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캘리포니아를 달군 또 하나의 결전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당선된 11월 4일, 이 예측하기 쉬웠던 대통령 선거와는 달리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격렬하고 팽팽한 또 하나의 대결이 이루어졌다. 동성애자의 결혼에 관한 권리를 제한하는 '캘리포니아 국민발안 8(Proposition 8)'에 대한 찬반투표가 그것이다.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국민발안 8에 대한 찬성자들, 그리고 동성애자와 리버럴한 젊은 층을 위주로 한 반대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한 표라도 더 받기 위해 총력을 펼쳤다. 제각기 오바마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말이다.

 

오바마는 국민발안 8에 대해 분열적이고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크리스찬으로서, 결혼은 남성과 여성이 만나 이루는 것, 그리고 남녀 커플이 동성 커플보다 좀 더 권한을 누리는 것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국민발안 8을 반대하는 쪽의 사이트인 'No on Prop 8.com'은 오바마가 공식적으로 밝힌 국민발안에 대한 반대 견해를 대대적으로 선전했고, 찬성자(동성결혼의 반대자)들은 오바마의 사적인 견해를 밝힌 부분만 녹음을 따서 전화로 들려주는 등의 선거운동을 펼쳤다.

 

투표 결과, 찬성 즉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쪽이 52.5%(540만 명)을 얻고 동성결혼을 옹호하는 측이 47.5%(490만 명)를 얻어 결국 5%포인트 차로 국민발안 8에 대한 찬성이 승리했다. 승리한 쪽에서는 환호가 나왔지만, 패한 쪽에서는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진보세력이 어째서 국민발안 8에는 찬성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실망과 분석이 뒤따랐다.

 

'국민발안 8'은 어떻게 나왔는가

 

2000년대 들어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그 결과 권익이 신장된 소수집단은 동성애자 집단일 것이다.

 

이들의 권리 신장에는 멀게는 법 앞의 평등한 보호(equal protection of the law)가 명시된 수정헌법 14조, 인종·종교·성별·성적 지향성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는다는 1960년대 인권운동의 성과, 그리고 가깝게는 캘리포니아 대법원의 평결을 거스르고 동성애자 커플에게 결혼 허가서를 발행(2004년)한 샌프란시스코 시장 개빈 뉴섬(Gavin Newsom)의 노력 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성애자의 권리는 2008년 5월 15일 캘리포니아 대법원이 '인 레 결혼 판결(In Re Marriage Case)'에서 "결혼을 남녀간의 관계로만 제한한 법은 캘리포니아 헌법의 법 앞의 평등한 보호 조항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결을 내림으로써 정점에 이르는 듯 했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의 정치적 성장만큼 반대자들의 활동도 구체적이 되어갔다. 반대자들은 'protectmarriage.com'이라는 조직을 결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다시 동성결혼을 불법화화는 안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국민발안에 필요한 서명인 수를 채운 후 2008년 11월 4일 동성결혼이 국민투표에 부쳐지도록 한 것이다.

 

국민발안 8의 찬성자, 즉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세력에는 정치적으로는 매케인 상원의원, 전 백악관 대변인 뉴트 깅그리치 외 많은 공화당 국회의원들, 종교적으로는 로마 가톨릭 교회, 정통 유대교 신도 연합, 가장 열성적으로 활동한 말일 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모르몬 교회),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미국가족협회와 같은 가족 중심 단체 등이 있었다.

 

동성결혼식 거부하는 교회는 고소당한다?

 

이들은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면 선생들은 유치원 정도의 어린이들에게도 동성결혼은 이성 결혼과도 똑같이 정상적인 것이라고 가르칠 것이며 교과서에는 아빠도 남자, 엄마도 남자인 혹은 아빠도 여자, 엄마도 여자인 괴상한 삽화가 실릴 것이라고 선전했다.

