생각에 새벽 2시까지도 있어봤는데 생각만큼 팔리지는 않더라구요."

 

기자와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쉴 새 없이 붕어빵 구워내고, 팔기를 반복하는 그녀. 바람을 가릴 칸막이나 천막 한 조각이 없는 길거리 노점에서 하루 9시간씩 일하면서도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지난 10월 말부터 나왔어요. 그땐 날이 더웠잖아요. 날이 더울 땐 거의 안 나가더라구요. 날씨가 추워지니 이제 좀 장사하는 맛이 나요. 불황이다 보니 사람들이 값싼 간식거리를 찾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붕어빵은 오히려 작년보다 더 잘돼요. 잘 되는 날은 하루 20만원 치도 팔아요. 장사 마치고 돈 세는 맛에 고생을 잊는 것 같아요."

 

1000원에 3개를 주는 붕어빵을 20만원 치 팔았다면 600개의 붕어빵을 구워 팔았다는 말이 된다. 주변을 보니 그녀가 의지할 것이라고는 작은 의자 하나가 전부다. 그나마도 바로 옆 가로 판매대 언니와 함께 집에서 싸가지고 온 점심을 먹을 때를 빼곤 사용하지 않는단다. 취재를 하면서 그녀와 함께 단 한 시간 서 있었던 내 다리가 이렇게 뻤뻤한데 그녀야 오죽할까.

 

"다리요? 호호호. 기자님도 많이 아프시지요? 저도 아파요. 야쿠르트 배달할 때도 그랬는걸요. 이만하면 이력이 날 때도 됐는데 지금도 여전히 아파요. 집에 들어가면 긴장이 풀려 앓기도 하는데 그때 마다 애들이 밟아주고 그래요."

 

그녀는 한 가정의 실직적인 가장이며 네 아이의 엄마다.

 

"겨울 몇 개월 동안 이렇게 붕어빵을 팔면 내년 봄엔 애들 학교 보내는 일이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해서 일 욕심을 버릴 수가 없어요. 하지만 12월 19일이면 붕어빵 장사도 끝이네요."

 

19일이 무슨 날이기에 붕어빵 장사를 끝내느냐고 물으니 대학이 방학에 들어가는 날이란다. 대학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는 그녀는 대학생들이 방학을 하면 장사도 접어야 한단다. 붕어빵을 사먹을 학생이 학교에 나오지 않으니 더 이상 붕어빵을 팔수 없는 것이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 중이에요. 수강료 60만원 내놨는데 강의를 오전에 들을지, 붕어빵을 팔고 들어가서 밤에 들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내년에는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고. 자격증도 하나 가지고 있으면 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요양보호사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인다. 지금은 비록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매일 매일 열심히 살아간다는 그녀야 말로 이 세대의 또순이 엄마가 아닐 수 없다. 그런 그녀의 새해 소망은 뭘까?

 

"새해 소망이요. 그냥… 우리 아이들 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면 하는 게 소망이지요. 요즘 우리 막내딸이 사춘기가 왔는지 여간 톡톡거리는 게 아니에요. 언제 자길 사랑해 봤냐며 따지는데…. 호호. 제가 워낙 덤덤한 사람이라 애들한테 곰살스럽게 사랑표현을 잘 못하거든요. 애들 잘 자라주고, 저도 공부 잘 해서 요양보호사 되고. 그러면 더 바랄 없을 것 같아요."

 

저녁 7시 무렵 장사를 끝낼 시간이 되자 큰아들 대성(20)씨가 엄마를 마중 나왔다. 함께 장사를 마무리하고 비닐포장 덮는 그들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진다. 힘들고 어려워도 희망을 잃지 않는 그녀. 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녀는 누구보다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이며 또한 강한 가장이었다.

 

새해에는 그녀가 자신이 바라던 소망대로 요양복지사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만날 수 있기들, 그런 엄마의 소망처럼 착하고 밝게 자라고 있는 그녀의 아이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태그:#붕어빵, #불황,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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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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