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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로 세상살이가 더 팍팍해지는 요즘, 인간 관계에도 위기가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지금이 오히려 좀 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모아봤습니다. 우리 시대의 진상들. 도서관과 지하철 그리고 극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편집자말]
늦은 시간, 플랫폼에서 본 지하철 1호선.
 늦은 시간, 플랫폼에서 본 지하철 1호선.
ⓒ 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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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하철 1호선의 장거리 여행자이다. 등하교를 하려면 1호선 노선의 반 이상을 오고 가기 때문이다. '산 넘고 물 건너'라는 말이 있다. 집인 의정부에서 부천까지 나는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학교에 간다.

학교에 입학한 지 어느덧 3년, 전철로 통학한 지 33개월째. 이제는 장거리 통학이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조금만 피곤해도 어김없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매일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건을 만나게 되는 지하철 1호선은 이제 내 생활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종종 나의 멋진 여행길을 방해하는 무리들이 있다. 이들은 새벽 첫차부터 막차까지 고르게 분포하며,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한다. 특히 다른 노선에 비해 이들은 유난히 지하철 1호선에 집중돼 있다. 나는 이들을 이 사회에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관습을 전파하고, 뿌리내리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예의 없는 것들'이라고 이름 붙였다.

누구야? 내 단잠을 깨우는 게

가장 흔히 만날 수 있는 예의 없는 것들 중 하나는 "실례합니다!"라고 말은 하지만, 너무 대놓고 실례하시는 상인들이다. 전철 한 칸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목소리를 높여 자신의 상품을 홍보한다. 친절 서비스로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훑어주시는 센스까지. 철두철미하다.

특히, 7080 추억의 올드팝 또는 통기타 CD를 파는 상인이 제일 난감하다. 오지랖도 넓어 친히 음악까지 들려준다. 대체 누구의 동의를 얻었는가? 그저 "실례합니다" 한마디면 만사 오케이? 오전 또는 늦은 밤 피곤에 절어 잠시 눈을 붙이려는데, 어디선가 나타나 음악으로 잠을 깨울 때, 그 '욱' 하는 기분은 당해본 사람만 안다.

가끔 이런 상인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신기해서 구입한 물건에 하자가 있을 때면 대략 난감, 정말 울고 싶어진다. 한 번은 키토산이 들어있다는 '만병통치약급' 파스를 구입했다. 어깨에 붙이면 어깨가, 목에 붙이면 목이, 허리에 붙이면 허리가 낫는단다. 뿐만 아니라 발바닥에 붙이면 피로가 풀린단다. 무려 25장에 단돈 3000원. 혹해서 지갑을 열지 않을 수가 없다. 

집에 돌아와 피로를 풀어보겠다며 발바닥 양쪽에 파스를 붙이고 잠을 잔 다음날, 파스를 떼어내느라 정말 '엄~청' 고생했다. 파스가 아니라 종이테이프 같은 느낌이었다. 갈기갈기 찢어지며 떨어지는 파스. 찐득찐득한 접착제가 발바닥에 잔뜩 남는 파스. 말 그대로 낚인 거다. 그래도 돈 주고 산 거라고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지만 또 쓸 일이 있을까 싶다.

지하철 만취 승객, 난생 처음 신고를 하다

다음 타자는 보기만 해도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만취 승객. 술에 취한 건 똑같지만, 이들의 행태는 실로 다양하다. 그중에 '지네집안방형'과 '스트리트파이터형'이 대표적이다. '지네집안방형'은 그나마 얌전한 편에 속한다. 고작해야 술에 취해 드러눕는 정도가 다이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곁에 앉았다면 방심은 금물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늦은 밤. 한 젊은 남자가 잔뜩 술에 취해 자리에 앉았다. 거의 시체 처럼 앞으로 고꾸라지더니 침을 질질 흘리면서 잠을 잤다. 그 맞은편에서 있던 나도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내가 앉았던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느꼈다.

'자다가 종점까지 왔나' 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가기도 전에 나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그 남자의 토사물을 확인하는 순간 다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러니 행여라도 '지네집안방형' 취객이라고 안심하지 말지어다. 

문제는 '스트리트파이터형'. 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과 같은 존재다. 큰 소리를 내는 사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 혼자 중얼대는 사람, 욕설을 내뱉는 사람, 흉기를 휘두르는 사람까지 정말 각양각색이다. 그중에 내가 처음 신고를 해봤던 사람은 위에 설명했던 유형을 고루 갖춘 '인재'였다.

그는 해가 중천에 뜬 시간에 낮술을 하시고 지하철 승객에게 낯 뜨거운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보다 못한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승객이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 자신과 함께 전철에서 내릴 것을 권유했다. 그랬더니 "니가 뭔데 내게 그런 소릴 하느냐"며 멱살을 잡았다. 기분이 상한 그 승객은 욕을 하며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그러고 났더니 그는 더 의기양양해졌다. 주변의 아줌마들에게 "X지가 어딜 X지 옆에 있느냐"며 가위를 휘두르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자 한가운데 자리를 잡더니 옆에 앉은 사람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 난 그가 자리잡은 의자의 맨 오른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 점점 한두 명씩 자리를 떠나고 비로소 그 의자에는 그와 나 둘만이 앉아있었다.

