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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에서는 한 여자가 ‘놀아요. 놀아요’라며 아기 같은 목소리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르더군요. 경찰차가 골목 중간에서 멈추네요. 그랬다가 근처 건물에서 무엇을 확인하더니 다시 가네요. 이곳은 용산 집창촌 골목, 법과 불법이 공존하는 곳이지요. 이 골목에 전국노조여성연맹 사무실이 있지요. 지하철 차량기지 청소용역 지부장 이덕순씨(59)를 기다리며 본 풍경이었습니다.

폐지를 잔뜩 실은 수레가 지나가네요. 그 앞에 불이 켜져 있네요. 빈민과 성노동자, 가슴 시린 서울의 모습입니다.
▲ 집창촌 골목을 지나가는 폐지 수레 폐지를 잔뜩 실은 수레가 지나가네요. 그 앞에 불이 켜져 있네요. 빈민과 성노동자, 가슴 시린 서울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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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내린 20일 오후, 그러나 그다지 낭만이 있지는 않았지요. 다시 따뜻해진 날씨에 눈은 비로 바뀌어 오락가락 내렸고 날씨는 우중충했지요. 현 정국과 맞물려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지요. 얼마 안 있어 이덕순씨가 골목에서 나타났고 사무실로 같이 들어갔지요. 그녀는 교육을 받고 돌아오는 길이었지요.

남성화장실에서 여성청소원, 자연스러운 일상?

이덕순씨를 찾아간 이유는 다름 아닌 여성청소원 때문이었어요. 어디를 가나 남성화장실에 여성청소원이 들어오셔서 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지요.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기에 이용하는 남성들은 무디어 졌지요. 옆에 여성이 있든 말든 지퍼를 내리고 소변을 보지요. 수많은 남자들이 지퍼를 내리고 일을 볼 때 곁에서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닦는 여성청소원을 보면서 ‘이건 진짜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제가 여성화장실에 들어가서 청소를 한다고 생각을 해보았지요. 가슴이 꽉 막히더군요. 남성화장실에 여성이 들어가서 청소를 시키는 일은 심각한 인권침해지요. 일상이 되었기에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있지요. 그 무감각이 무서워 이덕순씨를 찾아가 남성화장실에 들어가는 여성청소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습니다. 

- 위치가 묘하네요. 집창촌 골목에 전국노조 여성연맹.
"다른 데에 비해서 싸요. 그래서 처음에 옮겼을 때 덩치 큰 사람들이 왔어요. 자기들 일 방해할까봐. 그런데 우리는 다른 일 한다고 얘기하자 그 다음부터 안 오더라고요."

-남성화장실에서 일하는 여성청소원들의 심정은 어떤지요?
"저도 화장실 청소를 해봤지만 남성화장실 남자가 하면 편하겠다고 느껴요. 남자목욕탕에 여자가 안 들어가잖아요. 화장실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무디어져서 그렇지 처음에는 엄청나게 수모를 느꼈어요. 잘못된 일이지요. 제대로 인원배정을 해서 남성화장실에는 남자가, 여성화장실에는 여자가 청소를 해야 하는 게 맞는 일이지요."

“개선해달라는 목소리 낼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

-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여성이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지 않게 해달라는 청원이 배부른 소리처럼 되었어요. 개선해달라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에요. 갈수록 자리 지키기도 어려운 실정이에요.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어요. 구조조정 한다고 하지, 민영화 외치지, 자꾸 옥죄어오는 걸 느껴요. 2년 전만 해도 이런 요구가 들어지지는 않을지언정 그런 말을 해도 되는데 지금은 위기감을 느껴요. 이런 것도 없으면 못 벌어먹는 사람 많다고 생각하니 참게 되지요." 

아닌 건 아닌거죠. 어떻게 저 사진과 같은 일들이 일상이 되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걸까요. 무뎌진 사람들의 무감각이 무서워지네요.
▲ 이 모습,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닌 건 아닌거죠. 어떻게 저 사진과 같은 일들이 일상이 되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걸까요. 무뎌진 사람들의 무감각이 무서워지네요.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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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원 중에 인권침해라고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사람 없나요?
"이제는 경제가 어려우니 토로하는 사람이 정말, 한 사람도 없어요. 힘들어도 말도 못 꺼내게 되었지요. 관리자에게 잘 보여야 하잖아요. 비위를 건드릴 수 없어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지요. 지하철도 용역을 주고 나 몰라라 하지요. 비인간적이지요."

- 위정자들이 조금만 관심 가져주면 이러한 비인간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텐데요.
"예산 편성을 늘려서 남성 청소원을 더 고용하면 좋겠지만 어려운 일이지요. 현실적으로 문 잠가 놓고 하면 되지요. 그러나 수시로 사람들 써야 하니까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청소중이오니 잠시 양해바람’ 이런 팻말 붙이고 잠깐 출입 통제하여 청소를 해도 되는데 그렇게 안 하고 있지요. 여자들 청소하는데 남자들 그냥 들어가고 있어요.

