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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코리아나호텔 나들이

혼인한 두 사람이 타고 거리를 누빌 자전거. 조선일보사 코리아나호텔 앞에 번듯하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 혼인 자전거 혼인한 두 사람이 타고 거리를 누빌 자전거. 조선일보사 코리아나호텔 앞에 번듯하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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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나들이를 할 일이 생기면, 볼일 보러 갈 자리 둘레에 어떤 헌책방이 있는가를 먼저 헤아립니다. 볼일을 보러 가기 앞서 그곳 둘레 헌책방에서 다문 삼십 분이나 한 시간이라도 책을 구경하고 가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이주노동자 권리를 지키는 일을 하고 알티비라는 곳에서 일하다가 중국으로 가서 짝지를 만나 살고 있는 후배가 혼인잔치를 한다는 연락이 와서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합니다. 느긋하게 책 한 번 펼치지 못하면서 바쁘고 어수선하게 지내는 요즈음인데, 책상맡에는 밀려 있는 책이 있더라도 아직 내가 모르는 또다른 책을 구경해 보고 바람도 쐬자며 길을 나서기로 합니다.

후배는 시청역 앞에 있는 조선일보사에 깃든 코리아나호텔에서 혼인잔치를 한다고 합니다. 처음 연락을 받고 대뜸, ‘효도 잔치냐?’하고 물었고, 후배는 ‘효도해 드려야지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그런 자리를 다 얻어서 할까 싶지만, 후배 아버님은 그 자리에서 잔치를 하는 일이 당신한테는 더없는 기쁨이었으리라 봅니다. 생각해 보면, 혼인잔치를 벌이는 자리는 아버님이 바라는 대로 잡되, 잔치는 아들내미가 바라는 대로 할 수 있습니다. 북적이는 잔치자리에 가 보니, 차례는 틀에 박힌 대로 따르지 않고 후배녀석다운 짜임새로 재미나게 엮었습니다.

후배녀석은 혼인잔치를 마친 다음 뒤풀이를 할 홍대 앞까지 자전거를 타고 길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홍대까지 가지 못하고 때가 늦어 인천으로 바로 돌아왔습니다. 비록 호텔밥은 그리 우리 입맛에 안 맞고, 천장이 낮고 좁아 답답하던 예식장이었지만 ‘조선일보사 코리아나호텔’에서 혼인잔치를 하면서도 이처럼 즐거운 놀이판을 만들 수 있는 한편, ‘웨딩카’가 아닌 ‘혼인자전거’를 신문사 문앞에 떡하니 세워 놓을 수 있는데다가, 그리고 두 사람이 자전거를 몰고 서울 밤거리를 누비면서 ‘우리 혼인했어요!’ 하고 자랑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2) 헌책방 나들이

<흙서점>을 비롯한 수많은 헌책방들은 어린이책 자리를 따로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 어린이책 <흙서점>을 비롯한 수많은 헌책방들은 어린이책 자리를 따로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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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 저녁나절에 마련된 혼인잔치이기에, 다른 짐스러움 없이 혼인잔치에 찾아가게 됩니다. 금요일은 도서관 문을 열어야 하는 때인 만큼, 일찍 길을 나설 수는 없고, 낙성대역 앞에 있는 헌책방에서 꼭 삼십 분쯤 책을 둘러볼 수 있도록 틈을 내어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갑니다.

2호선 낙성대역에서 내려 4번 나들목으로 나가는 자동계단에서 안경을 끼고 사진기를 꺼내 필터를 닦습니다. 자동계단이 끝나고 바로 왼쪽에는 기름집이 나오고, 이 앞 작은 찻길에는 마을버스가 지나갑니다. 사람들이 참 많이 오가는 길목에 잠깐 서서 책방 둘레 모습을 두 장쯤 담습니다. 바깥에 놓인 노래테이프와 떨이 책을 휘 살펴본 다음 안으로 들어갑니다.

오랜만에 나들이한 만큼, 헌책방 〈흙서점〉에서 남달리 볼 수 있는 두툼한 몇 가지 사진책을 먼저 집어들어 살핍니다.

