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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두달 전 이랜드 문화제가 한창일 때, 내가 참여했던 이랜드 일반노조 노래패 ‘비상' 노래연습을 위해 복사했던 악보들을 다시 펼처 볼 기회가 왔다.
▲ 이랜드 문화제와 함께 한 악보들 한 두달 전 이랜드 문화제가 한창일 때, 내가 참여했던 이랜드 일반노조 노래패 ‘비상' 노래연습을 위해 복사했던 악보들을 다시 펼처 볼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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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악보집을 열었다. 한두 달 전 이랜드 문화제가 한창일 때, 내가 참여했던 이랜드 일반노조 노래패 '비상' 노래연습을 위해 복사했던 악보들이 가득하다. 노래패 언니들이  외우기 쉽도록 가사만 크게 프린트한 종이도 꽤 여러 장이다.

지난 11월 14일, 아프지만 행복하게 치렀던 이랜드 마지막 문화제가 끝나고 저 악보들을 버릴까 말까 고민했으나 차마 버리지 못했다. 다시 쓸 일 없어도 저렇게 여러 장씩 복사하고 프린트했던 시간들, 그때마다 느꼈던 마음들 악보 형태로라도 남겨두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저 악보집을 다시 펼쳐 볼 일이 생겼다. 이랜드 일반노조 노래패 '비상', 아니 이제는 홈플러스 노조 노래패 '비상'의 첫 노래연습을 하게 된 것. 그것도 공식으로 외부 단체한테 공연 섭외까지 받아 그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첫 노래연습 날짜는 8일, 이 날짜도 잡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언니들은 대부분 이날을 위해 '휴무'를 내야만 했다. 직장맘인 경우가 많아서 휴무 하루 쓰자면 고민이 많을 텐데 '노래 연습'을 위해 과감히 '휴무'를 내주셨다. 얼마나 고맙고 기쁘던지. 헤어진 지 한 달 만에 얼굴 볼 생각에 언니들 만나기 전 악보를 정리하는 내 마음은 설레고 또 설렜다.

500여일 만에 돌아간 일터 "2킬로그램이나 빠졌어"

한 사람이 말하면 저기서 "나도, 나도!" 하며 말을 이어받고. 수다가 끝이 없다. 이러다 노래연습 못하면 어쩌나 잠깐 걱정이 되다가도 이야기가 너무 생생하고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계속 빨려 들어간다.
▲ 오랜만에 마주한 언니들이 풀어 준 생생한 일터 이야기들 한 사람이 말하면 저기서 "나도, 나도!" 하며 말을 이어받고. 수다가 끝이 없다. 이러다 노래연습 못하면 어쩌나 잠깐 걱정이 되다가도 이야기가 너무 생생하고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계속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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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중에도 약속 시간 맞춰 다 모인 적 없었듯, 이날도 한 번에 다 모이기는 어려웠다. 특히 휴무를 내지 못한 한 언니, 원래 저녁 6시까지 근무인데 일이 밀려 8시 반이 돼서야 함께할 수 있었다. 이른바 'OT(오버 타임, Over Time)' 근무를 한 것. 언니들이 처음에 'OT'라고 할 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말하나? 잠시 헷갈렸던 내 자신이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렇게 한 명 두 명 오기를 기다리면서 언니들이랑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안 그래도 궁금했던, 500여일 만에 돌아간 일터 이야기. 굳이 묻지 않아도 언니들이 알아서 풀어 주신다. 일터는 같지만 일하는 분야가 달라서 이렇게 가까이 얼굴 대고 수다 떠는 건 거의 처음이라면서. 

"며칠 교육 받고 매장으로 첫 출근하는 전날 밤, 긴장해서 잠이 안 오는 거야. 다음날 6시 반까지 출근인데 밤 꼴딱 샜지. 그런데 일하면서 피곤하진 않더라고."

"처음 딱 매장에 갔는데 내가 뭘 해야 되나 '멍'했어. 이제 일한 지 보름 정도 됐는데 아직도 좀 서먹하고. 직원들은 대부분 그대로인데 전처럼 막 친하게 안 되네. 적응 시간이 필요한가봐. 그러다가도 매장에서 조합원 얼굴 보면 얼마나 반가운지. 쳐다보면서 손도 막 흔들고, 웃느라고 눈이 반달이 된다니까."

"하긴, 이제 다른 직원들도 전처럼 우리한테 막하지는 않더라. 밥 먹으러 가는 것도, 쉬는 것도 좀 자유롭고."

"그렇게 힘들게 싸우다 들어왔지만 그래도 회사는 회사야. 조금씩 애사심도 생기고, 열심히 하고 싶고. 이제 나도 익숙해져서 일도 잘해."

"어제는 퇴근하고 저녁 8시부터 아침 6시 넘도록 내리 잤어. 덕분에 고등학생 딸을 못 깨워서 얘가 지각했지. 내가 한 번도 안 깨고 죽 자니까 딸애가 놀리길, 엄마 죽었나 싶었대."   

