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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서 물에 발 담그기 수련을 했다.
▲ 물 수련 계곡에서 물에 발 담그기 수련을 했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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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열두 명의 아이들이 떠나갔다. 8박 9일 동안 함께 지냈는데, 나이는 열네 살에서 열여덟 살 까지다. 녀석들은 전국 각지에서 왔는데 공통점은 단 한 가지. '생명살이 농부학교'에 학생으로 입학했다는 사실뿐이다.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가정학교' 학생들인 셈이다. 요즘 한참 관심을 끌고 있는 대안학교마저도 다니다 말고 '가정학교'를 선택한 이들도 있었다. 중학교를 1학년만 다닌 17살 청소년도 있었고, 아예 중학교부터 제도권의 학교를 딱! 끊어버린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냥 '중학교'라고 말하지 않고 '일반중학교'라고 했다. 고등학교도 이런 식으로 불렀다. '대안학교', '가정학교' 등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이들이 우리 집에 짐 보따리를 풀던 날. 생명살이 농부학교 생활에 대한 세 가지 내 바람을 얘기했다.

체로 들깨 치기를 했다.
▲ 들깨 체로 들깨 치기를 했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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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자연과 깊숙이 하나 되는 생활
둘째는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 되는 생활
셋째는 옆 사람과 함께 나누는 생활이었다. 즐거움도 힘겨움도 관심도 밥도 잠도 모두 함께 나누는 생활.

'생명살이 농부학교' 교장선생님이 된 나는 위와 같은 생활을 하기 위한 세 가지 제안을 또 했다. 손 전화와 인터넷, 전깃불, 티브이 등 모든 기계들의 사용을 중단하자는 것이 첫째였고, 재미있거나 힘들거나 관계없이 그 속에는 귀한 깨우침이 있으니 잘 들여다보자는 것이 둘째였고, 셋째는 모든 것은 다 놀이라 여기고 즐기자고 했다.

물을 극도로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세수를 매일매일 하지 말고 삼사일에 한 번씩 해 보자고 했더니 애들이 질겁했다.

당연히 학생들의 마음가짐이 어떤지도 서로 얘기했다. 학생들은 열심히 해 보겠다, 시골에서 낭만을 즐기겠다, 아궁이에 불을 때 보겠다, 뭐든지 해 보겠다고 했다.

생활은 새벽에 몸 풀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오전과 오후에 두 시간씩 일을 하고 저녁에는 영상물을 보고 소감을 나누거나 강사의 강의를 듣는 식으로 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과 관련된 살림살이에 대해 두루 설명을 하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영상물은 모두 네 가지를 봤다. '흙', '잡초', '생명살이 농부 이야기', '억셉티드' .

자치기를 하는 아이들
▲ 자치기 놀이 자치기를 하는 아이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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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책상 앞에서 책 놓고 배우는 것과 삶은 다른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으로 배우는 것과 손과 발로 배우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틀째 되는 날부터 아이들은 힘들다고 아우성이었고 정해 준 일을 하기보다 엉뚱한 일을 만들기도 했다. 일이 놀이와 분리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은 일 속에서 살아있는 공부거리를 찾고자 하는 것과 같은 바람이었지만 몇몇 아이들은 일이건 공부건 모두 장난질로 여겼다.

연장을 가지고 하는 일은 위험했다. 장작패기를 하는데 도끼는 땅바닥에 꽂히기 일쑤였다. 나무 자르기를 하는데 톱을 밀고 당길 때 힘을 주고 빼는 요령을 설명해 주었지만 힘을 왈칵왈칵 써다 보니 톱이 휘청거렸다.

도끼자루가 부러졌다고 한 아이가 달려왔다. 도끼가 연못 속에 떨어졌으면 신령님이 금도끼를 갖고 나타날텐데 아쉽다는 말로 위안을 주었다. 야외용 나무의자가 왕창 부서져 버렸다. 다치지 않기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박살이 났다.

고춧대를 뽑고 비닐 걷는 시간에는 찢어진 비닐이 밭에 휘날렸고 낫이 함부로 버려져 있었다. 장계장날 장 구경 가자면서 나눠 주었던 연필과 볼펜은 서너 자루 밖에 수거되지 않았다. 뒷간에 떨어져 있기도 하고 마당이나 트럭 짐칸에 버려져 있었다.

석양에 고춧대를 뽑았다.
▲ 고춧대 뽑기 석양에 고춧대를 뽑았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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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한 일들이 더 많았다.

