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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던 흑인이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일하게 된다. 

 

그의 삶의 역정을 보니 차별의 세상에서 마약을 하는 등 방황도 하다 마음을 다잡은 뒤로는 ‘수도승 같은’ 자세로 공부를 하여 유능한 변호사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개천에서 용 나는 성공신화다. 중요한 것은 다음인 듯하다. 대학생 시절부터 시카고의 빈민가에 들어가 소외된 자들을 위한 공동체운동을 하는 그를 그 지도력과 헌신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따랐다고 한다.

 

처음부터 주류 백인 사회에 편입된 출세한 흑인으로서 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빈곤한 흑인들 편에 서서 세상을 바꿔보려고 한 것이다. 그러다 세상의 궁극적 변화는 아래에서 이루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런데 정치인 오바마는 흑인만을 대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차별 받는 흑인이 지닌 분노-정당하지만 그러나 파괴적인!-가 그를 짓눌렀다면, 그는 필경 급진적인 흑인정당을 이끄는 소수과격파 지도자쯤으로 머물고 말았으리라.

 

소수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모든 이가 함께 가는 대동세상을 이룰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그는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등 입장을 확고히 하면서도 미국 사회의 진정한 통합을 위해 끝없이 설득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마침내 그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한 번도 변절하지 않고, 자기 입장을 분명히 견지하면서도 모든 사람이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데 이른  것은 무엇보다도 이 같은 진정성이 사람들을 움직였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정확히 말해서 그는 흑인이 아니라 흑백혼혈이다. 백인이 아닌 모든 이를 ‘유색인’이라고 부르는 기이한 사회에서 (백색은 색이 아닌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적대적 흑과 백의 혼혈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의 당선연설에는 공격적 단어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고 하는 것, 단 한번, “세계를 찢어 놓으려는 사람들은 물리치겠다”는 문장이 있다는 기사는 부시의 세계와 전혀 다른, 대화와 통합의 시기가 펼쳐지리라는 예감이 들게 한다.

 

자기 사회를 온갖 이민자들의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무지개의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그 말, 미국 마음대로 폭력의 힘을 빌려 세계를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상생을 모색하겠다는 그 말은 화약연기 자욱하던 적대적 세상에 한 차례 소나기가 내리고 난 듯 신선하다.

 

집권하자마자 개신교와 기타, 영남과 기타, 부자와 기타로 사회를 나누고, 네 편 내 편을 갈라 세우면서, ‘기타’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막무가내로 내보이던 쪽에서 갑자기, “자신은 오바마와 비전이 같다”는 발언이 나왔다. 당선 축하용 개그라는 만평도 있지만, “오바마는 좌파가 아니다”, “오바마는 사이비 좌파와 다르다”는 말도 계속 들려온다. 결국은 오바마는 자신들과 한편이라는 말인 모양이다.

 

그의 비전에 공감한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힘센 나라 대통령께 기회주의적인 연대감을 느낀다는 말인가? 진심으로 통합과 무지개를 추구하며 살아온 역정과 노골적으로 차별과 흑백이분법을 추구해 온 이력 사이에는 너무 많은 거리가 있다.

 

비전이라는 말에는 시력이란 뜻도 있다는데, 어느 날, 진짜로 설마, “사실은 두 사람 다 안경도 안 쓰고 시력이 비슷하다는 말이었다”는 개그를 듣게 되지는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민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오바마, #시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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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소리>는 광주전남권을 대상으로 발간되는 주간신문으로 2001년 2월 창간된 대안언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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