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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로 세상살이가 더 팍팍해지는 요즘, 인간 관계에도 위기가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지금이 오히려 좀 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모아봤습니다. 우리 시대의 진상들. 도서관과 지하철 그리고 극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편집자말]
도서관에서는 '정숙', 기본 예의 입니다.
 도서관에서는 '정숙', 기본 예의 입니다.
ⓒ 전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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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학교 3학년 휴학생인 나는 교환학생 준비를 위해 집에서 가까운 시립도서관에서 토플을 공부하고 있다. 오전 8시부터 밤 10시까지 매일매일 도서관에 출입하다 보니, 이젠 누가 누군지, 무슨 공부를 하는지, 밥은 누구와 먹는지, 여자 친구는 있는지 등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만한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고정적으로 매일 도서관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의 완벽한 매너를 갖추고 있어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런데 몇몇 철없는 학생들이나 개념을 상실한 사람들의 등장으로 엄숙한 도서관의 면학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진상' 하면, 일반적으로 시끄럽게 떠든다거나, 자료 훼손, 한여름의 발 냄새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개월 동안 내가 경험한 도서관 진상들은 상상 그 이상의 '놈' 들이었다. 

[철없는 학생] 시립도서관 화장실은 꽃단장하는 곳?

지난주까지 저 시계 밑 소파에 잔뜩 낙서가 써져 있었다. 도서관 측에서 새로 바꾼 소파 시트. 이젠 낙서가 없길 바란다.
 지난주까지 저 시계 밑 소파에 잔뜩 낙서가 써져 있었다. 도서관 측에서 새로 바꾼 소파 시트. 이젠 낙서가 없길 바란다.
ⓒ 전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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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대 제대 후 4년째 애용하는 우리 도서관 주변에는 중학교가 5개 정도 있다. 그래서 이들 학교의 시험기간이면 도서관은 온통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꽉 찬다. 그중에는 목적이 공부인 학생들도 있지만, 한창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학생들이 여러 학교 학생들이 섞인 도서관에서 온전히 공부에만 몰입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리일 것은 뻔한 이치.

여자 화장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남자 화장실은 조그만 분장실을 방불케 한다. 학생들이 가방에서 하나둘 꺼내는 건 왁스와 빗, 헤어 드라이기이다. 한 줄로 서서 서로 개수대를 점령하고 머리를 만지느라 분주하다. 그리고는 여럿이서 몰려다니면서 시끄럽게 떠들고 논다. 그리고는 집에서 엄마가 전화가 오면 "엄마, 나 도서관이야~" 이런다.

열람실은 또 어떤가.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당근' 있다. 여럿이서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끊임없이 소곤대는 건 기본이고, 웬일로 의자에 앉았다 싶으면 핸드폰으로 DMB를 시청하며 터지는 웃음을 억지로 삼키며 키득거린다.

또 이들이 앉은 자리는 어김없이 낙서로 더러워진다. 대표적인 낙서로는 '아… 공부하기 싫다, 그런데 대학은 가고 싶다', '뭘 봐? 공부나 해!', '저는 XX여중 퀸카입니다 010-123-XXXX' 이 정도?

그런데 이러한 낙서들은 열람실 책상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휴게실 소파는 더 가관이다. 지워지지도 않는 매직으로 소파에다가 '나랑 사귈래? 010-123-XXXX', '난 XX중 얼짱', '난 XX여중 퀸카', '←꺼져 XX여중에서는 내가 퀸카거든?', '←웃기고 있네 너 죽을래?', '←하찮은 못생긴 것들이 까분다', '←꺼져 얼굴 까봐!!!' 이런 식으로 얼굴도 모르는데 자신이 더 예쁘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철없는 학생들의 낙서라니.

낙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도서관에서도 결국 지난주 소파 가죽을 모두 교체하는 큰 보수공사를 실시했다. 아무튼 나는 이런 그들과 상대하느니 애들 시험기간에는 잠시 도서관을 떠나, 대학 도서관에 있기로 했다.

[개념 상실 어른] 장윤정 노래가 이렇게 짜증나긴 처음

잊지말자, 휴대폰은 진동으로. 진동모드 다시 한번 확인해 '진상' 되지 말자.
 잊지말자, 휴대폰은 진동으로. 진동모드 다시 한번 확인해 '진상' 되지 말자.
ⓒ 전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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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몇몇 어른들도 도서관 진상 퍼레이드에 동참하고 있다. 아주 최근에 겪은 줏대 있는 아저씨를 소개해 주고 싶다. 여느 때와 같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흥겨운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좋아해요~ 사랑해요~ 거짓말처럼 당신을 사랑해요.'

그런데 휴대폰 주인은 화장실을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보통 벨이 계속 울리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계속 자기 공부들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이번엔 벨이다. 참다못해 결국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직접 휴대폰을 끄셨다.

