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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예정지인 창원시 가음본동.
 철거 예정지인 창원시 가음본동.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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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는 섬과 같은 곳이다. 인근 마산이나 창원으로 가려면 장복터널과 안민터널, 마진터널을 반드시 통해야 한다. 길이 가파른데다 터널엔 보행자 통행로가 없다. 버스에 자전거를 싣는다. 자전거에 대해 묻는 사람들이 많다. 자전거가 많이 좋아졌다는 어르신도 있고, 가격을 묻는 분도 있다.

창원시 가음본동에 갔다. 철거예정지다. 대규모 아파트 개발이 예정돼 있다. 누구는 철거 반대를 외치고, 누구는 매력 있는 투자처로 눈독을 들인다.

2008년 가을 그곳은 곳곳이 부서진 집과 빨간 스프레이가 뒤섞여 을씨년스럽다. 마을 입구엔 '건물소유자 및 세입자가 아직 이주하자 않아 사업추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지장가옥 철거 안내문이 방문객을 맞는다. 2008년 5월 설치한 안내문이다.

어느 집 건물 벽엔 '10일 이내에 자진 철거해달라'는 벽보가 붙었다. 2008년 10월 9일자다. '철거'라는 붉은 글씨가 곳곳에 쓰여 있고, 무너진 담벼락도 꽤 많다. 이곳에서 15년 동안 장사를 했다는 주민 A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시에서는 10년 정도 유예기간을 줬단다. 가음정지구가 1999년 택지개발사업 승인이 났으니 10년이란 기간은 맞다.

A씨는 10년이라는 기간이 의미없다고 강조했다. 동네엔 생활보호대상자, 장애인, 일을 할 수 없는 어르신이 상당수라 10년이든 20년이든 의미가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시도 이런 사정을 아는 듯했다. <경남도민일보>(2008년 1월 11일)에 따르면 "시 도시개발사업소 윤상근 주사는 '사실 집주인의 경우 이주 택지 문제만 해결되면 나갈 수 있는 처지지만, 생활보호대상자가 대부분인 세입자의 경우 나갈 형편이 못된다'며 '시로서도 이들의 딱한 사정을 고려해 무조건 나가달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시가 어떤 묘안을 짜낼지 궁금하다.

국내 최대 화학섬유공장, 최초 수출자유지역...화려했던 시절

매립이 한창인 가포 바다.
 매립이 한창인 가포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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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좌석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마산 가포바다로 갔다. 1976년 폐쇄될 때까지 해수욕장이었고 이후엔 유원지로 쓰였다. 매립공사가 한창이다. 바다는 이미 흙으로 모두 메워진 상태. 마산시는 이 자리에 마산신항을 건설한다는 방침이다.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은 해양환경오염을 염려해 끈질기게 반대운동을 펼쳤다.

환경운동연합이 2007년 낸 자료를 보면 1906년 이후 마산시쪽 바다는 100만평, 창원시쪽은 150만평 정도가 매립됐다. 이것도 앞으로 계획 중인 창포 300만평, 난포 118만평, 서항 43만평에 비하면 약과다.

마산 역사는 곧 바다 매립 역사다. 일제 점령기 이후 거의 매년 바다 매립 작업이 이뤄졌다. 1929년에는 매립이 전문인 마산매축주식회사가 세워졌다. 절정은 월포해수욕장 매립. 당시 인천 송도해수욕장과 함께 전국 2대 해수욕장이었던 월포해수욕장은 1920년대 말까지 서울에서 특별 피서열차가 다닐 정도였다. 하지만 거센 개발 움직임을 피하진 못했다.

마산엔 아직까지 일제시대 가옥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마산엔 아직까지 일제시대 가옥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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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측면에서 보면 마산은 이 시기 이후 꽤 오랫동안 영화를 누렸다. 1911년 가동한 발전시설은 대구나 대전보다 빨랐다. 1912년 국내 최초로 원거리 송전을 시작해 인근 진해에 전기를 보냈다. 1928년 당시 인기있는 술이었던 청주 양조업계 생산량은 전국 1위였고, 1930년대 국내 최대 장유(간장)회사가 세워졌다.