<a day in the life of Africa>(Tides foundation, 2002)를 펼칩니다. 아프리카라는 넓은 땅을 하루 만에 돌아보고 나서 엮은 사진책입니다. 혼자서 하루 만에 돌기란 어림없는 노릇이지만, 수많은 사진쟁이들이 구석구석 흩어져서 저마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른 눈으로 아프리카를 둘러본다면, 하루 만에라도 남다른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어요. 여태까지 예닐 권쯤 되는 ‘a day in the life of ……’라는 이름이 붙은 사진책을 구경했는데, 이 사진책을 볼 때면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쯤 ‘한국에서 보내는 하루’ 이야기를 사진으로 묶어낼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Krig fred>(Kristian Hvidt, Lademann, 1972)는 덴마크에 나온 사진이야기책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전쟁과 이 전쟁을 막고 싶은 사람들 평화 움직임을 한데 모았습니다. 덴마크말로 적혀 있기에 글은 하나도 못 읽고 사진만 넘겨봅니다. 사진으로 이야기를 엮은 책은 글은 못 읽더라도 사진을 보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The grand tour, new techniques>(Flavio Conti, HBJ Press, 1978)는 유럽과 미국에 사람들이 이루어낸 ‘우람한 건물’ 이야기를 담습니다. 영국에 있는 돌무덤, 프랑스에 있는 돌다리, 노르웨이에 있는 나무성당, 프랑스 에펠탑, 프랑스 드골 공항, 파나마 운하, 미국에 있는 후버댐, 북해에 있는 석유시추선, 독일에 있는 올림픽경기장 들이 ‘사람이 빚은 건축 가운데 빛나는 작품’이라고 보여줍니다.

그래, 참 우람하구나 하고 느끼는 한편, 사람이 남긴 건축 작품 가운데 백 해를 넘겨서까지 남는 집은 퍽 드물다고 새삼 느낍니다. 이백 해를 넘기고 삼백 해를 넘기며 즈믄 해를 넘기는 집은 더더욱 드물다고 다시금 느낍니다. 돌 하나는 만 해를 우습게 알고 나무 한 그루는 즈믄 해도 가볍게 넘기는데, 우리들 사람은 기껏 백 해를 아슬아슬하게 채우는 집 하나를 놓고서 ‘우람하다’느니 ‘아름답다’느니 하는 말을 붙입니다.

<Korea quarterly> 1호(1979년 겨울 특별호)를 봅니다. 우리나라 문화를 나라밖으로 알리고자 영어로 만든 잡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1979년에 1호를 낸 뒤 몇 호까지 내었는지 궁금한데, 주명덕님 사진을 싣고, 앤 오브라이언(Ann O'Brien) 그림을 싣기도 합니다. 어린이책 그림을 그린다는 앤 오브라이언이라는 분은 한국에서 열다섯 해를 살았다고(1979년까지) 하는데, 이분이 길에서 만난 사람을 눈여겨보고 그린 작품들에 제법 눈길이 쏠립니다.

문가에는 갓 들어온 책이 쌓입니다. 처음에는 쌓이고, 책방 일꾼이 하나씩 갈무리하면서 제자리를 잡아 갑니다.
▲ 문가 문가에는 갓 들어온 책이 쌓입니다. 처음에는 쌓이고, 책방 일꾼이 하나씩 갈무리하면서 제자리를 잡아 갑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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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라밖에 알리는 나라안 문화라 하면 거의 비슷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불교 문화, 한약, 기와집, 한복…….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살이는, 그리고 도시에서 꾸리는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새는 ‘한국 문화’로 선뜻 내보이기 어려울까요. 오늘날 한국땅 어디에서나 이루어지는 ‘아파트 막개발’ 뒤편을 보면, 늘 밀려나고 사라지게 되는 곳은 골목길입니다. 우리가 나라밖에 내세울 우리 문화란 ‘새로 짓는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때문에 허물리는 골목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늘 고개를 쳐듭니다.

<the little oxford atals>(oxford university press,1956)는 제법 묵은 세계지도책입니다. 영국에서 만든 지도책이니 영국땅을 가장 꼼꼼히 보여줍니다. 우리 나라 땅은 몇 군데 구석에 겨우 꼽사리를 끼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Far East’ 자리에 비로소 우리 나라 땅그림이 제대로 보여집니다. 이 지도책에 실린 우리 나라 땅자리를 살피면, 울릉도 옆으로 독도까지 한국땅으로 넣고 있습니다.

