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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통에서 꺼낸 편지
 우체통에서 꺼낸 편지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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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앞을 지날 때마다 문득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우체국 창가엔 햇살이 따뜻하고 그곳에 앉아 왠지 모를 애틋함과 그리움이 담긴 글을 쓸 것만 같았던 시절.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우표가 궁금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보낼 엽서도 사지 않는다. 그저 급한 서류를 등기 속달로 보낼 일이 있거나 돈이 필요할 때 예금을 찾으러 갈 뿐이다.

대전 유성구 송강동 구즉우체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시화전
 대전 유성구 송강동 구즉우체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시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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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들이 바쁘고 건조해서 가슴팍에선 낙엽 으스러지는 소리가 날 지경인 요즘, 동네 우체국 한켠에 작은 펼침막이 눈에 띄었다. '우체통에서 꺼낸 편지'라니 아, 정말 그럴 때가 있었다. 밤 새워 편지를 써 놓고 우체통 앞에서 넣을까 말까 주저하던 날들. 용기를 내서 우체통 안으로 넣어버린 편지가 새삼 너무 후회가 되어 우체부아저씨가 언제 편지를 걷어갈지 내내 조바심쳤던 그 시절.

초겨울 날씨가 제법 쌀쌀하고 바람까지 분다. 우체국 앞의 은행잎은 이제 바닥을 노랗게 물 들이고 겨울나무로 서 있다. 가을은 언제 갔는지 성큼 추워진 날씨가 못내 서운타.

동네 미술학원에서 빌려온 이젤위에 작품을 올리고.
 동네 미술학원에서 빌려온 이젤위에 작품을 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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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 칠성면이 고향인 할머니 얘기를 <봄동>에 싣고.
 충북 괴산군 칠성면이 고향인 할머니 얘기를 <봄동>에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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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판위에 한지를 붙여 시화를 만든 작품이 창문에 걸려 있다.
 둥근 판위에 한지를 붙여 시화를 만든 작품이 창문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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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쉬움을 위로하듯 동네 우체국에서는 작고 소박한 시화전이 열렸다. 대전 유성구 송강동 구즉우체국에서 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열렸던 엽서시동인 초대시화전이다. ‘우체통에서 꺼낸 편지’라는 큰 제목은 들고 나는 손님들 마음에 한 줄기 따스한 그리움으로 조용히 전해질 듯하다.

벽에 걸린 시화들.
 벽에 걸린 시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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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동 주민(김열)의 시가 걸려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송강동 주민(김열)의 시가 걸려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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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근처 미술학원에서 빌린 이젤위에 놓인 시화들.
 우체국 근처 미술학원에서 빌린 이젤위에 놓인 시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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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첫 출근>
 시 <첫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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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부터 안에까지 군데군데 놓여진 작품들은 김규성 시인을 비롯해 박원희 배병무 이종수 시인 등 ‘엽서시동인’들의 글로 꾸려졌다. 김규성 시인은 현재 구즉우체국에 근무하면서 틈틈이 글을 쓴다고 한다. 작품을 올린 이젤은 동네 미술학원에서 빌려왔고 우체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시화전이란다. 시화전을 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은 무심할 정도라고. 그러나 우체국 안으로 들어오면 뭔가 감성을 깨우는 색다른 분위기를 온 몸으로 느낄 것 같다.

엽서시 동인에서 달달이 펴내는 '엽서시'와 시집<날짜인을 갈면서> 등의 귀한 시집을 받고.
 엽서시 동인에서 달달이 펴내는 '엽서시'와 시집<날짜인을 갈면서> 등의 귀한 시집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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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집 <날짜인을 갈면서>에서는 우체국에서 일어나는 풍경들을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 시인은 우체국에서 날마다 틀림없이 날짜를 갈아야 하는 일을 하면서 ‘와이셔츠 공장 아주머니의 실밥 묻은 적금이 마지막 손님으로’ 다녀가는 모습을 애틋하게 바라보기도 하며, 소포를 부치러 온 할머니 얘기를 <봄동>이란 시로 형상화시킨다.

우체국의 소박한 전시를 보면서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가 자연스럽게 입 속에서 뱅뱅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되는 글에는 우체국과 연관된 우표, 전보, 편지 같은 단어가 아련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우체국에 와서 편지를 부치거나 전보를 치는 대신 핸드폰이나 전자메일, 택배의 편리함을 이용한다. ‘행복’이란 시는 요즘 세상에 그래서 더 애틋하다.

오늘은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편지 한 장 쓰고 싶다. 그리고 '우체통에서 꺼낸 편지'를 두 손에 받아들고 다시 고쳤어야 할 사연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우체국,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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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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