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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배신을 해 본적이 있는가?'

'당신은 배신을 당해 본적이 있는가?'

 

글을 쓰기 전에 배신이라는 화두를 던져봤다. 배신. 어감상으로나 의미상으로 유쾌한 단어는 아니다. 그런데 이 배신이라는 단어를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그 유쾌한 배신을 한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물론 <배신>(한겨레 출판)이란 책을 통해서다.

 

저자 6인은 이 책에서 이 시대의 배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삼성의 비리 아니 이건희 회장 일가의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의 배신, 나의 배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신이 배신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어려움, 그 의미를 진솔하게, 그러면서 확신에 찬 어조로 풀어낸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배신의 정신분석학'를 주제로 배신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의미와 처방을 내놓고, 우리 시대 대표적인 진보 논객이라 할 수 있는 진중권 교수는 '대중의 배신, 논객의 배신'이란 주제를 가지고 대중들의 배신 형태와 논객들이 대중과 시대를 배신한 이유에 대해 솔직 대담하게 이야기한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신의 딜레마, 배신의 과학'란 주제로 쓴 정재승 교수의 이야기와 지식인으로서 역할을 포기해버리고 지식인으로서의 존재성을 스스로 버려버린 이 시대 지식인과 대학의 천박한 모습을 꼬집은 조국 교수의 '지식인의 배신',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 비서실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교수가 현 정부의 쇠고기 수입과 광우병의 위험, 한미FTA 체결이 가져올 위험성과 이명박 정권의 747 정책이 얼마나 허구이고 문제인가를 지적한 '747은 어떻게 서민을 배신할 것인가'가 담겨있다.

 

배신이라고 같은 배신은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두 개의 배신을 볼 수 있다. 하나는 개인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국민 대다수의 이익을 위한 공의의 배신과 일부의 계층을 위해 국민대다수의 생각과 마음을 배신한 국민의 배신이다. 전자가 김용철 변호사의 배신이라면 후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배신이다. 그리고 삼성 이건희 회장의 혐의를 벗겨준 법원의 배신이다.

 

어느 날 삼성구조본부장을 지냈던 사람이 삼성의 비리를 폭로했을 때 모두 그를 이상한 인간으로 생각했다. 풍문으로 떠도는 말처럼 그가 삼성에 50억원, 100억원을 요구했는데 들어주지 않아 비리를 폭로했다고 믿었다. 그는 이에 대해 자신이 삼성을 배신한 것은 강요된 배신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50억원도 100억도 그들이 만들어 낸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삼성사건을 폭로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아는 문제를 공론화했을 뿐이다."

 

그가 삼성의 비리를 폭로했을 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그를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당시 친구들과 만나면 한때 운동권에서 있었다는 친구도 그를 비난했다. 주로 이런 발언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삼성에서 얻어먹을 것 다 얻어먹고 이제 와서 왜 비리를 폭로했느냐, 경제도 어려운데 지금 왜 그런 배신을 때리느냐, 기업이 살아야 일자리도 있는 것 아니냐, 혹 미친 놈 아니냐 등등.

 

앞으로 삼성에선 전라도 사람들은 절대 뽑지 않을 것이다라는 발언도 나왔다. 그들은 당장의 눈앞의 이익이 떨어질까봐 그를 이 시대 최대의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말했다.

 

이에 대해 그는 어떻게 말할까. 자신이 삼성을 배신한 것은 사실이라고.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선 삼성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 일가와 몇 명의 가신들을 배신한 것이라고. 그러면서 다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동시대에 내가 할 일은 이제 다 끝났고 나머지는 국민들의 역량에 따라 바뀔 것이다."

 

그의 꿈은 한 가지란다. 자신의 발언이 단초가 돼서 자신이 제기한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는 방향으로 진전되는 것. 그러나 그의 소박한 꿈은 법원에 의해 무너졌다.

 

이명박의 경제의 배신, 미국식으로 가면 망한다

 

김용철 변호사와는 정반대의 배신을 한 사람들도 있다. 이건희씨의 혐의를 대부분 무혐의로 만들어 준 법원과 한미FTA로 서민들을 배신한 노무현도 그 중 하나다. 그리고 또 한 사람, 747공약을 내놓았던 이명박 정부다. 정태인 교수는 강의를 통해 10년 내에 7%성장, 일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개 결제대국을 달성하겠다는 747정책은 허구이고 서민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가차없이 말하고 있다.

 

그는 현 정부가 쓰고 있는 시장주의 정책, 규제완화, 공기업 민영화 정책 같은 것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서민들의 삶을 파탄에 빠지게 할 거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가 미국식으로 가면 망한다고.

 

정 교수의 말이 아닐지라도 미국식 시장주의는 이미 패배했다. 흑인인 오바마가 새로운 가치를 들고 미국의 새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봐도 그 사실은 이미 증명되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아직도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모른 척 하는지 인정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배신을 권하는 사회라고 한다. 그러나 그 배신의 형태는 다르다. 정의를 위한 배신이 있는가 하면, 국민의 마음을 배신이 있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의 말은 생각해볼 의미가 있다 하겠다.

 

"내 집단의 이익을 옹호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집단에 대한 신뢰를 지키려는 노력은 인간 외에 그 어떤 동물 집단에서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배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행동은 배신이 아니라 어찌보면 지식인의 책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김용철 외 지음, 한겨레출판(2008)


태그:#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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