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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재단 기후변화센터와 일본 시민단체 피스보트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아시아 민간교류 프로그램, 피스앤 그린보트가 11월 20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됐다. 한국측 300명, 일본측 300명이 함께 크루즈를 타고 아시아 주요 지역을 방문하는 피스앤 그린보트는 참가자들이 평화의 소중함을 재확인하고 환경친화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평가받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환경재단 기후변화센터와 함께 '피스앤 그린 피플'이란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본다. [편집자말]
변상철·박정이 부부 가족. 지난 10월 21일 남산한옥마을 공원에서
 변상철·박정이 부부 가족. 지난 10월 21일 남산한옥마을 공원에서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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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수입 250만원, 남편 월급이 전부다. 그럼에도 한사코 "우리는 정말 부자"라고 '우기는' 부부가 있다. 이들 부부의 '부자 비결'은 언뜻 '자린고비(?)' 같기도 하다. 버젓한 9인승 승용차를 놀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던가, 이웃에게 책이나 장난감을 물려받는다고 한다. 두 아이 모두 모유로 키웠고, 한달 평균 옷값, 물론 '제로'란다.

지난 10월 환경재단 기후변화센터와 <오마이뉴스>가 실시한 '우리 가족 그린 특종 공모'에 뽑힌 변상철(36)·박정이(37) 부부 이야기다. 일회용 기저귀를 쓰지 않으면서 겪은 불편함을 통해 오히려 가족을 돌아보고 그 소중함을 느낀 아빠의 '친환경 육아 일기'였다.

덕분에 첫째 아이 평화(5)와 둘째 온유(2) 등 변씨 가족은 현재 대한민국에 없다. 지난 20일 인천을 출발한 피스앤 그린보트를 타고 고베와 이시가키 등을 거쳐 지금은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 입항예정일은 27일, 다시 며칠 안에 변상철씨는 '피스앤 그린보트 승선기'를 <오마이뉴스>에 올릴 예정이다.

[우리 가족 그린 특종] 내 새끼 똥 냄새는 향기롭다더니… / 변상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82925

분유값, 의류비, 장난감 구입비 등 '제로'

'아빠' 변상철씨
 '아빠' 변상철씨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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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자마자 대뜸 가계부부터 공개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온통 암울한 소식이 지면이나 화면을 가득 채우는 요즘, 서민들이 불경기로 인한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그 '무엇'이 가계부에 담겨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허나 아쉽게도 가계부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분유값, 의류비, 장난감 구입비 등 일반적인 다른 가정의 지출 항목이 거의 없어, 가계부를 쓸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박정이 "두 아이 모두 분유 안 먹고 키우고 있어요. 다른 건 거의 다 얻어 써요. 사실 싫증나서 버리는 옷은 있어도 헤져서 버리는 경우는 별로 없잖아요. 장난감도 마찬가지구요. 저와 관련된 물건도 거의 사지 않아요.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옷도 이웃들에게 받은 거예요.

다만 대형 마트를 이용하는 대신 쌀을 제외한 식료품이나 생활용품 대부분은 무조건 한살림이나 생협을 통해 구입해요. 우리 가족은 밖에 나가서 밥 사먹을 일이 별로 없으니까, 한 달 식료품비는 20∼30만원이면 충분하더라구요. 가계부에 부담될 정도 금액은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아이들을 무슨 '별종'으로 키우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원하면 스낵 봉지를 안겨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준 먹을거리 선물도 기분 좋게 먹인다고 한다. "부모가 지향하는 삶을 아이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되도록 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설명만은 빼놓지 않지만, 또래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끔 찾는 것도 그래서다.

변상철 "패밀리 레스토랑 알 만한 나이가 됐잖아요. 뷔페식인 곳에서는 마음대로 골라 먹을 수 있는 해방감도 느낄 수 있고, 분위기도 좋고… 애들도 좋아하긴 하는데, 불편함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이 제재를 받잖아요. 마음대로 뛰어 다닐 수 없고 그러니까, 아직은 굳이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고 조르는 일 없었어요. 또 애 엄마나 내가 햄버거나 피자, 스파게티 같은 음식을 집에서 해주기도 하고… 가끔 미쳤을 때는 이탈리아 음식 도리아 같은 것도 만들어줘요(웃음)."

