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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길가 은행잎이 고운 노란색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오늘은 잔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다가 힘에 겨운듯 이파리를 떨구어냅니다. 샛노란 이파리들은 바람을 따라 이리 저리 흩날리는데, 길손은 싸늘한 날씨 탓인지, 어려운 경제 탓인지 호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찌르고는 급히 지나갑니다. 앞산에도 총천연색의 단풍이 곱게 물든 것을 보니 가을도 이미 깊었나 봅니다.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저는 저번에 님의 차를 받아서 긁었던 사람입니다. 오늘은 의령에 있는 '충익사'란 곳엘 다녀왔습니다. 제 직장이 의령이라,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뉴스를 보았거든요. 안내하시는 분은 '우담바라는 3,000년에 한번 나타나는 불가(법화경)의 상상 속의 꽃으로 여래가 재림할 때 꽃을 피운다고 하면서, 우담바라가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은 좋은 일이 생길 징조라며 우담바라를 보고 행운을 듬뿍 받아가시라'며 친절히 설명을 합니다.

이곳 우담바라는 관리소장인 윤재환씨가 '우담바라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충익사를 방문하는 꿈을 꾸고나서 발견했다고 한다.
▲ 충익사 소나무이파리에 핀 우담바라 꽃 이곳 우담바라는 관리소장인 윤재환씨가 '우담바라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충익사를 방문하는 꿈을 꾸고나서 발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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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더러 우담바라를 보았다는 글도 있고, 또 많은 분들이 우담바라의 실체에 대해 <곰팡이나 풀잠자리의 알>이라고 합니다만, 저는 우담바라라고 믿고 싶습니다. 제가 최근 2-3년동안 어려움을 겪었는데, 올해는 님과 같은 고마운 분도 만나고, 우담바라꽃도 직접 보았으니 내년에는 제게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왠지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사건이 일어난 그날(11. 4.) 아침은 이상하게 일이 꼬였습니다.
아침 여섯시, 아내는 여느날처럼 딸을 깨웠습니다.
"딸, 일어나야지? 여섯시다."
"조금만요. 5분만요."

아내는 차마 딸아이를 깨우지 못했습니다. 새벽 1시반께야 잠이 든 딸이 무척 안쓰러운가 봅니다. 지금 딸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또래아이들이 그렇듯이 공부에, 성적에 부대껴 자는 것도, 먹는 것도 부족합니다.

발견된 우담바라는 모두 45개로 경내 소나무 다섯그루 및 사당 단청에 피어 있다. 우리일행이 소나무를 살피다가 표찰이 붙지 않은 우담바라꽃을 발견했는데, 그러면 46개가 되는 것인가?
▲ 손바닥에 올려놓은 상서러운 꽃 발견된 우담바라는 모두 45개로 경내 소나무 다섯그루 및 사당 단청에 피어 있다. 우리일행이 소나무를 살피다가 표찰이 붙지 않은 우담바라꽃을 발견했는데, 그러면 46개가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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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이 지난 아침 일곱시!
"딸, 일어나! 일곱시다."
딸아이는 부리나케 일어나 책과 과제물을 챙기고, 세수를 하고, 옷을 입습니다. 후여덕 이십분이 지나고 말았습니다. 딸아이는 급히 신을 신고 가방을 들고는 문을 나섭니다. 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는 창가로 갑니다. 창문을 열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마당을 나서는 딸을 부릅니다.

"딸! 아버지가 차 태워줄테니 밥먹고 가!"
두세번을 고함쳐 부르자 할 수 없는지 딸아이가 다시 집으로 옵니다. 나도 급히 세수를 하고, 옷을 챙겨입습니다.

일곱시 35분! 딸애는 7시 50분까지는 교실에 들어가야 합니다. 겨우 15분 남았습니다. 우리는 차를 향해 뜀박질을 합니다. 시동을 걸고 출발을 했습니다. 골목길을 막 도는데, 등교하는 학생들이 길에 가득차 있습니다. 나는 차마 경적을 누르지 못합니다. '삑' 경적소리에 아이들이 놀랄지도 모르니까요.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우담바라에 번호를 매겨 표찰을 붙였다. 그런데 복을 혼자 갖고 싶은 할머니들이 우담바라가 붙은 솔잎을 떼어가는 바람에 지금은 우담바라갯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할머니들, 제발 가져가지 마세요!
▲ 꽃이 핀 곳에 표찰을 붙인 모습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우담바라에 번호를 매겨 표찰을 붙였다. 그런데 복을 혼자 갖고 싶은 할머니들이 우담바라가 붙은 솔잎을 떼어가는 바람에 지금은 우담바라갯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할머니들, 제발 가져가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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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골목길 모퉁이에 차가 한대 서 있습니다. 앞쪽에도 차가 빼곡히 주차해 있어서 그런지 꽁무니가 삐죽 길가운데를 향하고 있습니다. 한무리의 아이들이 느리게 진행하는 내 차옆을 급히 지나갑니다. 나는 할 수 없이 주차한 차 쪽으로 핸들을 틀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살짝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10미터 앞쪽에 겨우 차를 세우고 다시 긁힌 차량 쪽으로 걸어갑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리 심하게 긁힌 편은 아닌듯 합니다. 차 앞켠에서 전화번호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나는 할 수 없이 쪽지에 연락처를 적어놓고 다시 차를 타고 딸아이의 학교로 향합니다.