일본 그림책 <となりのせきのますだん>(武田美穗, ポプラ社, 1991)을 구경합니다. 짝꿍 아이가 자꾸 괴롭혀서 아침마다 학교 가기 앞서 집에서 일어나고 씻고 챙길 때부터 부루퉁할밖에 없는 아이가 어떤 마음앓이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짓궂은 짝꿍은 그예 내가 아끼는 크레파스마저 두 동강이를 냅니다. 울고 불고 짜증을 낸 이튿날, 학교 들어서는 문턱에서 멈추며 오늘은 또 어떠할는지 걱정스러운 아이는 다른 동무들 인사를 받고 살금살금 들어가는데 학교 문턱에 짓궂은 짝꿍이 기다리고 있어서 깜짝 놀랍니다. 이때 짝꿍 아이는 미안하다면서 동강난 크레파스를 천으로 여미어서 건네어 줍니다.

<영화는 지금 혁명중>(이명원, 영웅, 1989)이라는 영화비평모음을 봅니다. 글쓰는 이명원? 철학교수인 이명원?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처음 만나는 이명원’이라는 이름이 낯섭니다. 속알맹이가 궁금합니다.

.. 우리 관객들은 과연 영화를 보며 경건한 마음이 된 경험이 있을까. 타르코브스키의 시네마를 본다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를 경험하는 것인데, 그것은 상당한 에너지를 요한다. 입을 벌리면 어머니가 밥을 먹여 주던 소년 시절처럼 몸을 화면에 맡기는 수동적 자세로 영화를 보는 미숙한 습관밖에 없는 사람에겐 자칫 재미보다 곤혹감을 안겨 주기 십상이다. 그것은 위대한 영상의 마술을 체험하는 데 걸맞는 당연한 고통일 테지만…… ..  (57쪽)

<영화는 지금 혁명중>이라는 책이 나올 무렵까지, 타르코프스키 영화는 나라안에 걸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1986년에 타르코프스키가 죽을 때 한국땅 어느 신문에서도 이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타르코프스키 영화는 우리나라 극장에 걸리지 못합니다. 비디오로만 봅니다. 영화비평을 하는 이명원님은 비디오로 타르코프스키 작품을 만났을까요. 그무렵에 비디오로나마 타르코프스키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떠먹여 주는 영화’가 아닌 ‘영화 즐김이 스스로 머리와 마음을 쏟아서 읽어내야 하는 영화’인 타르코프스키 작품이라고 하는데, 어느덧 스무 해쯤 지난 오늘날에 와서는 타르코프스키가 제대로 읽히거나 보여지고 있을까요.

.. 감독 귀니는 그저 근대화의 시점에서 터키 사회의 낡은 인습을 비판한 게 아니다. 그가 자기 나라를 보는 눈은 애증으로 착잡하게 얼룩져 있다. 터키 사회를 강점한 정부는 부정하나, 거기서 현재 생활하는 사람들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굴절된 감정일지 모른다. 얼마 전까지 우리 영화인들은 미국 영화의 직배에 반대하며 데모, 농성을 벌였다. 그러나 한국 영화의 진짜 문제는 미국 영화 직배불가론보다 줄곧 한국 영화가 미국 영화의 아류임을 서슴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할리우드 영화의 이미테이션이 아닌 터키 영화를 찾던 끝에 군사정권의 비위를 건드려 도망자의 팔자가 됐던 일마즈 귀니는 제3세계 영화인의 공동전선을 제창한 적이 있다. 우리 영화인이 주장하는, 이를테면 영화진흥법 제정, 다시 말해 정부나 법의 도움으로 한국 영화의 진흥을 꾀하는 타력 의존적인 발상으로는 제3세계의 영화에도 끼지 못하고 국제 고아가 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권력에의 구애이거나 짝사랑이기 때문이다 ..  (61쪽)

‘욜(YOL)’이라는 영화가 극장에 내걸리던 때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는 가물가물하여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저, 이 영화가 처음 우리나라에 걸릴 때 제법 뜨거운 무언가를 일으켰던 일은 떠오릅니다.

