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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겉그림.
 <나쁜 사마리아인들> 겉그림.
ⓒ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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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낙인찍기 전까지는 나 역시 이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선정했다기에, 그리고 요즘 그 불온서적들이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극해서인지 아주 잘 팔린다기에 읽어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경제 과목을 아주 싫어했기 때문에, 경제 관련 서적을 읽는다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 책은 전문 경제학 서적이 아닌, 나처럼 경제를 잘 모르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이도 어려워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책이었다.

경제학을 모르는 내가 무식하게 이해한 이 책의 결론은 이렇다. 현재 부자가 된 나라들은 과거에 모두 보호 무역과 보조금 정책을 써서 발전하였다. 그런데, 개발도상국가들에게는 자신들의 성공 비법을 숨기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천하고 강요하여 오히려 개발도상국가들의 발전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되는 세계화를 바라보며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은 하지만, 신자유주의 측의 주장을 무식한 머리로 어떻게 반박해야할지 몰랐던 나 같은 사람에게, 이 책은 자유무역의 문제점을 여러 가지 통계자료, 많은 나라의 사례, 유럽 각국의 역사, 때로는 감성적인 호소 등을 통해 조목조목 짚어준다.

6살 아이에게 돈 벌어오라는 '신자유주의'

이 중 감성적인 호소이면서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은 '여섯 살 먹은 내 아들은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약간은 자극적인 제목의 제3장이었다.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이 장의 내용은 책 표지를 반쯤 싸고 있는 책날개에도 일부가 소개되어 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내게는 여섯 살 난 아들이 있다. 이름은 진규다. 아들은 나에게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지만, 스스로 생활비를 벌 충분한 능력이 있다. 나는 아들의 의식주 비용과 교육 및 의료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내 아들 또래의 아이들 수백만 명은 벌써부터 일을 하고 있다. 18세기에 살았던 다니엘 디포는 아이들은 네 살 때부터 생활비를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을 하면 진규의 인성 개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는 지금 온실 속에서 살고 있기에 돈이 중요한 줄 모르고 지낸다. 아이는 자기 엄마와 내가 저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한가로운 생활을 보조하고 자신을 가혹한 현실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에 대해 전혀 고마움을 모른다.

아이는 과잉보호를 받고 있으니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 아이가 경쟁에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노출될수록 미래에 아이의 발전에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아이는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고 일을 하게 해야 한다. 아이에게 더 많은 직업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아동 노동이 합법적이거나 최소한 묵인이라도 되는 나라로 이주를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 중에서 이 말을 맞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서구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게 권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처방이 바로 이에 비유할 만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개발도상국가들이 이 처방을 따른다면,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내가 여섯 살 먹은 아이를 노동 시장으로 몰아넣는다면 아이는 약삭빠른 구두닦이 소년이 될 수도 있고, 돈 잘 버는 행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뇌수술 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 진규가 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둔다면 설령 200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보수를 주겠다는 제의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이 있다 해도, 어려운 뇌수술을 성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잠깐만 생각해도 어린 아이를 보호하지 않고 경쟁에 노출시키는 것은 미친 짓이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 양육한 후에 세상에 내 보내어야 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쁜 사마리아인들인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아직 아이라고 할 수 있는 개발도상국들의 산업을 당장 경쟁에 노출시키라고 하고 있고, 그것을 신자유주의 이론으로 포장하여 옳은 것이라고 믿게 만들고 있다.

일본, 한국, 독일 사람도 옛날엔 게을렀다

개발도상국의 산업을 아직 여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노동을 시키는 것에 비유해서인지 그 의미가 좀더 피부에 와 닿았다. 그리고, 충분히 보호해 주지 않으면 개발도상국들의 산업은 교육을 받지 못해 핵물리학자나 의사가 될 수 없는 불쌍한 아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에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이 책은 외국인 투자의 문제점, 공기업의 득과 실(하지만, 결론은 공기업의 민영화가 더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선진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는 저작권 개념의 문제, 물가 안정의 득과 실(경제 성장과 함께 가는 인플레이션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주장과 그 근거들을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을 하나하나 거론한다.

이런 내용들은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경제 정책 방향과 반대되는 주장들이다. 게다가 저자가 워낙 다양한 자료들을 가지고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조목조목 비판을 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으로 선정한 듯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개발도상국의 미래에 대한 절망만 읽은 것은 아니다. 9장 '게으른 일본인과 도둑질 잘하는 독일인'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편견을 반성하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말리를 여행할 때 그 지역 사람들이 한국인들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는 것에 놀랐고, 이렇게 게으르니 나라가 가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인도를 여행할 때는 가난에 지친 많은 이들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에 화가 났고, 힌두교라는 종교를 믿기 때문에 인도는 미래가 밝지 않은 나라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유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교육을 중시하며 근면 성실하기에 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 역시 많은 이들이 가진 편견,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게으르고, 그들의 종교나 문화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서 현재는 근면 성실한 우리나라 사람도 20세기 초반에는 게으르고 야만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세계적으로 일 열심히 하기로 소문난 일본인들도 1915년에는 게으르고 태평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에는, 현재 우리가 정확하고 준법정신이 투철하며 무뚝뚝하다고 생각하는 독일인들도 19세기 중반에는 협동정신이 부족하고 속이기를 잘하며 너무나 감정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도 적혀있다.

세계 모든 나라엔 희망이 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인도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가 가난하기에 그들의 문화가 그들의 발전을 방해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만, 미래는 다를 수 있다. 미래의 언젠가 그들이 세계의 선도 국가가 되고, 세계는 인도 힌두교와 경제 발전의 상관관계, 아프리카 이슬람 문화와 경제 발전의 연관성을 연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었다.

이런 내용을 읽으니 세계 모든 나라에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현재의 모습만으로 어느 나라의 문화와 미래를 싸잡아 평가 절하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임을 깨닫게 되었다.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 2061년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아프리카 모잠비크에 세계 초일류 기업이 생겨난다는 가상 뉴스를 싣고, 맨 뒤에는 비관적인 전망을 담은 미래의 가상 뉴스를 담았다. 앞으로 어떤 정책을 채택하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현재는 가난한 국가인 모잠비크가 세계 초일류 기업을 가진 성공한 부자나라가 될 수도 있고, 가난을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처방을 듣지 말고 개발도상국들 각자의 사정에 맞게 자국의 산업을 보호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가 편 가르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 좌파에 속하는 학자인지 그래도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학자인지는 잘 모르겠다. 불온서적으로 찍힌 책의 저자가 되었으니 빨갱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방대한 근거 자료와 함께 신자유주의 정책을 건전하게 비판하는 또 하나의 시각을 만난다는 측면에서 유익한 시간을 갖게 해 줄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부키(2007)


태그:#나쁜 사마리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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