"팔 다리 허리 안 쑤신 데가 없어. 집에 가면 무조건 뻗어.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집안일부터 해. 저녁에 퇴근하면 아무것도 안 하려고. 그래도 빨래랑 설거지랑 쌓인 게 한가득이야."

한 사람이 말하면 저기서 "나도, 나도!" 하며 말을 이어받고. 수다가 끝이 없다. 이러다 노래연습 못하면 어쩌나 잠깐 걱정이 되다가도 이야기가 너무 생생하고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계속 빨려 들어간다. 한 번씩 맞장구도 쳐가면서.

"난 요새 환청이 들려. '무조건' 노래 알지? 매출 1억씩 달성할 때마다 '무조건'이 나와. 12월 4일 그랜드 오픈하고부터 그러기 시작했어. 어제는 그 노래 아홉 번이나 나오더라고."

"우리들 복귀한 뒤로 매출이 오르고 그러면 좋은 거겠지?"

"어머, 오랜만이에요, 하면서 우리 기억해 주는 고객들도 있어. 오래 일하면 그런 고객이 생겨. 나한테만 사러 오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파업 투쟁 하느라 정말 애썼다고 진심으로 말해주는데 진짜 마음 찡하고 고마워. 눈물도 핑 돌고."

"그래도 '진상' 고객은 여전해. 특히 젊은 사람들이 더한다니까. 사람들 점심 먹으러 가서 한 번씩 혼자 자리 지킬 때가 있는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질 않나."

"계산대는 어떻고. 요즘 10만원 넘게 사면 바퀴 달린 장바구니 주잖아. 5만원 넘으면 그냥 장바구니 주고. 어떤 고객이 17만원 넘게 샀는데 계산하면서 갑자기 욕심이 생긴 거야. 바구니 두 개 다 받고 싶은 거지. 그래서 계산한 거 다 다시 취소하고 영수증 두 개로 다시 해 주는데 기다리는 고객들한테 얼마나 미안해. 다음 고객한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면, 그래도 뭐라고 하진 않더라. 오히려 시간 끈 고객더러 뭐라고 하지."

"상품 다 뜯어놓고 반품하러 오는 고객들은 어떻고. 장바구니 받으려고 일부러 물건 사고 반품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작정하고 온 사람들 못 돌려보내. 해 줘야지."

"다른 사람 물건 무게 재는 중엔 좀 기다리면 되잖아. 그걸 못 기다리고 막 뭐라 그래. 다른 물건 사고 다시 오세요, 해도 안 가고 서서 계속 뭐라는 거야. 휴∼ 속 터져. 그래도 어떻게 고객인데. 기다리느라 애쓰셨다고 웃으면서 귤 하나 까서 건네주면,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더니 또 괜찮다고 그런다니까."

"나 봐, 벌써 2킬로그램이나 빠졌어. 파업할 땐 살 쪄서 걱정이었는데…. 나이 들어 얼굴 살 빠지면 안 되는데."

"새벽에 농산물 까대기(그날 들어온 농산물 담긴 상자를 뜯어 진열대에 차리는 일)하려면 허리가 너무 아파."

투쟁 현장이 아닌 곳에서 '여전한' 언니들

천막에서, 홈에버 앞마당에서 자주, 하지만 떨리는 맘으로 불렀던 그 노래들을 다들 즐겁게, 언제 수다 떨었냐는 듯 정성을 다해 부르신다.
▲ 노래를 향한 언니들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천막에서, 홈에버 앞마당에서 자주, 하지만 떨리는 맘으로 불렀던 그 노래들을 다들 즐겁게, 언제 수다 떨었냐는 듯 정성을 다해 부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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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시간은 저녁 7시가 넘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언니들, 이제 노래 연습해요. 딱 한 시간만요. 전에 다 불렀던 노래니까요"하고 그 신나는 시간을 자르고야 말았다. 한 달 만에 하는 노래연습. 연습할 시간이 하루뿐인지라 모두가 아는, 전에 이랜드 문화제에서 불렀던 노래들로 준비했다. 전처럼 노래 연습하는 걸 좋아하실까, 이제 이런 거 재미없어 하진 않을까 내심 걱정도 했는데, 아니었다.

천막에서, 홈에버 앞마당에서 자주, 하지만 떨리는 맘으로 불렀던 그 노래들을 다들 즐겁게, 언제 수다 떨었냐는 듯 정성을 다해 부르신다. 언니들,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여전히 노래하는 거 즐거워하는구나. 잊어버리진 않았을까 걱정했던 노랫말들도 대부분 다 기억하고 계시는구나. 실내라 그런지 입을 모아 부르는 노랫소리는 왜 그렇게 곱고 힘차게 들리던지.

"와, 언니들 노래 너무 잘해요. 한 달 만에 부르는데 어쩜 그렇게 잘해요. 전보다 목소리도 더 좋아요."

그렇게 감탄을 하니까, "얜 늘 잘한대.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하고 웃어넘긴다.