 

그리고 동성간의 결혼식을 치러주기를 거절하는 교회는 고소를 당할 것이며 동성결혼을 인정함으로써 근친결혼, 수간, 일부다처제 같은 성적 이상형태도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을 주장하며 창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국민발안 8의 반대자들은 '모든 이를 위한 평등(Equality for All)'이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No on prop8.com'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힘을 모았다. 캘리포니아 여성유권자 연맹,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그리고 <LA타임즈>,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등 캘리포니아의 주요 언론사들, 그리고 <뉴욕 타임즈>가 이에 힘을 보탰다.

 

그뿐 아니라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 구글, 애플 등이 국민발안 8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거금을 기부했다. 영국 국교회, 일부 진보적인 유대교 그룹들, 캘리포니아 교사 협회, 그리고 오락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동성결혼을 옹호했다.

 

이들이 강력하게 주장한 바는 국민발안 8은 잘못된 것이고, 불공평한(wrong and unfair)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Yes on prop8'이 말하는 것과는 달리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부모가 자녀가 받을 어떤 내용의 교육을 거부할 권리, 그리고 교회가 자신들의 신조에 맞지 않는 커플의 결혼식을 주관하기를 거부할 권리가 이미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오바마가 매케인과 차이를 멀찍이 벌여놓은 것을 보고는 자신들의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졌지만... 무시할 수 없게 성장한 동성애 세력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파와 동성결혼 찬성자들이 2008년 모은 기부금은 각각 3600만 달러, 그리고 3800만 달러였다. 특히 국민발안 8에 대한 반대가 우세할 것이라고 점쳐져서인지 올해 10월 찬성 측은 240만 달러, 반대(동성결혼 찬성) 측은 그것의 4배가 넘는 1076만 달러의 기부금을 거두어들였다.

 

국민발안 8과 유사한 내용, 즉 동성결혼 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국민발안 22를 두고 진행된 2000년 국민투표에서 보인 22%포인트의 격차는 이번 국민투표에서 5%포인트로 줄었다. 이는 동성애자 집단이 양적으로 성장하고 문화적·경제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이 됐음을 의미한다.

 

동성애자들은 동성결혼 합법화를 비롯한 동성애자들의 권익 신장을 인권운동의 연장으로 본다. 즉 자신들의 요구는 문명의 끝이자 고모라 성을 향하는 타락의 시작이 아닌, 자유와 정의에 관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투표 결과에 실망을 표하면서, 'yes on prop 8' 측의 근거없이 공포를 일으키는 선전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갔으며 다른 인종에 비해 교회 활동에 더욱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흑인들의 특성상 보수적인 교회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패인을 분석했다. 그리고는 다시 국민발안 8의 정당성을 묻는 법률적인 대응을 시작했다.

 

하지만 명분도 돈도 충분했던,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법원의 합헌 판결을 등에 업고 있었던 동성결혼 찬성 세력의 패배가 단순히 선전과 홍보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일까? 어차피 선전선동에 의존한 것은 양측이 피장파장인데 말이다.

 

동성결혼 찬성 세력은 왜 졌을까

 

나는 동성결혼을 찬성하는 '진보'(일단은 이렇게 부르자) 세력이 실패한 원인이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즉 일반 대중은 동성애자의 평등 추구와 세력화가 역사의 바퀴를 앞으로 굴리는 진보적인 의미를 띤 사건인가, 아니면 단지 다양성을 추가하는 리버럴한 사건일 뿐인가에 대한 확신에 찬 대답을 아직 얻지 못한 것이다.

 

동성애자들의 권익 추구가 그들 말대로 인권운동인지, 아니면 이익집단의 이익 추구인지를 판정하는 기준은 '대표성'에 있지 않을까 한다. 즉 근대 유럽의 시민혁명을 주도한 부르주아 계급이나 1960년대의 인권운동을 이끈 흑인 계층은 단순히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결과를 낳지 않았다.

 

소수의 지배계급에게는 부끄러움을 통한 각성을, 자신들이 속한 계층, 계급에는 자유와 평등을 그리고 그밖의 소수집단과 미래 세대에게는 자신들과 같은 결실을 나눠가질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이처럼 역사 진보의 주체가 되는 계급과 계층은 총체적인 시대의 모순을 해결해야 하는 운명을 짊어졌었고 실제로도 그 모순을 해결할 능력이 있었던 '대표선수'들이었다.

