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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사진 찍으러 갈래? 수능 치는 선배 응원 나온 후배들 사진 찍으러 가려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싫어요. 엄마 혼자 다녀오세요."

"가자. 엄마가 맛있는 커피 사줄게."

"글쎄, 혼자 다녀오시라니까요."

 

수능 하루 전인 어제 12일 저녁. 문득 몇 년 전 제가 만든 수능 스케치 기사가 떠올라 취재도 할겸 아들에게 저녁 데이트를 청했다가 거절 당했습니다.

 

수능 전날, 밤새 응원하던 후배들은 사라졌다

 

밤 10시 혼자서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겨들고 근처 학교를 찾으니 놀랍게도 응원 나온 후배들이 한 명도 없습니다. 5년 전만 해도 응원하기 좋은 자리를 잡겠다면서 추위 속에서 밤을 새웠던 아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알아보니 몇 년 전부터 철야응원 준비 풍속도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학생들의 안전과 건강을 걱정한 학교나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만류도 있었고, 수험생이나 후배들도 잘못된 응원 문화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당시 취재를 하면서도 이건 아니지 싶었답니다. 아무리 선배 응원이라는 좋은 의도라지만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영하의 추위 속에서 밤을 새운다는 게 그리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사라진 철야 응원 덕분에 야간 취재는 허탕을 치고 말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푸근했습니다. 고생하는 아이들을 지켜봐야 하는 어른의 심정도 편치만은 않았거든요.

 

교통사고로 수능 포기한 아들, 극복한 줄 알았더니...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이 물어봅니다.

 

"많이 찍었어요?"

"아니, 애들이 없더라."

"당연하지. 이제 그렇게 응원하는 문화는 사라졌어요. 새벽이라면 모를까."

 

아들의 말끝에 잔꾀 하나가 떠오릅니다. 아들은 요즘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새벽 6시면 일어나 집을 나섭니다. 그 시간이면 수능을 볼 수험생 중 제일 먼저 입실할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거든요.

 

"아들, 너 학원 가면서 우리집 앞 D고등학교랑, S고등학교 앞에서 사진 몇 장만 찍어다 줄래? 여섯시쯤 일찍 들어가는 수험생 뒷모습도 좋고 앞모습도 좋고 학교 안에 들어가서 몇장 찍어다 주면 더 좋고. D고는 니 모교잖아."

 

취재에 눈이 어두웠던 저는 학원가는 아들에게 제가 할 일을 대신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아들의 눈이 갑자기 슬퍼보입니다.

 

"엄마, 저요…. 수능 때만 되면 가슴이 아파요. 교통사고로 수능을 망치고 바로 군입대했잖아요. 군에 있을 때도 그랬어요. 수능 때만 되면 가슴이 아팠어요."

"어머, 정말? 난 니가 너무 밝아서 다 극복한 줄 알았는데."

"극복? 그게 어떻게 극복이 돼요? 솔직히 후회도 많이 되고 엄마, 아빠나 저 자신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래서 늘 가슴이 아파요."

"그랬구나. 엄마가 미안해."

 

아들의 숨겨진 고통조차 알지 못하고 수능 현장을 사진을 찍어오라고 부탁한 철없는 엄마는 아들의 고백에 그만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들면, 수능 다시 볼까?"

 

그랬겠지요.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대부분이 태어나면서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오직 대학입시만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들일 테니 말입니다. 그러던 아이들이 어느 한순간 대학진학이라는 길에서 멀어져 버리게 되면 그날부터 그들의 인생은 암울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난 20년 대학만을 바라보고 살았던 녀석이 대학을 포기하고 일을 택했을 때 저와 남편은 걱정도 했지만 한편 환영했습니다. 그저 졸업장을 얻기 위해 가는 대학이라면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일을 배워 일찍 사회에 나가는 것이 오히려 성공하는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그런 길을 선택한 아들이지만, 그런 아들의 결정에 동의하고 지지를 보냈던 엄마지만 수능철이 오면 수능날이 오면 가슴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언제쯤이나 이런 마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수능날 아침.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 얼굴이 시무룩합니다.

 

"왜 수능 다시 보고 싶으니? 그렇게 할까?"

"꼭 그런 건 아닌데 이상해요. 수험생들이 교문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나도 그리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애들하고 같이 시험을 봐야할 것 같은 그런 느낌 있죠? 하지만 괜찮아요. 지금 배우는 중국어도 재미있어요. 엄마 너무 걱정마세요."

 

아들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고 카메라를 챙겨 집 근처 시험장에 가 보았습니다. 입실 만료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아서인지 응원 나온 후배들이나 부모님, 선생님들의 수도 많이 줄었습니다.         

 

커피를 챙겨주는 부모님들. 응원 피켓을 들고 나온 후배들. 그 사이에서 소란도 아랑곳 않고 기도하는 엄마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가슴이 짠해오며 코끝이 시립니다. 왜 눈물이 핑 도는 걸까요?

 

아이들아, 수능 실패가 인생 실패는 아니란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더 이상 수능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 아프고 슬픈 것일까요? 그래서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의 얼굴도 그렇게 힘이 없고 슬퍼보였던 것일까요. 아들처럼 힘을 내보기로 합니다.

 

'그래, 대학이 전부는 아니야. 대학을 포기해도 얼마든지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구.'

 

아마도 오늘 아들처럼 수능을 실패하고 마음 아파할 친구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당장 극복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늘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며, 대학만이 인생의 성공을 보장하는 길은 아니라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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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수학능력고사, #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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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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