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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장을 봐야하는데 오늘만 같이 가주시겠어요?"

"어딜 가는데 그래. 그냥 당신 혼자 다녀오지."

"평소 다니던 마트에 지난 11월 27일부터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한다는데 저 찜찜해서 다른 마트 찾아가려고요. 처음 가는 곳이라서 갈 엄두가 안 나는데 함께 가면 좋겠어요."

"어딘데? 미국산 쇠고기를 안파는 마트가 아직 있어?"

"좀 멀어요. ○○이 집 근처에 있다던데."

"뭐 ○○이네?"

 

남편 눈이 둥그레지더니 "아니,  꼭 거기까지 가서 고기를 사야해?"하고 묻습니다.

 

정말로 그 좋아하는 '꿈의 동산'에 안가냐고 놀려댑니다.

 

평소 주말이면 빠짐없이 가서 장을 봐오던 그 마트는 제 '꿈의 동산'이었어요. 백화점 하나 인근에 없는 동네에서 제가 다니던 마트는 단순한 마트를 넘어 일주일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이런저런 동네슈퍼에서 살수 없는 다양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곳 이었습니다.

 

재래시장에 가면 무얼 살까 허둥거리는 초보 주부인 제가 맘 편하게 이것저것 가격 따져보며 장 볼 수 있는 곳이었지요. 젖먹이 아이들 키우던 때엔 유일한 나들이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운전을 처음 배우면서 제일 먼저 연습한 곳이 마트 가는 길이었고, 아직도 직장이랑 집 그리고 아이 유치원 말곤 운전 잘 못하는 제가 맘 편하게 운전해서 찾아갈 수 있는 넓은 주차장을 지닌 곳이었습니다. 

 

전에 다니던 마트로 장 보러 갈 예정이었으면 투덜대는 남편에게 태워달라고 아쉬운 소릴

하지 않아도 될 곳이었습니다. 그런 마트를 두고 다른 곳을 찾아가자는 제 청에 남편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는지 가는 내내 투덜투덜 대더군요.

 

막상 힘들게 찾아가보니 마트가 아니고 대형건물에 입점한 슈퍼마켓이더군요. 친구네 가는 길에 간판만 보고 제가 마트라고 착각한 것이었지요.

 

결국 마트 쇼핑은 슈퍼마켓 쇼핑으로 급수정됩니다. 마트 가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는 남편은 차에 남고,  혼자 카트 운전하겠다는 8살 큰아이랑, 상상을 초월하는 떼쟁이 5살 작은 아이와 내렸습니다.

 

입구에 있는 문구점에서 작은 아이는 공룡을 사내라며 눕습니다. 큰애는 벌써 카트를 밀며 매장 안으로 들어가서 도너츠를 사달라고 외쳐댑니다. 장을 빨리 보기는커녕 작은애랑 씨름하느라 큰애 혼자 카트에 매달려 한참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결국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아직도 누워있는 작은 아이를 맡기고 큰애랑 매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동네 슈퍼에 가니 괜히 어색합니다. 아니 잘 다니던 익숙한 마트를 두고 낯선 매장에서 물건 고르려니 흥겹기보다 맘이 약간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만 아니면 익숙한 마트에 가서 대한민국 최저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했을 것을 생각하니 부아가 슬그머니 나려고 합니다.

 

인상적인 것은 야채코너의 야채들이 깨끗하게 다듬어져 포장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유코너에 대관령산 우유가 있다는 소릴 들었는데 마트에만 있는 것인지 아님 팔린 것이지 없어서 망설이니까 어느새 매장 안까지 들어와서  남편이 재촉합니다. 시장 조사 나왔냐고 뭘 그리 뒤를 뒤집어보고 고민하냐고 제주도에 있는 목장우유가 있는 것을 보고 혹시나 대관령산 우유가 있나 하고 잠시 머뭇거린 것인데 꾸물거리는 것이 질색인 남편이 마구 재촉합니다.

 

드디어 정육코너에 왔습니다. 평소 한우를 맘 편하게 사서 먹을 처지가 아닙니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주로 소고기를 살 일이 있으면 그냥 호주산 샀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산 쇠고기가 시중에 풀린 이후로는 소고기도 안 샀네요. 한우 살 여력은 없고, 수입육도 같이 싫어져서 아예 소고기는 살 생각도 안하고 갔는데. 한우 세일 중이더군요. 무려50%세일!!

 

물론 가장 싸다는 소고기 불고기감을 골랐습니다만. 1근에 1만 2276원이라니 눈 딱 감고 사기로 했습니다.  주물럭용 돼지고기랑 찌개용 돼지고기도 좀 사고, 닭조림용 닭고기도 샀네요.

 

물건에 따라서 약간 비싸다는 느낌이 드는 물건도 있더군요. 4890원에 샀던 계란 한판을 5320원에 팔더군요. 혹은 일주일 사이에 물가가 올랐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 정도는 감수하려고요. 교차감염의 걱정 없이 고기를 살 수 있는 곳이니 불만스러운 마음이 어느새 사라집니다. 

 

남편이 그만 가자고 해서 서둘러 필요한 공산품 몇 가지 더 후다닥 골라서 나왔네요.

 

나오며 적립카드도 만들고, 고객의 소리함에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하지 않는 매장이라서 특별히 찾아왔다고,  앞으로도 이용할 것이라고 간단히 쓰고 나왔습니다.

 

주차된 차를 빼고 나오는데 혼잡하더군요.남편이 또 한 소릴 합니다.

 

"몹쓸 곳이네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

 

다시는 오지 말자고요? 그러지요 뭐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불고기 반찬을 맛나게 요리해서 저녁식탁에 앉았습니다. 식사시간만 되면 이리저리 몸을 비틀던 작은 아이가 불고기 한 점 맛보더니 밥 한 공기 뚝딱 비워냅니다.

 

작은 입이 오물오물 밥을 먹는 모습을 보니,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밀려오더군요. 바라는 것은 이런 행복인데, 그저 안심할만한 먹을거리를 적정한 가격에 구입하여 맛나게 요리해서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는 것. 이 일상적인 행복마저 힘들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따뜻하고 행복한 식탁을 건강하게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며 힘을 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아고라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미국산소고기, #대형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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