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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8일 광주의 재래시장인 대인시장으로 사무실을 옮긴 <전라도닷컴>이 집들이를 하고 있다.
 지난 11월 8일 광주의 재래시장인 대인시장으로 사무실을 옮긴 <전라도닷컴>이 집들이를 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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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쓰려고 했던 기사는 간단했다.

"문광부가 선정한 '2008 최우수 잡지'지만 이런저런 경제적 어려움으로 광주의 재래시장인 대인시장 한복판에 좌판 깔듯 사무실을 냈다. 그 잡지 이름은 <전라도닷컴>이며 근래에 보기 드문 향토 잡지다. 독자들 힘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관심 가져주시라…."

이들이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돈 많은 향토기업의 넉넉한 후원을 받으며 광고 걱정 없이 쓰고 싶은 글, 하고 싶은 전라도 얘기만 실컷 했으니 기자로서는 최대의 복을 누린 셈이다. 남인희 기자의 고백처럼 "전라도 고샅길 돌아다니다 밥 먹고 가라는 시골 할미의 말 한마디에 빚진 적은 있어도" 사주나 후원자에게 빚지고 산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이들이었다.

그만큼 자부심이 대단했다. 전라도라는 변방에서, 그렇잖아도 '전라도' 얘기라면 마뜩찮게 째려보는 이들이 많은 시대에, 오로지 전라도의 사람과 자연, 문화를 당당하게 노래하고 있다는 그들만의 죽순처럼 순하게 삐죽 나온 오기! 아름다웠다.

그러나 <전라도닷컴>을 바라보면서 늘 부러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2000년 온라인으로 창간할 때부터 후원을 해주던 모기업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자 그들은 '나 홀로 살림'을 꾸려야 했다. 그게 작년 2007년 11월 8일이었다.

당장 돈이 없어 지난 2002년부터 발행해오던 월간지를 내지 못하는 사정에 처하기도 했다. 기자들이 월급 없이 생활한 건 물론이었다. 박원순 변호사 등 후원자와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이런 잡지는 살려내야 한다"면서 돈을 모아 간신히 폐간 위기를 넘겼다.

그들의 나 홀로 첫 걸음은 그렇게 아슬아슬했다.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들은 전라도 얘기를 멈추지 않았다. 2007년 12월 호를 한 달 쉬고 다시 잡지를 내갔다. 잔디 뿌리처럼 질긴 오기! 역시 아름다웠다.

그리고 딱 1년이 지난 2008년 11월 8일. 그들은 1년 동안 머물렀던 아늑한 공간을 뒤로 한 채 시장 한복판에 살림을 차렸다. 향토지리학자 김경수씨가 내준 풍광 좋던 사무실을 "더 이상 폐를 끼칠 수 없다"며 비워주고 나온 것이다.

황풍년 <전라도닷컴> 편집장은 "이제서야 전라도 민중의 삶의 한복판으로 들어온 기분"이라 했다. 쇠락해가는 재래시장 한 구석에 튼 새 둥지. 1년 만에 다시 하는 그들의 집들이엔 적지 않은 이들이 찾아와 축하를 해줬지만 흥이 나질 않았다. 나만 그랬을까. 처음으로 <전라도닷컴>을 생각하며 안타까웠다.

월급도 제대로 못 받으며 왜 여태...

집들이 끝난 며칠 후 그들의 새 둥지를 다시 찾아갔다.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제때 월급도 받지 못하고, 월간지 내는 것조차 버거운데 왜 버티고 있냐고. 말보다 글들이 편한 기자들인지라 메일로 저마다의 까닭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고선 총총히 돌아왔다.

그리고 또 며칠 후. 기자들의 답은 하루걸러 하나씩 도착했다. 남인희 기자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라도 어머니들께 빚지고 살아서 못 떠나고 있다"고 했다. 남신희 기자는 "어렵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마음 쪼그라들지 않고 넉넉하게 전라도를 지켜온 분들을 뵈며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창헌 기자가 보낸 메일을 열었다. 김 기자는 "늘 <전라도닷컴>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김 기자는 "전라도닷컴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니라 원고마감의 중압감 때문"이라며 'ㅋㅋ' 하고 온라인 조크를 던졌다. 그리고 김 기자는 자신의 노트북 바탕화면에 늘 띄워놓고 있는 글이라며 아래 글을 실어 보냈다.

