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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금강산, 대둔산의 금강구름다리
 호남의 금강산, 대둔산의 금강구름다리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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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서 올려다보고 찍은 금강구름다리
 밑에서 올려다보고 찍은 금강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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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금강산'이란 별명을 가진 산이 몇 있습니다. 전북 정읍과 전남 장성에 걸쳐 있는 내장산이 그렇고, 전남 순천과 담양에 걸쳐 있는 강천산이 그렇고, 전북 완주와 충남 금산, 논산에 걸쳐 있는 대둔산이 그렇습니다. 저마다 금강산이란 명칭으로 불리길 원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자랑할 만한 풍치가 있기 때문이겠죠.

모두 가봤던 산들이지만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대둔산이 절경입니다. 다른 계절도 좋지만 특히 가을 대둔산은 정말 금강산입니다. 금강산도 못 가본 사람이 이렇게 표현하기는 쑥스럽지만…. 지난 23일 오른 대둔산은 사람 반, 단풍 반이었습니다. 가서야 알았습니다. '대둔산 단풍축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축제 마지막 날이라고 했습니다.

계획은 그게 아닌데

우리 부부는 요새 너무 열심히 산에 오르는지도 모릅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부부가 등산을 하는 이유는 건강이 주목적입니다. 덤으로 때론 정상도 정복하고, 때론 경치에 취하기도 합니다. 목적 아닌 것으로 더욱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등산의 매력이죠.

날씨가 쌀쌀해지는지라 며칠 전에는 겨울채비 등산복도 장만했습니다. 새 등산복을 입는다는 설렘을 더한 이번 산행은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해서 집에서부터 구슬러 나선 길이었습니다.

대둔산의 금강구름다리
 대둔산의 금강구름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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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의 철계단을 오르고 있는 아내
 대둔산의 철계단을 오르고 있는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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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대둔산으로 갑시다. 그곳은 케이블카가 있으니까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그리 힘들이지 않고 정상을 정복할 수 있을 거야. 몸 상태 봐가면서 하산할 때도 케이블카 이용하든지 하고."
"아, 그러면 되겠네요. 한 번을 타든, 왕복 모두를 타든 몸 상태에 따라 하면 되고, 그곳 경치가 좋잖아요. 지금쯤 단풍이 끝내줄 텐데."

그렇게 우리는 아주 쉽게 생각하고 대둔산엘 갔습니다. 근데 이게 웬일입니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단풍축제기간이라 사람이 인산인해입니다. 단풍축제기간 동안 주차비는 안 받는다고 하는 주차요원의 말이 얼마나 달갑게 들리는지. 아니나 다를까 주차장으로 들어서며 염려했던 대로 케이블카는 1시간 반을 기다려야 탈 수 있다는 겁니다.

잠깐 고민하다, "1시간 반이면 정상에 오르겠다"는 아내 말에 고무되어 그냥 오르기로 했습니다. 여간 경사진 길이 아니라 걷는 시간보다 앉아서 쉬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은 우리부부. 그러다 그 멋진 경치를 못 볼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두 시간을 오르니 비경이 눈앞에 아른 거립니다.

"와, 정말 멋있다! 어떻게 저리 아름다울 수가 있대?"
"정말."

연인인 듯 보이는 남녀가 손을 잡은 채 발 아래로 펼쳐지는 하나님의 풍경화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앞으로는 구름다리, 오른쪽으로는 급경사의 철계단이 아득합니다. '모든 여행은 사진과 글로 남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냥 지나갈 수 없죠. 시진을 찍으려고 적당한 곳을 찾았습니다.

"사진작가가 따로 있습니까?"

호남의 금강산 답게 아름다운 단풍의 대둔산
 호남의 금강산 답게 아름다운 단풍의 대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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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인 듯 보이는 남녀가 손을 잡은 채 발아래로 펼쳐지는 하나님의 풍경화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연인인 듯 보이는 남녀가 손을 잡은 채 발아래로 펼쳐지는 하나님의 풍경화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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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다리 사진이 영 구도가 안 잡힙니다. 정상적인 등산로에서 찍으면 앞의 지저분한 나뭇가지들에 가려 선명한 장면이 안 나오는 겁니다. 잠시 망설이다 난간을 넘어갔는데, 그 자리엔 벌써 사진작가인 듯 보이는 세 명의 남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삼각대는 물론 망원렌즈까지 갖추고 거물급(?) 사진기들을 구름다리를 향해 들이대고 있었습니다. 기가 질려 그들이 깔고 앉은 바위 위로는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 밑에서 슬림형 디카를 치켜 올려 사진을 찍으려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러는 겁니다.