1966년 들어선 한일합섬은 국내 최대 화학섬유공장이었다. 1970년대 중반 노동자수는 1만5000여명에 이르렀고, 1988년 매출은 4500억원이 넘었다. 1967년 만들어진 한국철강은 국내 최초 중후철판(中厚鐵板) 생산업체였다. 1970년엔 50만평 바다를 메워 국내 최초 수출자유지역을 세웠다.

공업기지로서 마산은 거침없이 달렸다. 물론 그에 따른 후유증이 없을 리 없었다. 1961년 개항질서법을 공포해 마산항 내 어로행위를 금지했다. 1975년 마산에 단 하나밖에 없었던 가포해수욕장이 폐장됐다. 이유는 수질 오염이었다.

마산 앞바다. 공장과 집이 들어선 곳 상당수는 과거 바다였다.
 마산 앞바다. 공장과 집이 들어선 곳 상당수는 과거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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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는 최전선이었다. 최후 방어선이 낙동강에 만들어졌을 때 북한군과 유엔군은 진동-서북산-함안-군북 일대서 맞섰다. 한국전쟁 격전지였다는 것은 어린 시절 추억에도 남았다. 해방 당시 마산 지역 초등학교는 마산심상소학교, 성호, 완월, 회원 세 군데였다. 이 중 일본인 자녀들만 다니던 마산심상소학교는 해방 후 월영국민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한국전쟁 당시 월영국민학교에 미육군 항만사령부 미육군 제155부대가 주둔했다. 나는 월영국민학교를 나왔다. 친구들 중엔 그 당시 이곳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해방 당시 이미 학교가 있었고, 군부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어른들에게 듣고 이런 말을 했으리라고 짐작한다. 

마산 명물 아귀찜이 만들어진 게 한국전쟁 시기였다. 당시 마산엔 많은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그 전까지 재수없다고 버려지던 아귀를 먹을 것 없던 피난민들이 요리해 먹었던 것. 순식간에 아귀찜은 그 전까지 마산 대표 음식이었던 대구탕과 미더덕찜 인기를 눌러버렸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마산지역 향토사학자 이학렬이 <간추린 마산역사>에서 밝힌 내용이다.

한국민속문화연구소 주강현 소장은 원나라 일본정벌 출격지, 임진왜란 전투지, 4.19와 부마항쟁, 산업화 등 격동의 세월을 보낸 마산역사와 화끈한 아귀찜이 참 잘 어울린다고 평가한 바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지은 판잣집은 1982년까지 중앙대로 철로변에 남아있었다 한다. 그 해 63회 전국체전이 열리면서 판잣집은 모두 철거됐다. 우리나라는 큰 스포츠이벤트를 벌일 때마다 한 시대를 정리했다. 누군가 TV를 보며 환호할 때 누군가는 쓸쓸히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여행하기, 자전거 타고 여행하기

조선소 예정지인 수정마을.
 조선소 예정지인 수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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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포에서 시작하는 마산 해안도로는 매립 예정지를 지난다. 가포는 일제점령기 일본 지바현 어부들이 살아 지바촌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곳이다. 해안도로는 조용한 어촌 마을과 보존과 개발이 거칠게 맞서는 개발 최전선을 함께 보여준다.

마산 해안선 길이는 모두 151.1km. 25개에 이르는 섬들이 바다 풍경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자전거를 타고 해안선을 모두 보자면 숨 가프다. 욕심을 버리자.

옛날 홍합과 굴을 따러 간 적이 있는 수정마을에 이르렀다. 조용한 어촌마을엔 이미 싸움이 진행 중이었다.

"STX중공업 유치를 위한 일체의 방문은 사절합니다. 내 집 내 땅에서 내 이웃과 함께 살 권리를 보장해 주십시오."
"수정마을 수호 STX 결사저지."

주민들이 원하는 바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기업은 26개에 이르는 당근을 내놨다. 마을 발전기금 80억원, STX직업훈련원 운영시 수정 주민과 자녀 우선 채용, STX 그룹 공채시험시 주민자녀 가산점 부여, 주민자녀를 위한 STX 장학재단 설립, STX 공장가동시 지역주민 우선 고용, 회사식당 완공 전 수정 지역 식당 배분 운영….

