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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피를 채혈해 담은 채혈백. 400㎖가 담겼다.
▲ 헌혈은 곧 생명나눔이다 남편의 피를 채혈해 담은 채혈백. 400㎖가 담겼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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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에서 피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피가 없는 육신은 곧 주검 그 자체다. 피가 곧 생명이다. 혈액 그것은 곧 생명줄이다.

헌혈하는 가는 남편따라 부산 서면으로!

적어도 석 달에 한번 정도는 꼬박꼬박 헌혈을 해오던 남편은 이번헌혈까지는 좀 길어졌던 것 같다. 지난 2월에 헌혈하고서 수개월이 지난 뒤에야 겨우 하게 된 것이다. 이곳 양산에는 헌혈의 집이 없고 인근도시 부산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게다가 시간이 나지 않아서, 혹은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등 이래저래 미루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지난달 30일,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헌혈도 할 겸 서점도 들릴 겸해서 집을 나섰다.

지난번에는 최상의 피를 공급해야 한다며 고기를 먹고 과일도 먹는 등 부쩍 신경을 썼다. 이번에도 기름기 있는 음식보다는 피를 맑게 하는 미역국이 제격이라며 내가 끓여놓은 미역국 한 그릇을 뚝딱 하고선 몸과 마음으로 단단히 준비를 하는 것이 꽤나 신경을 쓴다. 헌혈하기 전엔 적어도 수분섭취와 과음 및 과로를 피하고 적어도 72시간 동안은 아스피린이나 아스피린이 함유된 감기약을 복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들었다.

수혈받은 적 있는 나, 어지간히 뻔번스럽다.

부산 서면에서 내려 헌혈의 집을 찾았다. 지난번에 왔던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젊은이들이 많다. 남편은 먼저 헌혈자 기록카드에 이름과 주소, 주민번호 등을 기록하고 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갔다. 헌혈하기 전에 또 몇 가지 질문과 답변하는 과정을 거친다. 감기약이나 기타 약물을 복용했는지, 수술 받은 적이 있는지, 해외여행이나 과거 병력이 있는지 등을 묻고 맥박을 재고 손가락 끝에 피를 내어 몸 상태를 점검했다.

부산 서면 헌혈의 집 내.
▲ 헌혈의 집 부산 서면 헌혈의 집 내.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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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의 집.
 헌혈의 집.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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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이상이 있거나 좋지 않을 땐 헌혈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곧 접수창구에서 남편의 이름을 부르고 남편은 헌혈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간다. 스물다섯 번째 헌혈이다. 이번에는 나도 꼭 헌혈에 동참할 것을 남편이 권했지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나는 아직도 고개를 흔든다. "주사바늘이 무서워서"하며 "용기가 생기면 할게요"하고 둘러댄다. 나도 어지간히 뻔뻔스럽다.

오래전에 응급 수술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수혈을 받은 적이 있다. 한밤 중에 배가 아파 갑자기 병원 응급실로 갔던 나는 응급실에서 몇 가지 검사를 받고 링거 주사를 맞으면 괜찮을거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링거를 꽂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 아파와서 다시 재검사를 했고, 새벽이 밝아왔다. 나는 더 새파랗게 질린 표정에 아프고 춥고 핼쑥해져 갔다.

부산 서면 헌혈의 집입니다. 생명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 헌혈의 집 부산 서면 헌혈의 집입니다. 생명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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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하고 받은 것들.
 헌혈하고 받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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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자꾸만 내 몸속에서 빠져나가 내 몸은 마치 냉장고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점점 추워지다 못해 이가 닥닥 부딪칠 정도로 한기가 들고 안색이 새파래지는 긴급한 상황에서 수혈을 받아야 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헌혈은 남편보다 내가 먼저 솔선해서 해야 하는데 아직도 나는 미루고 있다. 남편은 주사바늘을 꽂은 채 침대의자에 누워서 채혈백에 피가 잘 들어가도록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남편의 팔에서 빠져나오는 피가 길고 좁은 고무호스를 통해 채혈백에 스며들어가고 점점 채혈백은 남편의 검붉은 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한 10여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400㎖ 용량이 가득 다 채워졌다. 남편의 피가 채워진 채혈백은 팽팽하게 부풀어 있었다. 남편은 자신의 피 한 방울이 죽어가는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헌혈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을 하곤 한다.