"이 바위 위로 올라와서 찍으세요. 그 아래서는 각도가 안 나와요."
"그래도, 사진작가님들을 방해하는 것이…."

미처 대답을 마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다시 이러는 것입니다.

"사진작가가 따로 있습니까? 선생님도 사진작가시네요. 뭐. 사진 찍으면 다 사진작가죠."
"예? 그런가요? 이래 뵈도 이 사진 찍어 <오마이뉴스>에 올릴 거랍니다."
"아, 그러시면 사진작가뿐만 아니고 신문기자이기도 하시네요?"
"예? …예. <오마이뉴스> 들어와 제 사진 솜씨 보세요."
"예, 그래야죠."

졸지에 그들의 아름다운 양보에 전 기자로서 <오마이뉴스> 선전까지 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고마운 맘으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왔는데 기분이 괜히 좋은 겁니다. 나중에 찍은 사진을 보니 각도는 좋은데 사진은 영 아니더라고요. 역시 사진작가는 아닌 모양입니다.

구름다리에서 떨어봐야

대둔산의 단풍과 기암괴석이 아름답습니다.
 대둔산의 단풍과 기암괴석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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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의 단풍
 대둔산의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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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둔산에는 기암괴석과 단풍의 만남이 절묘합니다. 누가 그렇게 깎았을까요. 석수가 깎는다면 몇 년이 걸릴까요. 조물주가 아니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바위, 바위, 바위들…. 그들 사이를 용케도 비집고 들어선 나무들이 뿜어내는 가을 옷 퍼레이드, 가히 환상입니다.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잇는 높이 81m에 폭 1m의 금강구름다리는 적당한 공포감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둔산의 명물입니다. 깎아지른 듯한 두 바위 사이를 가로지르는 금강다리를 지나는 맛은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끝까지 못 간다면서도 들어선 한 아주머니는 중간에서 가도 못하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합니다. 짓궂은 아저씨가 발을 구릅니다. 출렁출렁 다리가 요동을 칩니다. 구름다리 위의 사람들이 엉거주춤 까르르 넘어갑니다. 오금이 저린 이 상황, 바로 구름다리의 맛입니다.

구름다리를 지나면 다시 하늘에 닿을 것 같은 철계단이 나옵니다. 그렇게 짜릿한 걸음으로 앞사람의 엉덩이만 보고 오르면 그 끝에 천국이 있을까요. '무섭다'면서도, '겁난다'면서도 그렇게 줄기차게 오르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요. 무섬 타기로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 제 아내도 무사히 철계단을 통과했습니다.

원효대사가 하늘과 맞닿았다고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는 '마천대'의 '개척탑'이 저만치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철계단을 오르며 기운을 다 뽑아 썼는지 아내는 그냥 하산하잡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우리 부부는 하는 수 없이 그냥 고지는 바라만 보고 하산하기로 했습니다.

정상을 정복해야 맛이라고요? 우리 부부는 그런 것 이미 초월했습니다. 건강을 위한 등산이니까 운동 좀 되었다 싶으면 언제든 하산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답니다. 산을 타는 사람이라면 정상 정복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 아실 겁니다.

"여보, 내려가는 건 도저히 용기가 안 나네요. 다리가 후들거려서."
"그래? 그럼 케이블카 탈까?"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아내가 힘이 든가 봅니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안 좋다고 했잖습니까. 둘이는 하행선 표를 끊고 45분이나 기다렸다 가까스로 하산을 했습니다. 가을 대둔산은 단풍도 흐드러지지만 사람도 흐드러집니다. 덤으로 대추나무 도장도 5000원에 하나씩 새기고, 표고버섯이랑 생강도 샀습니다. 단풍축제 기간이라 두루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더군요.

대둔산의 정상 마천대 밑의 가을 모습이 흐드러집니다.
 대둔산의 정상 마천대 밑의 가을 모습이 흐드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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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계단을 오른 후 마천대를 배경으로 한 컷 찍었습니다.
 철계단을 오른 후 마천대를 배경으로 한 컷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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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갓피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둔산, #가을, #단풍, #등산, #마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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