길은 1002지방도다. 한쪽은 저도연육교, 한쪽은 진동과 마전이다. 저도연육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길은 2차선. 자동차가 거의 없다.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막이 나오면 끌고, 내리막에선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내리막을 달려 마을에 이르렀다. 목이 마르니 가게를 찾게 된다. 간판도 없는 조그만 구멍가게다. 자전거를 타면 수시로 가게를 찾아 물을 마시고 간단한 먹을거리를 찾게 된다. 지방도나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면 그 지방에 머무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이런 점에서 자전거는 마을 주민들에게 좀 더 골고루 돈을 쓰게 된다.

자동차를 타고 큰 도로를 달리면 길에선 어김없이 고속도로 휴게소를 들를 것이고, 도심에선 시내나 관광지를 찾게 될 것이다. 당연히 돈쏠림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역균형이나 마을균형을 위해선 길을 쓰는 것부터 균형이어야 하지 않을까.

어촌마을 가게에서 본 참깨과자 돈통.
 어촌마을 가게에서 본 참깨과자 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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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TV를 보던 주인 할머니는 손님이 나타나자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난다. 우유와 빵을 먹었다. 계산을 하는데 돈통이 참깨전병 과자통이다. 마음에 들어 한 장 찍었다. 할머니께 보여드렸더니 "예쁘네"라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신다.

실리도로 빠지는 길은 제대로 해안도로다. 깊 바로 옆에서 바다가 출렁인다. 눈이 호사다. 종점에 이르러 버스 시간표를 봤다. 62번 버스가 대략 1시간에 한 대꼴이다. 서울지역 대중교통이 5분에 한 대 꼴이라 했을 때, 이 동네 사람들은 12배나 느린 속도로 사는 셈이다.

바다 옆 학교인 반동초등학교, 구복예술촌을 지나 저도연육교에 닿았다. 마산시 구산면 구복리와 저도를 잇는 다리로, 영화 속 다리와 닮아 별명이 '콰이강의 다리'다. 영화 <인디안썸머>에 나와 인기를 얻었다. 겉모습과 달리 역사는 20여년 정도다.(1987년 완공)

저도연육교. '콰이강의 다리'라는 애칭을 얻었다.
 저도연육교. '콰이강의 다리'라는 애칭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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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사마귀.
 길 위에서 만난 사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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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끌고 오르막을 오를 때는 길동무들을 많이 만난다. 가장 많이 만난 게 사마귀다. 차도 한 귀퉁이에서 몸을 곧추세우고 있다. 생태계가 살아 있고, 자동차가 많이 안다니니 자기네 땅인 줄 아는 모양이다. 사진기를 갖다 대는데 모습이 자못 늠름하다.

사진기와 맞서는 사마귀보다는 바닥에 깔린 것들이 더 많다. 햇빛에 바짝 마른 두꺼비를 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큰 새 한 마리도 차도에서 생을 다했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오르던 이가 손 인사를 한다.

동진대교가 있는 해안도로(국도 77호선)은 건설교통부가 뽑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곳 중 하나다. 다른 해안도로 경치도 여기 못지않으나, 아무래도 야경에서 점수를 땄지 싶다.

쌀을 널어 말리던 할머니. 해안도로를 달리다 만났다.
 쌀을 널어 말리던 할머니. 해안도로를 달리다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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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쌀을 널어 말리는 할머니를 만났다. 촬영을 부탁하니 "찍으라. 못찍을 게 뭐 있노"라며 대수롭잖게 말씀하신다. 영락없는 경상도 할머니다. 혼자서 바쁘게 셔터를 누르는데, 살짝살짝 얼굴을 숨기신다. 

경치에 흠뻑 취해 달리다 배둔-시락간 도로 확포장 공사길로 잘못 들어섰다. 동진대교에서 길을 건너야 했다. 덕분에 새로운 길 알게 됐다. 동진대교 건너편은 따로 달려야겠다.

오랫동안 영광을 누린 마산은 경남 제1도시라는 지위를 오래 전에 창원에 내줬다. 지금은 김해에도 추월당한 상태다. 사람도 나고 죽듯이 도시도 마찬가지다. 마산은 재기를 꿈꾸고 있다. 지금껏 그랬듯이 매립이라는 방식을 통해서다. 시대는 변했는데, 그 방법 밖에 없는 것일까. 시대는 이미 21세기로 들어섰는데, 우리들 방식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0월 다녀왔습니다.



태그:#마산, #77번국도, #해안도로,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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