잠시 후 휴대폰 주인이 돌아왔고 옆에 있던 아저씨는 (내 속이 시원하게도) 따끔하게 한마디 하셨다. 난 그때 당연히 휴대폰을 매너 모드로 해놓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또다시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 더 어이가 없는 건 휴대폰 주인이 전화를 받지도 않고, 벨이 계속 울리는데도 천천히 유유히 열람실을 걸어 나가시는 게 아닌가.

개념 있는 사람이라면 창피해서 뛰어가거나, 벨소리가 안 들리게 일단 통화 버튼을 누를 터인데, 이 아저씨는 출구에서 꽤 먼 곳에 앉아 있었으면서도 출구로 다 나갈 때까지 보란듯이 휴대폰을 열지 않는 여유(?)를 보이셨다. 그때처럼 장윤정의 노래가 짜증나게 들렸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저씨~ 도서관 입구부터 열람실까지 '정숙' '휴대폰 매너모드' '불쾌감 주는 행동 삼가'란 문구가 20개는 넘게 붙어있어요. 하다못해 열람실 책상 하나하나에도 그런 주의사항들이 다 붙어있는데, 지켜주세요 제발!'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이 입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품행제로 남학생]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방귀 냄새

조용한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일이 있다. 바로 생리현상, 방귀다. 도서관도 예외는 아니다.

한 번은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방귀 냄새가 솔솔 올라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냄새가 올라오는 방향과 사람들의 행동 등을 분석해 본 결과, 그 주인공은 바로 내 옆에서 공부하고 있던 고등학교 남학생이었다. 그러나 심증은 100%인데 물증은 없는 상황. 

이럴 경우 보통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법도 한데, 이 친구는 능숙한 괄약근 조절로 많은 양의 가스를 소리 없이 계속 내뿜고 있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냄새를 맡으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서 "아, 냄새" 라고 주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얘기한 후 학생을 쳐다보며 밖으로 나왔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뀌어놓고 피해자인 척 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몰래 방귀를 뀐 적이 있다. 사람인데 왜 안 그렇겠는가. 하지만 그때는 정말 내가 아니었다. 그리고 방귀를 왜 참는가? 다른 사람에게 불편 주지 말고, 차라리 화장실 가서 시원하게 빼고 왔으면 좋겠다. 

[닭살커플] 진상이지만, 사실 너희들이 부러워

처절하게 그려넣은 '자면 안돼'. 저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처절하게 그려넣은 '자면 안돼'. 저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 전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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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이지만 부럽고 꼭 따라해보고 싶은 진상들이 있다. 바로 '진상커플'이다. 우리 도서관에는 매일 출근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커플들도 있지만, 가끔씩 연애를 하러 오는 커플들도 자주 눈에 띈다.

모범커플들은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따로 떨어져 앉지만 진상커플은 무조건 붙어 앉는다. 그리고 칸막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서로 가까이 앉기 위해 의자를 붙이고 손을 잡고 등을 쓰다듬으며 가끔씩 몰래 뽀뽀도 한다. 본인들은 안 보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다 보인다.

솔직히 이런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치미는 것과 동시에 부러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제 공부해야 돼, 오빠도 공부해, 빨리."
"알았어. 손만 잡고 공부할게."
"나 이거 쓰면서 외워야 돼. 공부하자, 제발 오빠야."
"알았어. 그럼 다리 줘봐. 너 다리랑 내 다리랑 꼬고 공부하자."
"아, 사람들 쳐다보잖아."
"담요 가져왔잖아. 이거 같이 덮고 하면 되지~."
"아 오빠, 나 시험 망치면 오빠 때문이야."
"공부할 거야. 이제 하자, 공부 시작!"

그렇게 눈물겹게(?) 공부를 시작한 지 20분도 안 되었건만 여자가 먼저 잠이 들고 뒤따라서 남자도 잠이 든다. 이쯤되면 진상은 진상이지만, 솔직히 나도 (이 커플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나중에 여자친구가 생기면 한 번쯤 따라해 보고 싶은 풍경이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커플들아, 도서관 와서 놀 거면 나가서 놀아라. 열심히 공부하는 싱글들 가슴에 염장지르지 말고.

절박한 마음으로 공부하는 이용자들, 배려했으면...

시립도서관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찾는 곳이다. 학교 시험부터 국가고시까지, 어린 학생들부터 나이 지긋하신 어른들까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의자에서 엉덩이 몇 번 안 떼고 자신과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나 역시 절박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의 매너 없는 행동으로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 번 흐름이 깨지면 다시 그 궤도로 돌아오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도서관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공부하는 곳임을 잊지 말자. 우리 도서관에 가장 많이 붙어있는 문구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글을 마친다.

'정숙' '휴대폰 매너모드' '불쾌감 주는 행동 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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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서관,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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