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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난한 시절에도 가족을 버리는 일은 천벌 받을 짓이었습니다. 하물며, 병든 가족을 버리는 일은 금수만도 못한 패악한 짓이었기에 송장 같은 병자와 방 안에서 한 솥밥을 먹었습니다. 지성(至誠) 말고는 별 다른 치료법이 없던 그 시절엔 말입니다. 그런데 돈 독 오르면서 인륜(人倫)은 저자거리에 내버려졌습니다.

 

조국이 그리워 한국에 오기도 했지만 정작엔 돈벌이를 위함입니다. 타국 땅의 그 지독한 가난을 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을 찾았습니다. 남의 신분으로 여권을 발급받기도 했고, 위장 결혼을 하기도 했고, 사채 빚을 얻어 브로커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한국에 왔습니다.

 

그런데, 함께 한국에 온 노부모가 자식이, 남편과 아내가, 형제와 자매가 덜컥 병들어 버렸습니다. 수월찮은 병원비도 캄캄하지만 그 보다는 병수발에 몸이 묶여 돈벌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암담하게 합니다. 그래서 눈물 머금고 중풍 든 아버지와 동생을 버렸고, 병든 남편과 자식이 속히 죽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오늘도 비정한 '코리안드림'을 태운 비행기와 선박이 인천공항과 연안부두에 도착합니다.

 

죽기 전에 들른 터미널 환자였습니다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외노의원) 306호실. 중환자실인 이 방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식물인간이었던 홍천학(64 중국 길림성 휘남현)씨가 손과 발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 손 인사를 할 정도로 호전된 것입니다.

 

홍씨는 아내 김명옥(60)씨와 함께 지난 2006년 2월 29일 한국에 왔습니다. 김치공장, 닭  농장, 돼지농장 등에서 일하다 임금체불까지 당했던 홍씨는 이 해 5월 전북 진안의 한 주유소의 안정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주유원으로 일하던 이 해 12월 16일 뇌출혈로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아내 김씨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전주, 김해, 부산의 병원을 전전했지만 호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가정부로 일해 번 돈도 거의 바닥이 났습니다. 여느 이주노동자 환자들처럼 돈은 떨어지고 오갈 데 없게 된 김씨는 남편을 데리고 지난 5월 26일 외노의원을 찾았습니다.

 

외노의원 관계자는 입원 당시의 홍씨 상태를 '터미널 환자'(임종을 앞에 둔 환자)였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죽기 전에 잠깐 거쳐 가는 환자였던 홍씨 얼굴에 홍조가 띄고, 눈짓을 하고, 누운 채로 손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고, 심지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돌 틈에서도 꽃이 피게 할 아내의 간병

 

"아주머니처럼 간병하면 돌 틈에서도 꽃이 필 것입니다."

 

김씨의 간병을 지켜본 외노의원 관계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24시간 남편 곁을 지키는 김씨는 한 눈 팔 새가 없습니다. 대변에 적셔진 기저귀를 갈아주고,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자세를 바꾸어 주고, 가래가 숨을 막지 않도록 수시로 석션 해주고, 식사 때가 되면 그린비아(환자용 의료식품)를 호수로 투입합니다. 그리고, 거의 매일 1~2시간은 휠체어에 남편을 태워 가리봉 일대를 돌며 운동을 시킵니다.

 

홍씨는 아내의 지극정성에 화답하듯 손가락을 움직이려 애썼고, 꿈틀거리는 손가락을 본 김씨는 마치 아이가 걸음마를 뗄 때처럼 격려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남편의 눈물겨운 투병 노력은 손가락에서 발가락과 눈짓으로 이어졌고, 손과 발을 움직이는 수준으로 호전된 것입니다.

 

배은분(47) 간호사는 홍씨가 현재 상태로 낫게 된 공은 전적으로 아내 덕분이라며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간병인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렇게 남편을 위해 혼신을 다하다보니 아주머니의 건강(위염)이 훼손된 것 같다"며 우려했습니다.

 

김씨의 걱정은 자신의 건강이 아닙니다. 외노의원의 도움 덕분에 병원비는 무료이지만 기저귀와 환자용 식품인 그린비아 구입비로 한 달에 40만원 가량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의 간병을 이유로 한국에 나온 작은 아들(37)이 간혹 공사현장에서 일해 번 돈으로 일부 충당하고 있지만 이 또한 자식에게 못할 짓입니다.

 

"늙어서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한국에 돈벌러 나왔는데 어쩌다가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있으니 미안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취업할 수 없는 비자로 나온 아들이 일하다 잡히면 강제추방 당할 수밖에 없는데…."

 

병든 식솔을 버려야 살 수 있다고 믿는 패악한 시대에 김씨를 지켜주는 힘은 '감사함' 입니다. 긴 병에 지쳐 신세를 탓하며 남편과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들을 치료해주고 기도해주는 그 손길을 위해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가 아니면 오갈 데 없이 길바닥에서 죽는 신세였는데 병원의 도움으로 이렇게 치료해주시니 환자도 나으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불쌍한 인생이지만 어서 나아서 저절로 다닐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뇌출혈, #재중동포,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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