"아녜요. 언니들도 잘 들어 봐요. 우리 목소리 진짜 듣기 좋아요."
"그래? 하긴 실내라 그런가? 잘 들리는 거 같긴 해. 우리가 전엔 바깥에서 부르니까 아마 목소리가 흩어졌나봐."
"날마다 고객 상대하면서 말을 많이 하니까 목이 트인 것도 같아. 전에 파업 투쟁할 땐 집에 가도 목 안 아팠거든. 그런데 지금은 날마다 목이 아파."
    

전에 연습할 땐, 한 번씩 힘주려고 노래 잘한다는 말 일부러 자주 했지만 어제는 진심이었다. 노랫소리가 정말 좋았다. 부르는 모습들도 정말 예뻤고. 게다가 이날은 보고 싶던 분들이 노래연습 장소, 마포에 있는 '민중의 집'으로 찾아오셨다. 바로 이랜드 일반노동조합 김경욱 전 위원장, 이경옥 부위원장님이다(두 분은 노사 합의안에 따라 '자진퇴사'하셨다).

이분들께 참 기쁜 소식을 들었으니, 바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제22회 인권상' 수상자로 '이랜드 일반노동조합'을 선정했다는 사실. 그 상을 받으려고 만난 두 분, 노래모임 있다는 소식을 듣고 행사 끝난 뒤 이렇게 발걸음을 해 주셨다. 상금은 모두 다른 투쟁 현장에 지원하기로 했다는 흐뭇한 이야기도 들려 주셨고.

이렇게 얼굴 본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는데 세상에, 노래 연습 마지막을 이 분들과도 함께 나누었다. 이경옥 전 부위원장님하고야 자주 불렀지만 김경욱 전 위원장님하고 이렇게 마주 앉아 노래해 본 건 처음이었다. 처음엔 수줍은 듯 주저주저하던 전 위원장님, 어느새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같이 부르신다.

노래 부르는 얼굴도 그 어느 때보다 따스하고 부드럽다. 약간 웃음도 지어가면서. 그런 편안한 얼굴 보기 정말 어려웠는데. 비록 노래 공연을 같이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짧게 몇 곡 같이 불러 본 시간, 잊지 못할 것 같다. 하긴, 잊어도 큰 문제는 없다. 다음에 또 같이 부르면 될 테니까.

고맙다 이랜드, 언니들 만나게 해줘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주는 '제22회 인권상' 수상자로 '이랜드 일반노동조합'이 선정됐다. 상을 받고 노래모임에 찾아 온 이랜드 일반노동조합 전 위원장, 부위원장님.
▲ 반가운 얼굴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주는 '제22회 인권상' 수상자로 '이랜드 일반노동조합'이 선정됐다. 상을 받고 노래모임에 찾아 온 이랜드 일반노동조합 전 위원장, 부위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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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노래연습도 하고, 반가운 얼굴도 만나고. 도저히 그냥 집에 돌아가기가 싫었다. 다음날 새벽에 출근해야 할 언니들이 있음에도, "제가 쏠게요. 우리 딱 한 잔만 하고 가요∼"하고 사람들을 부추겼다. 망설이던 언니들이 하나둘 "그래 딱 한 잔만 하자"며 내 요청에 흔쾌히 응답해 주신다. 그렇게 밤 열 시 넘어 우리들은 빈대떡 집에 들어가 소주랑 모듬전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출근한 뒤로 이 시간에 술 마셔본 적, 아니 술 자체를 처음 마셔본다는 이 언니들. 발개진 얼굴로 노래 연습 때문에 못 다한 이야기들 나누느라 정신없다. 그래도 걱정돼서 "언니, 내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괜찮으세요?"하고 조심스레 여쭤보면, "괜찮아" 하고 웃으며 대답해 주는 언니들.

전 같으면 더 같이 있자고 붙잡았겠지만 밤 11시 좀 넘는 시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만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나눈 소주잔은 너무 정겨웠다. 소주잔의 힘었을까? 헤어지기 전 우리들은 새해부터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노래모임을 하자고 마음을 모을 수 있었다. 이제 새로운 노래 좀 배워보자는 다짐까지도.  

김경욱 전 위원장님이 인권상과 함께 받은 저 꽃다발을 나한테 선물로 주셨다. 꽃다발 집에 가져가기 불편해서 주시는 거겠지, 생각되면서도 왜 그렇게 흐뭇하던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저 꽃다발을 안방 벽에 걸어놓았다. 저 꽃다발을 선물해 준 김경욱 전 위원장님, 이경옥 전 부위원장님 그리고 함께 노래를 나눈 홈플러스 조합원 언니들. 평소 '사람' 보단 '꽃'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온 나지만, 이날 만큼은 그들 모두 꽃보다 아름답게만 보였다. 

행복하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이렇게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다는 이 사실이. 오죽 행복하면 이런 생각까지 다 들까. 이랜드한테 고맙다는. 이랜드가 아니었으면, 그들이 그처럼 극악무도하게 노동자들을 탄압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과 내가 만날 수 없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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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랜드, #노동자, #비정규직, #홈플러스,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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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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