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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우리 동네는 추수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나 봅니다. 일손이 없어서 그런 건지, 영농기계화가 되어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낫을 들고 벼를 베는 모습을 볼까 기대했는데, 아침저녁 출퇴근길에 잠시나마 볼 수 있는 모습은 콤바인으로 수확하는 모습밖에 없더군요. 그나마 뒷짐을 지고 논두렁에 서 계시던 어느 어르신이 콤바인이 미치지 않는 둥그런 모서리에 한 단도 되지 않을 벼를 베는 모습은 콤바인을 몰아본 적이 없는 촌놈에겐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애물단지-농부의 한숨
- 고기복
똥강아지 손주들
호한 마마 넘기듯
병충해에 태풍까지 다 견뎌
한 백성 멕여 살릴 장한 들녘

애기 똥싼 듯
좌아악하니
싸발린 황금 황금

그리고

장한 들녘
푹 꺼지는 한숨 한숨
드러눕는 수매가

황금변은 쾌변이라
냄새에도 싱글벙글한다지만,
애기똥밭인냥 누런 들녘 언저리엔
향긋한 풍작에도 울성 글성

세계화의 오늘은
향긋한 황금도 버려야 할 꿈.
애물단지일 뿐...
콤바인을 모는 농부나 낫을 들고 계시던 어르신이나 어떤 심정일까 가늠해 봤습니다. 논농사를 짓지 않는 입장에서도 쌀 직불금이니 뭐니 하는 소식에 맘이 편치 않은데, 정작 농사를 짓는 분들은 속이 더 타들어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쌀 수매제도가 없어져 벼농사를 짓지 않는 입장에서는 요즘 쌀 한 가마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대형마트에서 도정한 쌀 20kg들이 포장이 4만원은 넘게 줘야 하는 걸로 봐서, 15만원 받고 팔면 잘 파는 것일 거라는 짐작은 해 볼만 합니다.

제가 사는 곳은 도농지역이라 그런지 종종 아파트 게시판에 비료 판매 안내도 나오고, 종자 안내도 나옵니다. 파종이 막 시작되던 봄 어느 날엔가, 농협에서 조합원들에게 단체 구매 신청을 받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는데, 허리가 구부정하신 어르신이 복합비료와 요소비료 가격이 적혀 있는 걸 보고, "무슨 놈이 비료 값이 해년마다 올라" 하시며 역정을 내시던 것을 들었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아마 어르신께서 역정을 내셨던 비료 값만 아니라, 농약 값, 품삯도 만만치 않게 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쌀값은 오르기는커녕, 미국산 쌀 수입이다 뭐다 하면서 점점 떨어지다 보니, 정부에서 쌀 직불금이다 뭐다 하면서 생색낸다고 했던 건데, 그나마 있는 놈들이 다 해먹었으니 어디 농사짓는 재미가 나겠습니까?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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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제 논에서 농사짓는 농부들이라면, 자식들 앞으로 보낼 쌀 가마라도 챙기며 스스로 위로라도 하시겠지만, 남의 논 빌어서 농사짓는 농부들이야 어디 농사짓고 살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평생 농사만 짓고 오신 분들이 땅을 놀리시기엔 맘 한 구석이 편할 리 없습니다. 한 마디로 가을에 속 터지는 거지요.

가을이 터졌다. 속도 터졌다. 보는 이의
▲ 속 터진 감 가을이 터졌다. 속도 터졌다. 보는 이의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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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지 않고 산 지 이십 년이 넘지만, 큰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가장 먼저 걱정되는 게 농작물입니다. 도시에 살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촌놈입장에서는 요행 그 큰 태풍을 견딘다 해도 거대자본 시장의 논리를 거스를 수 없는 농촌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존경하던 한 지인은 3년 동안 머물던 어느 농촌에서 했던 경험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농부들. 논을 준경작지로 허가받아 밭 작물을 심어보기도 하고, 손이 너무 많이 가므로 감당할 수 없어 다시 물대어 벼를 심기도 하고...결국 유휴지로 한숨과 함께 그냥 두기도 하고... 그들의 절망에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들 한숨 밟고 올라서는 오늘의 세계화!" 라고.

올 가을에는 풍작에도 한숨만 내쉬는 농부들이 없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덧붙이는 글 | 쌀 수매제도는 2005년도에 폐지되어, 쌀 농사를 짓는 분들의 소득 보전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태그:#쌀직불금, #벼 수확, #풍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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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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