대중교통 이용 "힘들 때 있지만, 아이들 즐거워 해"

박정이씨와 둘째 '온유'
 박정이씨와 둘째 '온유'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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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점도 다른 가정의 일반적인 지출과 다른 부분이다. "오히려 불편한 점이 많고 운전하면 피곤한데다, 출퇴근길에 책이나 자료를 볼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아빠야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평화' 손을 잡고 '온유'를 업고 버스와 지하철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아내는 승용차를 이용하면 좀 어떤가. 헌데 남편 말처럼 박정이씨, "독한 여자"다.

박정이 "저, 운전면허 없어요. 어디 가려면 우선 마을버스를 타야 해요.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집에서 걸어가는데 7∼8분 정도 걸리죠. 아이 업고 안고 다녀야 하는데, 사실 그때 힘들긴 해요. 차로 이동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솔직히 들 때도 있죠. 헌데 그렇게 이동하는 버릇이 들다보니까, 아이들이 대중교통 이용하는 걸 훨씬 좋아하는 것 같아요.

승용차를 이용하면 집 앞에 세워놓은 차에 딱 타고, 목적지에 가서 내리는 것뿐이잖아요. 하지만 마을버스 탈 때부터 지하철에서 내려 목적지로 가는 과정 자체에서 관찰 대상이나 이런저런 호기심거리도 많아지게 마련이니까 더 즐거워하더라구요. 운전면허를 굳이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또 아이들과 같이 다니다보면 그만큼 시간이 더 걸리게 마련이고, 그래서 짜증도 몇 번 냈었는데…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면, 내가 좀 더 부지런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좀 더 일찍 서두르게 되고, 제 삶의 패턴도 달라지는 거예요. 불편함? 크게 없어요. 다만 유모차 이용이 좀 더 편한 지하철이 됐으면 하는 바람은 있죠."

이와 같은 '친환경 실천 가계부'는 부부의 '이력'을 알고 나면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하다. 대학 선후배 사이로 만난 두 사람, 박정이씨는 에너지시민연대와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했고, 현재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변상철씨 역시 '나눔의 집' 출신이다.

"여보! 요즘 같으면 백 만 원 갖고도 살겠어"

'평화'는 어느덧 다섯살이 됐다
 '평화'는 어느덧 다섯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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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것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저축액이다. 한 달에 '90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펀드를 하냐고 물으니까, "그런 것은 하지 않는다"고, "일확천금을 바라는 마음이 생기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것도 아니란다. 당연히 '그럼 나머지 돈은 어디 쓰나?'란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우선, 그들의 '엥겔지수(가계 지출 총액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는 남다르다.

변상철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둘만 여행을 가거나 따로 식사하거나 그런 기억이 거의 없어요. 사람들과 어울림으로 인한 지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죠. 2주에 한 번, 적게는 두 달에 한 번, 1박 2일로 어디 함께 놀러 가는 가족들이 있어요. 다섯 식구 정도?

회사 노동자, 운전 노동자, 제조업 노동자, 다양하죠. 그렇게 함께 어울리니까 애들이 속썩이거나 가정불화, 또는 경제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서로 힘든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겨요. 그분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해소할 기회가 마땅치 않더라구요."

박정이 "한살림이나 생협을 통해 식료품을 살 때는 아무래도 대량구매 형태가 돼요. 시장에서처럼 조금조금 살수는 없잖아요. 일단 양이 많으니까 다 소비하려면 아까워서라도 남을 불러야 해요. 거나하게 먹는 삶이 되는 거죠(웃음). 함께 어울리다 보니까 얻어 쓸 수 있는 것도 많아져요.