재래시장으로 이사간 <전라도닷컴>의 소박한 간판이 그들이 풀어내는 전라도 선술집 풍경처럼 소박하게 아름답다.
 재래시장으로 이사간 <전라도닷컴>의 소박한 간판이 그들이 풀어내는 전라도 선술집 풍경처럼 소박하게 아름답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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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데보다 낮은 데를 주목할 것
화려한 것보다는 소박한 것을 찬미할 것
책상머리가 아니라 현장을 찾아갈 것
넥타이 맨 양복쟁이들은 피할 것
그 자신의 삶이 도서관이고 박물관인 노인들의 삶을 존중할 것
순 전라도말을 귀하게 받자올 것
개발보다 보존의 편에 설 것
인간과 생태계 전체의 온생명의 목소리를 동등하게 받아들일 것
장애인 여성 어린이 등 소수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것
이 땅의 이른바 '또라이들'의 대변인이 될 것
들에서 바다에서 일하는 이들의 삶을 으뜸으로 받들 것
전라도 안에 취재의 근거를 두되 반듯이 전라도를 넘어서 보편타당한 이야기를 할 것
단지 박제된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를 이야기할 것…"

김 기자는 "남인희 기자가 남겨준 글을 '명심'이란 제목으로 새기고 있다"고 소개했다. 열세 줄 짧은 글이 마치 송곳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그들이 그 지독한 경제적 궁핍과 어려움 속에서도 <전라도닷컴>을 여태 보듬고 있는 이유가 열세 줄 문장에 농부의 쟁기처럼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소위 '고참'이라며 잊고 지내고 있었던 '나의 기자로서의 초심'이 그 열세 줄 짧은 글에 다 녹아 있었다.

글을 읽고 또 읽어보았다. '높은 데 보다는 낮은 곳을 주목하며 책상머리보다는 현장을 찾아가고, 장애인과 여성 등 소수자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이른바 또라이들의 대변인이 되고 있는가', 나는....

기자는 오늘을 기록하며 내일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꿈은 꿈을 꾸고 있는 이들에게서 나오고, 그 꿈을 꾸는 이들은 아직 그들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다. 우리가 흔히 '사회적 약자'라고 통칭하는 이들, 우리가 흔히 '소수자'라고 쉽게 부르는 이들, 우리가 흔히 '민중'이라고 적당히 축약시켜버리는 나의 애비와 어미들.

기자를 꿈꾸는 후배와 함깨 대인시장으로 간다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그들의 하루는 무엇보다 거룩하고, 꿈을 꾸고 있기에 가진 자들에게 편리하게 조립된 세상과 싸울 수밖에 없다. 기자는 그렇게 꿈꾸고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내일의 존재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내 모습 속에서 더불어 꿈을 꾸는 기자가 아닌 그저 생활하는 생활인의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처음엔 그 모습이 생경하고 두렵더니 어느 시점부터는 '사는 게 다 그렇지'하고 대충 얼버무리려 한다.

정운현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언젠가 "요즘은 지사(志士)형 기자가 드물다는 게 안타깝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지금 이 시대에 지사와 같은 높은 이상, 지사와 같은 굳은 의지를 품은 기자는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남인희 기자가 후배 기자에게 들려준 얘기처럼 "들에서 바다에서 일하는 이들의 삶을 으뜸으로 여기며, 보편타당한 이야기를 하면서 박제된 과거의 향수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가 아닐까.

오늘 나는 기자를 꿈꾸는 후배와 <전라도닷컴>이 새로 둥지를 튼 광주 대인시장에 가야겠다. 즐겨 다니는 막걸리집인 영암집 이모와 막걸리처럼 걸죽한 인사를 나누고서 후배와 '요즘 기자가 명심해야할 것'에 대해서 끝도 없는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참, 영암집 바로 옆으로 이사 온 <전라도닷컴> 기자들도 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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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전라도닷컴, #대인시장,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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