빼곡하게 들어찬 책을 보면서 마음이 뿌듯하고 넉넉해집니다.
▲ 골마루 한켠 빼곡하게 들어찬 책을 보면서 마음이 뿌듯하고 넉넉해집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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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영화비평을 하는 이명원님 글이 날카롭다고 새삼 느낍니다. 영화인들이 외치는 영화진흥법 못지않는 스크린쿼터라는 제도는 이명원님 말마따나 ‘권력한테 바치는 짝사랑’이나 ‘미국 영화 따라쟁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영화 참모습이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정작 우리 영화가 가야 할 길을 놓치고 있구나 싶습니다. 요즈음 같은 때도 아니고 1980년대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쏟아낼 수 있던 눈길과 붓끝이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요즈음 영화비평 하는 분들이 초라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아가는 사회가 맞는지, 우리 문화밭은 차츰차츰 새로워지거나 거듭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영화뿐이겠습니까. 책마을은 어떻습니까. 사진마을은 어떻습니까. 그림마을은 어떻습니까. 노래마을은, 춤마을은, 연극마을은, ……. 우리들은 우리 깜냥껏 우리 마을을 가꾸고 있는지요. 우리들은 우리 피와 땀으로 우리 마을을 북돋우고 있는지요. 우리들은 우리 온몸을 내맡기면서 우리 마을을 아름답고 살뜰하게 일으키고 있는지요. 우리 사회를, 우리 경제를, 우리 언론을, 우리 교육을, 우리 정치를, 우리 두 손으로 돌보거나 추스르고 있는지요.

.. 가장 화끈한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는 이 영화에서 실크우드 역을 하고 난 다음부터 ‘핵병기 반대 연예인의 모임’에 참가, 반핵 운동자금의 마련을 위한 자선쇼를 열었는가 하면, 뉴욕에서 벌였던 데모에도 끼었다. 그녀의 말이다. “2000년에 내 아들 지피는 겨우 스물한 살, 그만큼 세계의 미래에 대한 내 책임은 큽니다” 하고. 이 영화에서 그녀의 연기에 실감이 담긴 것은 그런 반핵의 자세에서 나오는지 모른다. 우리에겐 왜 메릴 스트리프와 같은 연예인이 없는 것일까 ..  (68∼69쪽)

진보를 외치는 정치꾼을 도우려고 손을 잡거나 내미는 영화인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1980년대까지 ‘메릴 스트리프와 같은 연예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지 모르나, 2008년에는 몇 분쯤 있습니다. 다만, 아직 몇몇 분밖에 없다뿐입니다.

<함께 살아가기>(주디 카라시크(글),폴 카라시크(그림)/권경희(옮김), 양철북, 2004)라는 책을 봅니다. 자폐증으로 살아가는 큰형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생들 이야기를, 둘째가 글로 셋째가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 이날 큰오빠 데이비드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집 지붕 위에 올라갔다. 큰오빠가 이 집에서 산 지 거의 40년이 되도록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평생을 자폐증에 허우적거렸던 오빠에게 그 흔한 경험을 맛보여 줄 생각을 더 일찍 못했던 것이다 … 불현듯 만약 늘 자기가 집안에 걱정을 안겨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10, 98쪽)

글과 그림으로 엮인 책을 찬찬히 넘기고 덮고 또 넘기고 덮으면서 끝없이 한숨을 쉽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엮어낸 두 남매는 나중에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자폐증 형제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느끼고 받아들입니다. 이리하여 이런 이야기를 엮어낸 셈인데, 오늘날 우리 삶터에서는 어떠할까 싶어서. 자폐증만이 아니라 수많은 몸앓이와 마음앓이가 있는데, 몸이고 마음이고 아픈 사람하고 함께 지내는 우리들은 얼마나 사랑과 믿음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얼마나 따뜻하게 얼싸안거나 부둥켜안는지 궁금합니다. 시설이며 제도며 교육이며 정치며 문화며, 모조리 ‘장애 하나 없는 사람’한테만 맞추어져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픈 사람은 책 한 권 넉넉하게 읽을 만한 자리를 거의 마련해 주지 않는 우리들 아니냐 싶습니다. 앞 못 보는 사람이 손으로 읽을 책, 빛깔을 가려내지 못하는 사람이 흐뭇하게 볼 그림은 얼마나 있을까요. 다리가 아파 집 바깥 나들이를 거의 못하는 사람이 방에서 텔레비전만 들여다본다고 할 때,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숱한 이야기들은 누구한테 즐겁고 누구한테 도움이 되며 누구한테 웃음과 눈물을 선사하고 있을는지요.