아침 여덟시! 출근시간이 가까워서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합니다. 사고처리는 아내에게 맡겨야할까 봅니다. 나는 아내와 다시 현장을 찾아서 찬찬히 차를 살펴봅니다. 연락처가 있습니다. 전화번호가 적힌 쿠션을 꺼꾸로 놓아서 아까는 발견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아내도 차량의 피해상태를 확인합니다. 그동안에 나는 차주인에게 전화를 합니다. 그 차주인이 바로 님이셨지요.

"여보세요?"
"차 금방 빼 드릴게요!"
급한 여자의 음성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제가 선생님의 차를 긁었어요."
"네, 지금 내려갈게요!"

전화를 하는 동안 옆에서 우리가 하는 모양을 지켜보던 할머니가 참견을 하고 나섭니다.
"차를 뭐 이리 세워놨노. 마이 긁힌 것도 아니고 새차도 아인데, 그냥 가모 되지 뭐할라꼬 전화는 하능기요."
"그래도..."

내가 대답이 궁해서 머뭇거리는데, 아내가 또 나섭니다.
"별로 많이 긁힌 것 같지는 않네예. 그냥 살짝 페인트가 묻은 것 같은데, 싹싹 닦으면 지워질 것 같은데..."

"아저씨가 참 양심적이다."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자리를 뜹니다.

오늘이 수능일인데, 시험에 지친 수험생 여러분! 우담바라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하니, 의령의 충익사를 찾아 귀한 꽃도 보고 행운도 가져가세요. 경내에는 향기로운 꽃과 아름다운 단풍도 있답니다.
▲ 사당 앞 누각의 단청에 핀 우담바라(가운데 부분) 오늘이 수능일인데, 시험에 지친 수험생 여러분! 우담바라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하니, 의령의 충익사를 찾아 귀한 꽃도 보고 행운도 가져가세요. 경내에는 향기로운 꽃과 아름다운 단풍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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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분이 흐르고 드디어 차 주인이신 님이 출근차림으로 도착했지요.  화를 낼 것으로 짐작했는데, 님은 웃으며 가볍게 말씀하셨지요.

"제가 어젯밤에 차를 세울 데가 없어서 여기에 세워놓고 찜찜했는데..."
"미안합니다. 애 등교시키다가 그만..."
"제가 아는 카 센터가 있는데요. 그곳에 차를 보여서 최대한 저렴하게 견적을 내어볼게요. 이렇게 전화도 하시고 기다렸는데..."

집으로 오는 길에 아내가 불쑥 내지른 한마디에 저는 생채기가 나고 말았습니다.
"저 사람도 오히려 귀찮아 합니더. 찌그러진 것도 아니고, 페인트가 묻은 것 뿐인데..."
"그래도 저분이 출근하면서 긁혀서 페인트가 묻은 차를 보면 얼마나 기분이 상하겠어?"
" 아까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뭔 뜻인줄이나 아십니꺼? '우째 그리 융통성이 없노?' 그 말입니더."
"그래도 아주머니가 '차를 어쩌다 이렇게 긁었나?'며 성을 내지 않고, '자기가 주차를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 나는 좋던데..."

"그리 귀한 딸, 밥 먹이는 것이 더 중하지요? 자상한 아버지."
"미안하다. 내가 서둘다가 그만...."
그제서야 아내는 웃으며 농담을 건넵니다.
"잘했어요, 서방님. 소형차라서 범퍼를 새 것으로 교체한다고 해도 많이는 안 나올 겁니더. 마이 달라고 하면 보험처리 할게예. 제가 알아서 처리를 할테니, 걱정하시지 말고 출근이나 하이소."

그리고 그제 아내가 제게 전화를 해 주었습니다.
"차주인에게 휴대폰이 왔는데, '그냥 세제로 싹싹 닦으면 질 것 같다'고 전화가 왔어요."
"그래도 범퍼 도색은 해야할텐데...고맙다는 말은 전했어?"
"예. 고마와서 만나자고 했더니 '괜찮다'며 전화를 끊었어예. 그날 융통성이 없다고 해서 미안합니더!"

충익사는 1592년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홍의장군 곽재우장군 및 의병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78년에 정화한 유적지로, '호국의병의 날'을 기념일로 제정될 길조로 보고 있다.
▲ 충익사 사당모습 충익사는 1592년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홍의장군 곽재우장군 및 의병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78년에 정화한 유적지로, '호국의병의 날'을 기념일로 제정될 길조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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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님이 읽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고마움을 어떻게든 표현하려고 우담바라에 실어 편지를 띄워봅니다. 융통성없는 남편에서 자상한 아버지의 위치를 찾게 해주시고, 아이들에게 '아직은 양심적인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고 얘기할 수 있도록 저에게 자긍심을 주신 고마운신 님! 그 배려로 인해 세상이 한결 밝아진 느낌입니다.

님! 가족 모두 항상 건강하시고, 그 고맙고 후덕한 마음을 따라 가정에 큰 행운이 깃드시길 빌어봅니다. 읽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태그:#우담바라, #충익사, #접촉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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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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