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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해(2007년) 11월23일 송고한 기사가 잉걸로 채택된 지 1년 만에 130개 글이 정식 기사로 등록되었습니다. 오름은 하나도 없고 으뜸 하나, 버금 서른셋, 잉걸 아흔여섯, 생나무 아홉 개로 잉걸 기사가 80%에 가깝지만 나름대로 자부심을 느끼며 부족한 글을 애독해주신 독자와 편집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 동안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1월에는 2박3일 일정으로 강화도에서 열린 ‘제1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기초강좌’에 다녀왔고, 흰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현장취재 경험도 쌓았으며, 마음에 쏙 드는 예쁜 명함과 취재수첩도 받았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7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이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1년 동안에 130개 기사를 올렸으니 한 달에 10-11꼭지가 기사로 채택된 셈입니다. 하루에 한두 개씩 올리는 기자님에게 비하면 별것 아니지만, 한 달에 두세 개 올리는 기자님에게는 무척 많은 양이 되겠습니다. 

 

이곳저곳에 전화하고 날밤을 새워가며 작성해서 송고했는데 연거푸 생나무 처리된 기사가 눈에 거슬려 편집부에 요청해서 삭제했던 적이 있는데요. 이틀도 지나지 않아 생나무도 나의 소중한 발자취라는 생각이 들면서 후회가 되더라고요. 해서 그 후부터는 삭제 요청을 하지 않고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지난 6월25일부터 지금까지 44개 기사를 편집부로 송고했는데 생나무 처리된 기사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기사를 작성하게 된 배경과 의도, 글의 일관성, 신뢰성 등 중요하지 않은 게 없겠지만, 띄어쓰기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였던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시민기자가 되기까지

 

저는 지난 2001년 봄부터 <한겨레> 토론방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어느 누리꾼이 퍼온 게시물을 통해 <오마이뉴스>를 알았습니다.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형식이 <한겨레>와 다르고, 문장력이 뛰어난 누리꾼들과 정치인, 학자, 주부, 공무원 등 다양한 부분에 종사하는 분들이 참여하고 있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현장감 넘치는 정보와 아픈 역사의 상처를 전해주었던 박도 기자님과 아련한 향수를 떠올리게 했던 송성영 기자님의 사는이야기 기사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데요. 마음을 사로잡는 문장력과 아스라한 추억을 떠오르게 해주는 시민기자님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작년 11월 가입하기 전까지는 스카우트 아니면 선발이 되어야 시민기자 자격을 부여받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2001년부터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기사에 댓글을 달면서도 그렇게 알았거든요.   

 

2006년부터는 4년 동안의 민중의 소리 블로거 활동을 접고 <오마이뉴스>에 블로그를 개설해서 글을 올렸는데요. 생각지도 않은 사건이 터졌습니다. 작년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오마이뉴스> 모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는데, 사이버수사대에서 제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으면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며 난처해하는 것이었습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에 관한 글이었는데요. 뉴스에도 보도되었고 박사모 게시판에도 몇 차례 오른 내용이라서 어이가 없었지만, 제 정보를 알려주라고 했고 10월에는 서울 종로경찰서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부산에 살면서 서울에까지 올라가 조사를 받고 나니까 글을 계속 써야 할지 갈등이 생기더군요. 아내가 알면 걱정할 것 같아 말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벙어리 냉가슴 앓듯 지냈습니다. 

 

그래도 대선을 앞두고 있던 때라서 몇 개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기사로 채택된 기사 원고료가 사이버머니로 적립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어 ‘테마가 있는 나만의 여행’ 기사 응모 소식을 듣고 ‘통일호 열차를 타고 떠난 여행’과 ‘땅끝마을 해남여행기’ 두 편을 편집부로 송고했습니다. 둘 다 잉걸로 올랐는데요. 훗날 생각하니까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속담이 딱 어울리는 짓을 했더라고요.   

 

잉걸 기사가 80%에 육박하고 독자들 반응도 신통치 않았지만, 아내와 딸, 형제들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작성했다고 자부합니다. 촛불문화제 현장 취재와 이미지 작업 요령을 터득한 것만도 자랑스러운 일이고요.

 

 

저는 <오마이뉴스>에서 채택된 130개 기사는 물론,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언론사나 게시판 등에 올린 글들을 베스트셀러 못지않게 보관해오고 있습니다. 졸필이지만 제가 걸어온 소중한 발자취이니까요. 지금도 심심할 때는 예전 글들을 보는데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이렇게 잘 쓰던 때도 있었나?’ 하고 놀라기도 한답니다.

 

기사공모 채택에 대한 의견

 

끝으로 성향이 다양하고 수준이 다른 시민기자들 활동이 더욱 활발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오마이뉴스>가 시행하는 기사공모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기자회원 가입 1년의 소회를 마칠까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생활에 양념이 되는 이야기와 경험담을 중심으로 기사를 공모해서 우수작을 올린 시민기자에게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씁쓸했던 '차별의 기억'(응모 기간: 2008년 11월11일∼12월8일)과 ‘가족에게 길을 묻다’(응모 기간 : 2008년 11월6일∼12월1일)를 주제로 기사를 공모하고 있는데요. 

 

특별 원고료를 지급하는 기사공모는 인터넷 언론사에 기록될 의미 있는 행사라 여겨집니다. 저도 참여에 의미를 두고 몇 차례 응모했으며 언젠가는 선택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는데요. 저 같은 잉걸 전문기자에게 꿈을 안겨주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착상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문제는 더욱 많은 시민기자가 참여해서 함께 호흡하는 방법, 즉 운영의 묘가 관건이 되겠는데요. 우수작 선정을 지금까지 해온 방법의 기본은 유지하되 선정 폭에 변화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기사공모 우수작은 독자의 호응도와 기사 배치 등을 고려해서 뽑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잉걸-버금’, ‘으뜸’, ‘오름’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눠 시상하든가 ‘오름-으뜸’, ‘잉걸-버금’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도 좋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심사위원들이 기사 수준에 맞는 간단한 평을 곁들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시민기자들 기사를 분석해보면 오름과 으뜸 기사가 위주거나, 버금과 으뜸을 오가는 기자가 있으며 저처럼 잉걸이 전문인데 어쩌다 버금 기사가 보이는 기자도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기사공모에서 누가 영예의 주인공이 될 것인지는 안 봐도 비디오 아니겠습니까. 꿈에 떡 얻어먹는 식으로 잉걸 전문 기자가 수상하는 예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 얘기의 알갱이는 더 많은 시민기자들이 부담 없이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수상 폭을 넓히자고 제의하는 것이니 참고했으면 합니다.

 

부족한 글을 애독해주시고 댓글을 달아주신 누리꾼과 시민기자님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며 <오마이뉴스>의 무한한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태그:#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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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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