헌혈을 오랫동안 하지 않고 있을 땐, 헌혈을 해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생겨서 '헌혈하러 가야하는데'하며 마음이 앞서간다. 막 헌혈을 하고 나온 남편의 얼굴은 먹구름이 끼었던 하늘이 맑아지듯 개운해 보인다.

남편은 "당신이 산에 오르지 않으면 몸이 무겁다고 한 것처럼, 헌혈을 한동안 하지 않으니까 몸이 무거웠었는데, 하고나니 개운하네요"하고 말한다.

"헌혈을 할 때마다 새로 헌혈자 기록카드에 새로 기입을 해야하고, 또 몸 상태를 알기 위해 손가락에 피를 내야하고 다시 질의에 응답해야 해서 번거로울 텐데 괜찮아요?"
"응, 괜찮아요. 그때그때마다 몸 상태가 다르니까 체크를 해야 해요."
"헌혈 할 때마다 주사 맞는 게 안 아파요?"
"안 아파요. 예전에 처음 헌혈할 땐 따끔하게 아팠는데 이젠 느낌만 있을 뿐, 헌혈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하고나면 오히려 가벼워요."

헌혈을 하고 나와서 잠시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곧 헌혈자에게 주는 상품바구니가 나왔다. 음료수 캔 하나, 헌혈증서, 과자 한 봉지, 마이비카드(문화상품권, 영화예매권 등 택일)다. 남편은 헌혈하고 나서 받은 마이비카드를 내게 준다. "당신의 피 흘린 대가를 내가 받아도 되나요?"하고 묻자, "그럼"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 조그마한 것이 결코 작게 보이지 않는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생명사랑을 실천한 남편의 피가 든 값진 선물이다.

헌혈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보편화가 시급하다

부산 서면 헌혈의 집 풍경입니다.
▲ 헌혈의 집 부산 서면 헌혈의 집 풍경입니다.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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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엔 아직까지도 헌혈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이곳 양산에도 헌혈의 집이 없어서 부산까지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시간이 날 때 헌혈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혈액원 주소를 보니 각 시와 도에 하나 이상은 헌혈의 집이 있지만 중소도시엔 없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래저래 헌혈을 하고 싶어도 가까운 곳에 헌혈의 집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또한 헌혈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행위를 부르는 홍보가 많지 않아 헌혈에 대한 인식이 밝지 못한 경우도 허다할 것이라 생각된다. 물론 헌혈할 때 사용하는 채혈바늘이나 채혈백 등은 모두 무균처리 된 것이고 한번만 사용하기에 다른 병에 감염될 우려는 없다고 한다. 헌혈을 하면 혈액량이나 혈장은 24시간 내에 완전히 회복되고 적혈구도 수 주 내에 원상회복 되는데다 헌혈에 따라오는 보너스는 심장마비 위험이 적고(80%), 고혈압에도 좋다고 한다.

...!!!
▲ 헌혈 ...!!!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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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 나의 생명을 나누고자 할 때 그것은 다시 내게로 돌아옴을 기억하자. 지금 이 순간에도 수혈이 필요한 사람들이 사랑의 혈액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수술받기 위해 피가 필요한 환자와 혈액을 만들어내는 골수에 병이 생겨 수혈에 의해 생명이 연장되고 있는 재생불량성빈혈및 혈소판 감소증 환자와 백혈병 환자, 그리고 한번 출혈하면 피가 잘 멎지 않는 혈우병 환자 등 수많은 환자들이 우리의 헌혈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피, 헌혈한 혈액은 곧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이에 동참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남편이 대단해 보인다. 나와 나의 가족, 내 친척과 내 이웃이 그렇게 나의 혈액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들이 강도 만난 사람을 두고 그냥 지나쳤던 것처럼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 같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 것 같다.

'헌혈의 달인'은 못되더라도 나도 곧 동참해야 할 것 같다. 언제나 함께 따라나서지만 늘 뒤로 미루는 내 얼굴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 같다. 어둠이 물드는 거리로 다시 나왔다. 서면에 오면 가끔 가는 서면 시장 내 만둣집에서 칼국수랑 만두랑 먹고 서점 나들이를 하고서 다시 양산으로 향한다. 은빛으로 빛나던 낙동강은 전철 바깥으로 이제 어둠에 잠겨있다.

덧붙이는 글 | 헌혈에 대한 문의: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 참조(ARS:080-070-6100)



태그:#헌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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