옷이나 장난감이나 무조건 주시더라구요. 새로운 소비를 하기보다는 있던 물건을 잘 물려 쓰고, 또 그 돈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고… 그렇게 함께 나눠 쓰고 하니까, 우리 가족 실제 수입은 월 350만원 정도 된다는 생각이에요. 그냥 우리끼리 살려면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겠지만요."

변상철 "(아내를 바라보며) 요즘 같아서는 백 만원 가지고도 살겠어(웃음)."

변상철·박정이 부부 가족
 변상철·박정이 부부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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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엥겔지수의 힘 "불경기니까 더 악착같이 쓰려구요"

괜한 허세는 아닌 듯하다. 굳이 이들 부부가 주민 자치 활동이 활발한 마포구에 정착했다는 '요량'도 그렇거니와, "그래서 남한테 백 만 원, 이 백 만 원씩 턱턱 내놨구나"하며 새삼 서로 툭탁거리는 모양새를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남다른 '엥겔지수'로 만들어진 여유를 여기저기 기부하거나 시민단체 회비로 충당한다. 이렇게 '거꾸로' 산 덕분에 그들은 삶의 법칙도 하나 터득했다고 한다.

박정이 "쓴 만큼 돌아와요. 이건 확실한 법칙 같아요. 이번만 해도 그래요. 처음으로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글이 '우리 가족 그린 특종 공모'에 뽑힐 줄 누가 알았겠어요(웃음). 아기 아빠가 실업자였을 때가 있었어요. 이런 식으로 살다 보니까, 봉투에 돈을 넣어서 '힘들지'하면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주변에 많았어요.

그래서 또 우리도 이렇게 도와줄 수 있고… 서로 밥 한끼 나눠 먹고, 나눠 쓰는 삶, 힘든 생활에서 서로를 지탱해주는 힘 아닐까요? 불경기라고 해요. 이럴 때일수록 주변 이웃들과 공동체적인 삶의 기반을 만들어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나에게 플러스가 돼서 돌아온다는 것, 이건 확실하니까요."

변상철 "사실 도시 삶이란 것은 아주 불안하잖아요. 도시 가스관 하나 잘못 망가져도 전체 가구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그런 시스템이죠. 그래서 작은 공동체적 삶을 고민하는 것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인간 관계, 돈으로 살 수 없는 거잖아요.

맞아요. 불경기죠. 악착 같이 더 쓰려구요. 2010년이면 실직자가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주위에 어려움을 더 살펴보고, 더 많이 나누려고 해요.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꼭 특별한 걸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끼리 저녁 잘 먹었으면 좋겠다'보다, '누구 불러서 같이 즐겼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살면 더 유쾌하고 덜 힘들 테니까요."

"가족이 오로지 여행에만 몰두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변상철·박정이 부부를 만난 것은 공모 발표가 있었던 지난 10월이었다. 오랫동안 인터뷰를 묵힌 이유는 이들 부부에 대한 관심이 변상철씨의 '피스앤 그린보트 후기'로 좀 더 많이 이어졌으면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

당시 변상철씨는 공모에 뽑힌 소감을 묻자 그는 "거의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며 "미안했다"는 말도 했다. "평생 친환경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응모까지 하게 된 데는 아내의 권유가 크게 작용했다. 박정이씨는 "남편이 쓴 육아일기에 큰 감동을 받았고, 그 감동을 나누고 싶어 응모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피스앤 그린보트 프로그램에 큰 기대를 드러냈었다. 남편은 "한 가족이 오로지 여행에만 몰두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며 "이렇게 가족 모두 다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이가 <천공의 성 라퓨타> 보면서 상당히 재미있어 했는데, 물에서 살아본다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면서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 삶을 비춰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아내는 "이제 아이들이 한강에만 배가 뜨는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될 것 같다(웃음)"면서 "아이들에게 보다 확대된 공동체, 보다 확대된 세계를 보여줄 수 있고,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서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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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에코, #친환경, #육아, #피스보트, #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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