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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성 시신경 위축 망막증. 그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꿈'을 향해 달렸다. 2007년 겨울. 그는 국내에서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 일반 과목 임용고사(영어과)에 합격하였다. 화제의 주인공은 천안 두정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최유림 선생님이다.

 

지난 5일, 그를 만나기로 한 ‘천안 두정역’에는 깔끔한 검은색 정장 차림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신사 한 분이 나를 마중 나와 계셨다.

 

- 오시는 길이 힘드시진 않으셨어요? 앞이 보이지 않아서 혼자 통행하시기에 불편하신 점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아네요, 어려서부터 혼자 다녀서 그런지 이제는 익숙해요. 제가 불편한 건 사람들의 그런 시선들이죠. 장애인 혼자 돌아다니면 힘들 거라는 장애인은 어렵다는 그런 생각들이 저를 힘들게 해요."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난 처음부터 그는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편견에 갇혀 버린 채 질문을 시작하였다.

 

- 시각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어렸을 때 놀림을 받거나 상처를 받은 경험이 많으신가요?

"어린 아이들은 순수해요. 어렸을 때 친구들은 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었어요. 게다가 전 특수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힘든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몇몇 어른들의 행동에 상처를 받은 적은 있죠. 지금도 대놓고 심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요. 이 사람이 나에게 따뜻한 마음이구나, 저 사람은 그렇지 않구나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 살면서 세상을 향한 원망이나, 자신의 장애에 대한 불만 같은 것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원망까지는 아니지만 앞이 보이지 않아서 불편한 점은 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면서 살면, 굉장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전 제가 가진 장애를 인정하고, 순응하며 살아 갑니다. 삶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에요. 전 앞이 보이지 않는 대신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더 잘 느낄 수 있어요."

 

- 교사의 꿈은 언제부터 키워오신 건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그분의 영향으로 교직의 꿈을 키우잖아요. 저 또한 그랬어요.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감명을 받아서 교사의 꿈을 키웠습니다."

 

-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시고 합격 하셨잖아요? 실패에 대한 부담감이나 장애인으로서 임용고사 준비의 힘든 점은 어떤 것 이었습니까?

"단순히 공부를 하는 과정은 굉장히 즐거웠어요. 하지만 이것 역시 타인과의 비교가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친구들은 하나 둘씩 취업을 하고 사회에 진출하는데 나만 영영 시험공부에 빠져 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절 괴롭혔습니다. 또한 장애인이어서 안 된다. 장애인이라 힘들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편견이 가장 힘들 었습니다. 사실 일반인들도 '예비 장애인'입니다. 대부분의 장애인이 후천적인 원인으로 장애를 가지게 됩니다. 장애인과 비 장애인은 조금 다를 뿐입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 여가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시나요?

"전, 음악 듣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요. 앞이 보이지 않는 대신 다른 사람보다 청각이 더 발달한 것 같아요. 이 음악은 어떤 악기를 사용했나, 이 곡을 연주하는 사람의 지금 기분은 어떤가 이런 것들을 느낄 수 있어요. 그리고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씩 골프를 하고 있습니다.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잖아요. 다른 운동은 변화하는 물체를 감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골프는 앞이 보이지 않는 저 같은 사람이 하기에 굉장히 좋은 운동인 것 같아요. 공이 손에 맞는 순간에 공이 잘 맞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게 되죠.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술도 즐겨 마시구요(웃음)."

 

난 그가 골프를 한다는 사실에 한번 놀랐고, 그가 애주가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난 그가 앞이 보이지 않는 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특별한' 사람 취급했던 것이다. 그도 우리처럼 운동 경기에 열광하고, 친구들과의 술 한 잔을 즐기는 평범한 청년인데 말이다.

 

- 끝으로 꿈을 향해 달리는 다른 이들에게 한말 씀 해주세요.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마세요. 실패는 또 다른 경험입니다. 잠시 늦어질 뿐이지 영원히 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고민한다고 해결 되는 일은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방식입니다."

 

질문을 하는 내내 나는 그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틀에 박힌 편견에 갇혀 버린 채 헤어나오지 못하였다.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는 그. 조그만 난관에 부딪혀도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이라는 '벽'에 무릎 꿇은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는 작지만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다시 일어나 달려가십쇼. 여러분의 꿈을 향해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꽃들에게 희망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천영호, #최유림, #천안 두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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