시골에서 온 몇몇 아이는 살림이 몸에 배어있었고 도구의 쓰임새와 사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몸은 물론 말로 자기 의사를 표현 하는 데에 장애가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서로 잘 돌보면서 어울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 또래 같지 않은 배려심과 사회의식을 엿보게 했다. 열네 살 먹은 소년이 "조중동은 보면 안 된다면서요?"라고 해서 어떤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 했는지 짐작하게 했다. 자주 투덜대면서도 잘 해냈다. 이른바 '말이 통하는 아이들'이었다.

등반 중인 아이들
▲ 덕유산 등반 중인 아이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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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자기 힘으로 하도록 했고 무난히 해냈다.

밤에 밭 가운데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둥그런 달을 봐 가며 노는 기회가 있었다. "눈치도 없이 어른들이 갈 생각을 안 한다"고 해서 지도교사 두 분과 나는 내쫒기는 꼴이 되었다. 서러움도 달랠 겸 어른들은 집으로 돌아와 아궁이 앞에 앉아 개봉숭아로 담은 술을 마셨다.

일요일에는 모든 일정을 쉬기로 하고 덕유산 등산을 했다. 폐쇄된 등산로를 올라가다 길을 잃어 크게 고생을 했는데, 그날 저녁에 강사님을 모셔 산과 나무, 그리고 풀의 생육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학생들의 불만이 컸다.

쉬기로 한 날 동의도 없이 강의를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다음날에는 밭에서 '자치기' 놀이를 했다. 전통놀이인 '자치기'를 아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무척 재미있어 했다. 마늘을 놓다가 다 함께 목욕탕에 다녀오기도 했다.

한 줄로 나란히 앉아서 마늘을 놓는다
▲ 마을 한 줄로 나란히 앉아서 마늘을 놓는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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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도 동참하셨다. 100일학교 깃발 가장자리를 시침질 하셨다. 어머니 바느질 솜씨는 여기서 또 빛을 냈다. 가장자리 실밥이 풀려서 너불너불 했는데 어머니께서 흔쾌히 바늘을 드셨다.

바느질 하시는 어머니
▲ 어머니 바느질 하시는 어머니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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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깃발을 보고 어머니가 아주 흐뭇해 하셨다.

떠나는 날 한 아이는 소감문에 이렇게 썼다.

"… 아침 해 뜨기 전에 일어나서 해 질 때까지 일하고 저녁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생활이 인상 깊었습니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라는 것도 느꼈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고 난 후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 기쁨들이 '신선한 기쁨'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떤 여자 아이는 이렇게 썼다.

"… 하지만 일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바보가 됐다. 나무 옮기는 일을 하는데 한 개도 제대로 못 옮기고 난 쓰레기나 주웠다. 일을 할 때마다 제대로 할 줄을 몰라 옆에서 사람들이 다 가르쳐 주었다. 땡땡이도 많이 쳤다. 왠지 부모님께 죄송하다. 집에 가서 일 많이 도와야지."

'생명살이 농부학교'는 <사단법인 밝은마을>에서 진행하는 <100일학교>의 첫 과정이었다. <100일학교> 교장인 윤중 황선진 선생님은 사람이 '하늘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냥 자연스럽게 살면 된다고 했다.

"자연스러운 삶으로 가는 지혜는 인류 사회에 면면히 전해져 왔고 하늘의 지위로 자연스럽게 살려고 하는 마음이 있으면 손쉽게 얻을 수 있도록 다양한 모습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다"면서 <100일 학교>는 그 지혜와 방편을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윤중 선생은 "지구 생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이 뉘에서 청소년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며 새롭고 밝은 세상을 여는 어른들이 할 일은 청소년들이 바른 이념에 따른 방향으로 놓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100일학교> 취지문에 썼다.

청소년들이 이미 세워진 이해관계와 제도에 의해 얽매이지 않도록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이 중요하며 또한 기득권을 보호-유지-확대-강화하기 위해 난마처럼 얽어놓은 제도의 틀을 넘어서도록 하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100일 뒤의 이놈들 모습이 기대된다. 수련과 행공, 생태집짓기와 양자물리학은 물론 공연예술까지 배우고자 스승을 찾아 전국을 돌며 몸으로 공부하는 이 청소년들이 100일 뒤에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공양주 보살로 애 써주신 정안님을 비롯하여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 주신 여러 사람들. 바람과 구름, 햇살 등 만물이 함께 한 생명살이 농부학교는 가을빛처럼 고운 추억으로 한 자락 넘어간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산귀농학교> 회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100일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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