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람마다 여행의 목적과 관점이 다르겠지만 나는 여행이란 보는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느낌과 감동을 얻을 수 있다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사람이 붐비는 축제의 장소보다 조금은 적막한 곳, 그러면서 역사의 채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편이다. 거기에 특색 있는 향토 음식을 맛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리라.

 

그러나 나이 15살, 주행거리 34만km를 넘긴 노숙한 차를 생각하면 장거리 여행은 아무래도 불안하다. 때문에 부득이 계절을 고려하여 집에서 가까운 곳, 그러면서 감동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런 나의 조건에 맞는 여행지의 한 곳이 가지산 보림사이다.

 

우선 보림사 가는 길은 계절에 따라 느낌이 다르지만 언제나 깊은 산골짝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한적하고 아름답다. 광주에서 가는 방법은 화순을 경유하여 이양, 청풍, 장평을 거치는 길과 나주 남평읍을 지나 영암 금정을 지나는 길이 있는데 나는 주로 화순쪽 길을 이용하는 편이다.

보림사는 천년 고찰이면서 한국 불교에서 선종(禪宗)의 으뜸 사찰이다. 멀지 않으면서 깊고, 넓지 않으면서 큰 절이다. 2점의 국보와 4점의 보물, 그리고 다수의 지방 문화재가 남아 있는 천년의 역사가 숨 쉬는 곳이다. 그렇지만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때로는 적막하리만큼 조용한 곳이다.

 

입장료를 받지 않아도 늘 한적한 절집 마당에서 아내와 나는 느릿느릿 헤매고 있었다. 대적광전 앞의 두 탑과 그 사이의 석등의 절묘한 조화는 언제 봐도 정겹다. 대웅전의 철불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앉아 계시고, 숱한 상처를 입은 보조선사의 창성비(彰聖碑)와 한줌 재로 변한 선사의 육신을 담은 창성탑(彰聖塔)은 가을바람에 무상했다.

그러나 선사의 부도인 창성탑 옆의 머리를 잃은 마애불 앞에 걸음을 멈추면 나는 한동안 말을 잃는다. 유격대의 근거지가 된다고 하여 경찰 토벌대에 불태워진 절집은 전쟁후로 많이 복원하였으나 아직도 탑과 부도에 남아 있는 수많은 총탄자국과 머리를 잃은 돌부처는 지워지지 않은 전쟁의 상흔을 들추고 있기 때문이다.

 

마애불 스스로 목을 쳐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제 누가 공력을 들였는지 알 수 없는데, 언제 누가 그렇게 몹쓸 짓을 했다는 기록도 없다. 하긴 수없이 많은 중생이 억울하게 죽었어도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알 길이 없는 시대에 돌부처의 머리 없어진 것을 추념하는 짓이 부질없는 일인지 모른다.

 

세상에는 자신을 버림으로써 아름다워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한 부분을 잃음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슬프게 하는 것도 있다. 세월의 풍상에 처음의 빛과 모습을 잃어가는 일이야 오히려 아름다울 수 있지만 모진 손길에 처음의 모습을 잃어버린 돌부처가 어찌 안타깝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가슴만 남은 돌부처의 다비식은 할 수 없는 법, 이제 그의 머리를 찾아 화엄정토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게 하고 싶은 마음을 어쩔 것인가? 돌부처의 머리는 어디에 있는가? 떠나간 것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인가?

 

나의 사상을 타인이 따라 주기를 바란다면 전쟁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종교는 미신이요 나의 종교만 진리라는 주장은 사람과 사람의 종교 스스로의 믿음을 깨는 일일 것이다. 입으로 관용과 배려를 말하면서 타인과 소통을 피한다면 갈등만 깊게 할 것이다. 내 눈이 선과 악, 미와 추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믿고 사랑과 미움의 경계를 나눈다면 그건 사람을 죽이는 짓일 것이다.

 

돈에 팔려 양심을 버리고, 권력을 쫓아 부모형제를 버리고, 이념의 잣대로 이웃의 머리를 치는 세상이다. 그러면서 죽으면 모든 것이 헛되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에 남긴 자식, 인연으로 인한 업보,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한 흔적까지 다 지울 수 있을 것인가? 현재의 나만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이 많아지고 있는 세상을 어찌할 것인가?

머리 없는 부처님을 뒤로 하고 절 마당으로 내려오니 눈앞의 보림사는 한 폭의 수채화였다. 근처에 탐진강을 막은 댐이 있고 바다 쪽으로 조금 나가면 장흥읍 토요시장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으나 벌써 산촌의 해는 기울어진다.

 

암천리 삼거리에서 운월리로 올라 험한 산길을 넘으면 화순 운주사가 보이는 중장터다. 전에 몇 번 넘은 적이 있는데 환갑(?)을 넘긴 차로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 되돌아 나오고 말았다.

 

국사봉, 화학산 등의 봉우리와 연결되어 사이에 깊은 골짜기를 품고 있는 가지산은 작은 산이 아니다. 화순, 나주, 영암, 장흥, 보성을 아우르는 큰 산이다. 아직도 그곳을 세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골짜기 골짜기에 점처럼 박혀 있는 산, 그 골짜기를 물들인 단풍, 그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두어 만든 호수가 아름다운 곳,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보림사에 한번쯤 다녀오시라고 권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한반도 곳곳에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곳이 없지만 보림사는 특히 많은 피해를 입었던 곳이다. 사계절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 그리고  역사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에 이 가을 여행지로 추천하고 싶다. 이 글은 한겨레 필통에도 옮길 작정이다.  


태그:#보림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