헌책방 <흙서점> 책꽂이. 갈래에 따라 알맞게 차곡차곡 꽂히고 쌓여 있습니다.
▲ 책꽂이 헌책방 <흙서점> 책꽂이. 갈래에 따라 알맞게 차곡차곡 꽂히고 쌓여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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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책을 알아보는 눈

<부루퉁한 스핑키>(윌리엄 스타이그/조은수 옮김, 비룡소, 1995 첫/2003 17쇄)라는 그림책을 집어듭니다. 윌리엄 스타이그 님 그림책은 어느 책이나 참으로 사랑을 많이 받고 무척 많이 팔립니다. 이렇게 많이 팔리는 만큼 이 책을 사서 읽거나 읽힌 어른과 아이 마음밭에도 따스함과 너그러움이 깃들었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어찌 되었든, 윌리엄 스타이그 님이 그림책을 그려낸 넋을 읽어내지는 못한다 해도 스타이그 그림책은 예나 이제나 널리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 스핑키는 씩씩거리면서 집에서 나와 풀밭에 배를 깔고 엎드렸습니다. 스핑키는 코앞에 피어 있는 민들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화가 났거든요. 우리 식구는 모두 머저리야! 말로는 날 사랑한다고 하면서, 순 엉터리야. 비록 엄마는 안 그렇지만 ..  (3쪽)

1995년에 처음 우리 말로 옮겨져서 2003년에 17쇄를 찍었으니, 2008년인 지금은 20쇄를 훌쩍 넘기고 30쇄를 바라볼는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사랑받으면서, 어느 날엔가는 100쇄를 가볍게 넘어설 수 있을 테지요. 우리들은 으레 <광장>이 100쇄를 넘기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100쇄 넘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린이책에서도 <몽실언니>나 <하느님의 눈물>이나 <심심해서 그랬어>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같은 책들은 100쇄를 바라보는(또는 넘겼을는지 모를) 작품입니다(1쇄를 3000권으로 치면 일찌감치 100쇄를 넘겼을 테지요).

참으로 좋은 책이니 이렇게 사랑받고 읽히고 헌책방에서도 따순 대접을 받는 한편, 나 또한 기꺼이 집어들겠지 하고 생각하다가는, 그러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터전에 걸맞게 <부루퉁한 스핑키>를 엮어낼 때가 언제쯤일까 하고 헤아려 보게 됩니다. 미국 터전과 미국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그려낸 <부루퉁한 스핑키>인데, ‘부루퉁한 은희’나 ‘부루퉁한 원규’ 같은 그림책이 나올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라밖 좋은 책을 알아보고 나라안 사람들한테 두루두루 나누려는 뜻은 참으로 반가운데, 나라밖 수많은 좋은 책으로 부지런히 마음닦이를 하면서 나라안에서 골고루 나눌 새로운 ‘우리 좋은 책’을 빚어낼 땀방울은 언제쯤 빛을 보거나 보람을 얻을는지 궁금합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책먼지와 걸레하고 씨름해야 하는 헌책방 일꾼 손에서 물기 마를 날은, 먼지 떨어질 날이란 잠깐도 없습니다. 이 고마운 손길이 있어서, 책은 죽다가 살아나고, 우리들은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 헌책방 일꾼 손 새벽부터 저녁까지 책먼지와 걸레하고 씨름해야 하는 헌책방 일꾼 손에서 물기 마를 날은, 먼지 떨어질 날이란 잠깐도 없습니다. 이 고마운 손길이 있어서, 책은 죽다가 살아나고, 우리들은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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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없이 번역은 창작보다 돈과 품과 시간이 적게 듭니다. 애써 창작을 했다손 치더라도, 빈틈이 많거나 어수룩한 데가 많기 마련이기에, 잘잘못을 다듬어 내어 보배 하나로 영글어 놓으려면 출판사가 버티어 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글 작가이든 그림 작가이든, 한 송이 소담스런 꽃을 피우기까지 셀 수 없는 날을 굶주리고 견디다가 쓰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했기 때문에 가난을 밥삼고 넋삼고 동무삼아서 서로서로 오붓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책 하나로, 영화 하나로, 사진 하나로, 그림 하나로, 글 하나로 이끌어내지 않느냐 싶습니다. 가난이라는 크나큰 구슬알을 늘 곁에 놓고서 믿음과 사랑을 고이 녹여내면서 내 이웃들하고 즐거이 나눌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배가 부르면 배고프던 때를 금세 잊어버립니다. 배고프게 책 만들어 나누는 투박하고 거친 손바닥이 그립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헌책방, #흙서점, #영화평론, #혼인잔치,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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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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