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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메사바란 고등어초절임을 말한다. 등쪽의 씹히는 질감과 배쪽의 부드럽고 농후한 지방이 한 껏 맛의 조화를 부리는 게 특징이다
 시메사바란 고등어초절임을 말한다. 등쪽의 씹히는 질감과 배쪽의 부드럽고 농후한 지방이 한 껏 맛의 조화를 부리는 게 특징이다
ⓒ 맛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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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년 10월에 일이다. 시모노세키항 근처 식품매장에서 고등어회와 시메사바(고등어를 두쪽으로 포를 떠 소금에 절인 뒤 다시 식초에 담근 것)를 각각 한 팩씩 구입했다. 10여시간 넘는 뱃길이 지루하지 않도록 이 횟거리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실 요량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여러 사람이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고, 나는 고등어회를 내놓았다.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무른 고등어의 식감이 그리 당기지 않았나 보다. 물론 고등어회를 시메사바에 앞서 내놓은 이유가 있었다. 시메사바보다는 고등어회가 더 대중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번엔 시메사바를 내놓았다.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순식간에 동나고 말았다. 한국에서 시메사바를 찾는 부류는 대개 회란 회는 거의 섭렵한 다음에 찾는 편이다. 그 정도로 맛이 강할 뿐 아니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음식이다. 헌데 너도나도 맛있다고 달려드니 이건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물론 그들이 시메사바의 맛을 온전히 이해하고 먹었을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고기 씹는 맛'이란 표현에서 보듯 고등어와 소금과 식초의 조화로움 속에 피워나는 맛보다는, 그저 고등어회보다 씹는 맛이 우수해 맛있게 먹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있다. 누구도 비린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 마트에서 파는 게 한국의 이름난 초밥집의 시메사바와 맞먹는 실력이라니. 역시 시메사바 종주국다운 맛이었다.

#.2

요즘은 이자까야같은 곳에서도 시메사바를 파는 모양이다. 헌데 맛을 본 사람들은 '그거 비린내가 나서'라고 말한다. 시메사바는 비린내가 날 이유가 없다. 소금과 식초를 이용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비린내가 난다면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자가 시메사바가 아닌 납품받은 시메사바이기 때문이다. 그건 무늬만 시메사바이지 인스턴트나 다름없다. 대량으로 생산한 시메사바에 정성이 깃들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리사가 정성을 다해 소량으로 만든 시메사바는 미각이 반하는 맛이 있다.

둘째, 대량생산하다보니 냉장이나 냉동 상태로 장기간 보관할 수밖에 없다. 시메사바가 오래되었는지 아닌지는 때깔을 보면 안다. 겉표면이야 식초에 의해 하얗게 변색이 되는 게 당연하지만 절단면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냉동은 색이 바래 어둡고 탁하지만 신선한 시메사바는 선명한 붉은색을 띤다. 이런 시메사바에서는 비린내가 날 이유가 없다.

시메사바처럼 우리 입맛에 익숙하지 않은 음식일수록 처음에 잘 배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맛객은 운이 좋았다. 초밥 장인으로 추앙받는 남가스시에서 맨 처음 맛을 봤기 때문이다. 약간 짭쪼롬하면서 시큼함 맛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선회에 대한 관념을 바꿀 정도로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또다시 생각나는 것을 보면 첫 인상이 나쁘진 않았나 보다.  

시메사바라고 해서 다 같진 않다. 이 말은 아무데나 가서 찾으면 실망할 확률이 높다는 얘기이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주문 전에 여기서 직접 만든 것인지, 아니면 납품받은 건지 물어보고 주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

#.3

2년 전이었던가. 재래시장 어물전에 싱싱한 생물고등어가 보였다. 까만 눈동자와 탱탱한 몸체는 나를 유혹했다.

"고등어 주세요."
"소금 쳐드릴까요?"
"아뇨! 손질하지 말고 그냥 주세요. 회로 먹을려고요."
"예?"

회로 먹는다는 내 말에 어물전 아주머니는 손사레를 치며 말렸다. 나는 그냥 알았다고만 말하고서 고등어를 들고 왔다. 아주머니에게 시메사바 어쩌고 저쩌고 얘기해봤자 이해도 못할테니까. 집에 돌아온 나는 곧바로 시메사바를 만들기 위해 고등어 포를 뜨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럴수가.

배를 가르고 포를 뜨면서 보니, 생각보다 신선도가 떨어졌다. 나의 첫번째 시메사바 도전기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고등어는 눈으로 보이는 게 신선도의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농축된 가을고등어로 만든 시메사바는 늦가을의 진미

시메사바로 만든 초밥도 맛이 깊다
 시메사바로 만든 초밥도 맛이 깊다
ⓒ 맛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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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을에 제주를 찾는 많은 관광객들이 맛보는 음식 중에 고등어회가 있다. 확실히 제주에서 맛보는 고등어회는 다르다. 쫄깃한 식감은 서울 어딘가에서 먹었던 무른 고등어와 비교가 되었다. 그런데 제주 활고등어의 비밀을 알고 또 제대로 맛을 안다면, 활고등어 찬사는 일단 접는 게 순리다. 그렇다고 이즈음에 최고로 맛이 농축된 고등어를 맛보지 않는 건, 미각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고 말이다.

그래서 맛객이 가을 진미를 찾아 나선 곳은 성산포항. 이른 아침의 성산포항은 밤새 조업 나갔던 갈치배와 멸치배들의 입항으로 활기가 넘친다. 한쪽에선 조그맣게 어물전이 서기도 하는데 주로 갈치와 함께 올라온 고등어나 참치, 넙치, 뿔소라 등 자연산 해산물들이 대부분이다.

"고등어, 오늘 아침에 들어온 건가요?"
"배에서 방금 내린 거예요."

신선한 고등어는 은빛과 금빛, 청빛이 아름다울 정도로 빛난다. 이 고등어가 그랬다.

"횟감으로 가능하겠네요."
"가능한데 이건 살이 물러서. 횟감으로는 참고등어가 좋아요. 물건 팔면 그만이지만 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요."

참고등어란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그놈들을 말한다. 통통한 일반고등어에 비해 작고 날렵하게 생겼다. 육질이 단단해 주로 횟감으로 먹지만 깊은 맛은 떨어진다.

난 회가 아닌 시메사바로 만들 요량이었기 때문에 10여마리가 넘는 고등어를 단돈 2만원에 구입했다. 물론 배를 갈라 내장은 모두 빼달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더 신선도를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요즘 고등어가 맛있는 이유는 지방이 오를 대로 올랐기 때문이다. 최대 15%까지도 지방으로 채워진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배를 가른 고등어 뱃속을 살펴본 바, 하얗게 낀 지방덩어리가 육안으로 확인되었다. 고등어 육질이 참고등어에 비해 무른 이유도 지방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육질이 무르다고 해서 나쁜 것만도 아니다. 더군다나 회가 아닌 시메사바용 고등어 아닌가.

완성된 시메사바를 맛봤다. 등쪽의 붉은살은 훨씬 씹는 맛이 강화되었고, 배 쪽의 지방은 버터가 입에서 녹는 듯 부드럽고 고소했다. 두가지 질감이 입안에서 연출하는 그 맛은 농후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활고등어회 맛보고 맛있다는 그대여. 혹, 이 가을의 시메사바 맛이나 봤는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시메사바, #고등어회, #고등어,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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