그의 욕은 작렬했다. "XXX아, X지가 앉아있으면 당연히 X지는 꺼X야지! XX야 저리 안 꺼X? 이런 XX"를 시작으로 문장의 70% 이상이 욕으로 구성된 언어를 구사했다. 비위도 좋지, 그런데 난 정말 피곤해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마침 또 MP3를 듣던 중이라 이어폰까지 귀에 꽂고 있어 그의 말을 못 들은 체 했다. 그러다가 문득 전철 문에 붙은 신고 전화번호가 눈에 띄었다. 당장 핸드폰을 꺼내 안내원과 통화했다.

"여기 인천행 7521번 열차 8-1번 칸인데요. 술 드신 아저씨가 가위 휘두르시면서 욕하고 협박해요."

전화통화를 마치고 세 정거장이 지나서야 경찰이 왔다. 경찰이 다가와서 그에게 말했다. "선생님 무엇을 잘못하셨는지는 알고 계시죠? 저희와 함께 가십시다." 그리고 그의 대답에 모두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 선생님 명함 하나 주십시오."

방금 전까지 그렇게 당당하고 거침없던 그는 경찰 앞에선 순한 양이 되었다.

전철문이 닫히는 순간, 3초간 고민했다

전철에서 '부비부비'를 즐기는 이들을 경고하는 안내광고. 아랑곳 없이 즐기는 놈들 많다.
 전철에서 '부비부비'를 즐기는 이들을 경고하는 안내광고. 아랑곳 없이 즐기는 놈들 많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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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서 '부비부비'를 즐기는 이들도 있다. 사람들이 몰리는 출근길과 퇴근길에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꼼지락대는 그 느낌, 정말 혐오한다. 주로 서서 갈 때 많이 당하는데, 앉아 있을 때도 조심해야 한다.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 전철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의정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은 1-1번 칸에 사람들이 몰리는 편이다. 그날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간질간질. 허벅지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간신히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지경이라 몸을 돌리기는커녕 고개도 돌려볼 수 없는 상황. 그 찝찝한 느낌으로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기까지 2분 30초간을 보내야 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내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 허벅지를 문대고 있던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놈의 불룩 솟은 바지 지퍼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전철 문이 닫히고 있는데 뛰어들어가 '니킥'을 날릴까 3초간 고민했다. 시도하기도 전에 문이 닫혀 좌절하고 말았다.

말했다시피, 앉아있을 때도 안심할 수는 없다. 특히 문가에 앉은 경우라면 더욱 경계해야 한다. 머리 위치가 설명하기 난감한 곳의 위치와 비슷한 고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머리가 험한 꼴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얼굴로 밀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말로 설명해도, 막상 당하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 경우가 더 많다. 평소에 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몇 번 당한 뒤로 요새 열심히 이미지 트레이닝 중이다.

최근에는 통신의 발달로 DMB폰으로 활동 중인 예의 없는 것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조용한 객차 안, 어느 50대 아저씨의 손에서 우렁찬 주몽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주몽>이 인기를 끌던 때였다. 퇴근길에 <주몽>이 너무 보고 싶었는지 이어폰도 없이 시청중이셨다.

문제는 소리의 크기였다. 아저씨가 있는 객차 중앙에서 노약자석이 있는 끝 좌석까지 주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DMB폰이 보급화되면서 이런 경우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다.

요새는 또 출근길 무료신문을 수집하는 어르신들이 싸우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을 밀치고 경쟁적으로 신문을 집어 드는 모습은 흡사 야생동물들이 먹이를 낚아채는 듯한 살벌한 느낌을 받는다.

'예의 없는 것들' 상대할 영웅은 왜 없나

지하철 1호선 승객들. 이젠 핸드폰이나 PMP 등으로 DMB를 시청하는 승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지하철 1호선 승객들. 이젠 핸드폰이나 PMP 등으로 DMB를 시청하는 승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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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 아니라 지하철의 '예의 없는 것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전철이 운동장인 줄 아는지 뛰어다니며 소리지르는 꼬맹이, 교복 패션을 자랑하며 전철에 타서 갖가지 추태로 학교 망신시키는 중·고등학생, 높은 수위의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 자리 좀 앉겠다며 노골적으로 자리를 쫓아내는 젊은 할머니 등….

그간 내가 만났던 '예의 없는 것들'만 말하려 해도 며칠은 걸릴 것 같다. 그만큼 많다.

그에 반해 이들을 무찔러주는 '영웅'은 드물다. 저들의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해서 분개하지만 그들 앞에 나서 따끔하게 한마디 하기보다는, 용기 있는 '영웅'이 나타나 저들을 무찌르고 정의를 수호하기를 바라며 방관하고 있는 이들이 더 많다. 

마음 속에 꾹꾹 눌러 담을 한마디를 내뱉으면 영웅이 될 수 있는 곳, 그곳은 지하철 1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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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전철, #1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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