청소는 부끄럽지 않고 당당한 일이지요. 그런데 비인간적으로 몰고 가고 있어요. 돈이 전부가 아닌데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어요. 인간이기에 인간답게 살아야 하잖아요. 물질로 사람 평가하지 말았으면 해요. 정치하는 사람들과 특히 언론에서, 언론에서 그런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잖아요. 정부에서 비정규직 대우에 관심이 없지요. 김성조 의원이 최저임금법을 발의했잖아요.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지 항의하러 가야지요." 

짚고 넘어가면 김성조 한나라당 의원은(외30명)은 18일 지역별 최저 임금제 도입, 수습근로자 수습기간 연장, 고령자 최저임금 감액 등을 골자로 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평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그달 그달 버거워”

- 청소원 월급은 어느 정도인가요?
"83만 6천원이 기본급이에요. 시간당 4천원. 8시간 일하면 3만 2000원, 이렇게 해서 한 달에 83만 6천원 받는 것이지요. 여기에 연장근로수당을 받아서 100만 원을 간신히 넘기게 돼요. 이 돈 받고 생활할 수 있겠어요? 노조 안 할 때는 49만 원 받았어요. 이것저것 떼게 되니까요.

평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그달 그달 빡빡하게 살아요. 저를 위해 쓰는 것도 없는데. 참 버거운 세상이에요. 지금은 받는 100만 원이 큰돈이지만 그만큼 물가가 올라서 여유가 안 생겨요. 노무현 정권도 그랬는데 이명박 정권 되면서 압박이 더 심해지네요."

지하철 차량기지 청소용역 지부장 이덕순씨는 차분하게 답답한 심경을 얘기하시네요.
▲ 이덕순씨 지하철 차량기지 청소용역 지부장 이덕순씨는 차분하게 답답한 심경을 얘기하시네요.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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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 있으시다면
"꿈이라고요.(살짝 웃으신다.) 가정이 편안한 거예요. 가정이 안정되어야 사회도 안정되고 건강한 가정에서 건강한 아이가 자라지요. 계속 평화로운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 소박한 꿈이에요.

그리고 빡빡한 세상이 아닌 너그러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회가 너그럽고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제는 ‘우리’가 아니고 전부 ‘나’ 밖에 몰라요. 안타깝지요. 건강하고 열심히 일하고 그만큼 권리 누리고 살고 싶어요. 제가 정년퇴임하는 65세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그렇게 살고 싶어요."

평생을 열심히 사신 이덕순씨는 일을 열심히 하는데 일한 대가가 너무 적어서 너무 억울하고 힘들었다고 속내를 털어놓으셨지요. 노조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불손한 사람들이나 목소리 내는 줄 알았다고 얘기하네요. 이야기 도중 무거워지는 목소리와 절로 나오는 한숨에 힘든 분위기가 전해지더군요. 

인권침해, 불가피하니 양해해달라?

저는 서울 메트로 시민의 소리에 왜 남자화장실에 여자를 들여보내느냐고 항의한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서울 메트로는 ‘불가피’하다고 얘기하며 양해해달라는 답변을 적었지요. 청소 중에 잠시 폐쇄하는 방법을 생각했으나 사정상 안 되니 마치 최선을 다 한 것처럼 대답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친절도 설문조사에 꼭 응하라고 문자까지 보내줬어요. 시민들 소리에는 꼬박꼬박 응답을 하지만 바꾸지 않는, 그 뻔뻔한 친절이 거북하더군요.

왜 남성화장실에 여성이 들어오냐고, 인권침해 아니냐고 항의하자 서울메트로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발뺌하네요. 이러한 사태는 불가피하니 양해해달라고 말을 하네요. 그리고 친절도 설문에 응해달라고 하네요.
▲ 서울 메트로에 항의한 글 왜 남성화장실에 여성이 들어오냐고, 인권침해 아니냐고 항의하자 서울메트로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발뺌하네요. 이러한 사태는 불가피하니 양해해달라고 말을 하네요. 그리고 친절도 설문에 응해달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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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메트로는 서울시 지하철에서 일하는 청소원들이 ‘어려운 여건’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고생하는 걸 알고 있으나 청소용역업체에 맡겼으니 관여하지 않는다고 무책임하게 말하네요. 비정규직이 당연한 것처럼 되었고 여성 청소원들은 ‘저임금’을 받으며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지만 ‘불가피’하니까 양해해줘야 하는 걸까요. 서울메트로는 용역을 주었으니 책임이 없는 걸까요.

남성화장실에 여성이 들어오면 이용하는 쪽이나 청소하는 쪽이나 참 곤욕스럽지요. 조금만 더 이용하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요. 깨끗한 화장실도 좋지만 그에 앞서 '최소한 예의'를 갖추었으면 하네요. 남성 화장실에 들어가는 여성, 불가피하지 않고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되네요.


태그:#여성청소원, #인권침해, #비정규직, #서울메트로, #최저임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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