 

동성애자들의 권리가 신장됨으로써, 즉 그들이 결혼에 관한 권리를 이성애자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갖게 됨으로써 오늘날의 여성문제, 또 소수집단의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본 것이다.

 

표를 얻지 말고 마음을 얻어야 하는 이유

 

또한 국민발안 8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은 무 자르듯 선명하지가 않았다. 다시 오바마의 말로 돌아가 보자. 그는 공식적으로는 국민발안 8에 반대(즉 동성결혼의 차별에 대한 반대)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민발안 8에 찬성(결혼은 남녀간에 하는 것이고, 이를 동성결혼보다 더 우위에 두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리고 헌법을 개정하려는 국민발안이나 다른 시도에 대해서는 반대(이는 헌법의 정신 존중, 혹은 법이 결혼과 같은 사적 부문에 개입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한다고 덧붙였다.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오바마의 의견은 사실상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갖고 있는, 논리적으로는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하므로 동성애자도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심정적으로는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혼란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동성애자들이 말하듯 사람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뭔가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해 가지는 본능적인 증오심과 공포 때문이라고, 그리고 기존의 기득권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교회가 마음속에 심어 놓은 금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규정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52%가 모두 기독교인일 리가, 또 찬성한 48%가 모두 진보적인 인사일 리는 없다. 어떤 이는 오바마와는 반대로, 심정적으로는 동성애자들이 겪는 불평등에 연민을 느껴서 동성결혼에 찬성하고 싶으나 공적으로는 동성결혼을 허용함으로써 사회가 겪을 혼란을 생각해 YES를 던졌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성인이 된 개인들의 선택이므로 결혼의 권리는 찬성하지만 그중 입양의 권리는 입양될 아이가 누려야 할, 사회 대다수가 취하는 결혼의 형태를 택한 부부 밑에서 자랄 권리를 빼앗는 것일 수 있기 때문에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국민발안 8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은 혼란 그 자체이다.

 

사회 구성원 다수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어떤 것을 법률로, 수정된 헌법 조항으로 강제할 수가 있는 것인가? 아니다. 헌법은 사회 변화의 결과물이지 변화를 위한 수단이 아니다. 법적 논리에 의해 성립된 법 조항이 있다 한들 이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중이 있는 한 그 헌법이나 법률은 죽은 것이 된다.

 

대중이 어떤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단계에서 법은 필요가 없어진다. 사람들은 법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법으로 어떤 생각을 강제한다면 사람들은 얼마든지 무시하고 그 법을 사문화시킬 수 있다.

 

"생각이 강제되면 진보는 더욱 더디게 이뤄진다"

 

동성결혼을 합헌으로 결론내린 '인 레 결혼 판결'에서 소수의견(즉 반대의견)으로 제시된 다음 말은 그런 의미에서 일리가 있다.

 

"민주주의에서 사람들에겐 법률적인 방해 없이 변화의 속도를 조절할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작용하는 원리이다. 다양한 생각이 제안되고 토론되고 실험되는 것 말이다. 많은 경우 낯선 생각들은 처음에는 강한 저항을 받지만 결국에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어우러지게 된다. 하지만 그 어떤 생각이 (법에 의해) 강제로 주어지면, 반대는 더욱 심해지고 진보는 더욱 더디게 이루어지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다."

 

헌법과 법률로 먼저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동성애자와 동성결혼 반대 세력 모두 이 소모적인 싸움을 그만두어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다.

 

[최근 주요 기사]
☞ 대원 국제중의 황당한 교장추천서 "상위 1% 초등학생을 알려 달라"
☞ 나경원, 여교사 비하 발언 논란 "애 딸린 여선생님은 4등 신부감"
☞ "간판스타 지켜라"... 발등에 불 떨어진 야3당
☞ "<미디어포커스> 다 살펴봐라, "좌빨" 흔적 있는지"


태그:#국민발안 8, #오바마, #동성결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