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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학에 다닙니다. '88만원 세대'라는 명칭이 달갑지 않지만,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그게 현실임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있다면 피해가고 싶습니다. 저 범주에 들지 않기 위해 저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이 아등바등 노력하지만 '비슷비슷한 스펙'만이 이력서에 덩그러니 남습니다.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데 이력서에 추가된 글자들은 나를 자꾸만 더 초라하게 만들고, 많은 자격증과 높은 어학점수를 취득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부추깁니다.

매년 가파르게 오르는 등록금에 안그래도 부모님 얼굴 보는 게 죄스러운데, 자꾸 손을 벌리게 됩니다. '대학 졸업만 하면…'이라는 단서를 달아보지만, 사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갑니다.

# 그녀도 대학에 다닙니다. 습한 새벽공기를 헤치고 도착한 학교에서 제일 처음 가는 곳은 화장실입니다. 그녀는 각종 청소도구로 비좁은 화장실 마지막 칸에서 청소복으로 갈아입습니다. 이곳은 그녀의 유일한 '쉼터'이기도 합니다. 청소를 마친 오후, 화장실의 소음·냄새와 함께 하는 잠깐의 휴식시간이 가끔 서러울 때도 있습니다.

분리수거함이 따로 있어도 엉망인 쓰레기통과, 그나마 쓰레기통까지도 오지 못하고 여기저기 널브러진 쓰레기를 치우다보면 아침이 밝아옵니다. 하나 둘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면 차마 대학까지 공부 시키지 못한 자식 생각에 가슴 저릿한 한편, 졸음 가득한 그 얼굴들이 기특하게 느껴집니다. 담배 태우는 아이들을 보면 건강이 염려 될 때도 여러 번입니다. 푸른 옷과 머릿수건은 그녀를 학교에서 투명인간처럼 존재하도록 만듭니다. 쭈그리고 앉아 걸레질하는 옆으로 한 학생이 쓰레기를 버리며 지나가도 이젠 노엽지가 않습니다. 이건 그녀의 '일'이니까요.

같은 대학에 다니는 나와 그녀의 만남을 주선하다, 2008 노동사회포럼

2008 노동사회포럼 '대학, 비정규노동자를 만나다' 포스터
 2008 노동사회포럼 '대학, 비정규노동자를 만나다' 포스터
ⓒ stu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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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와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만남을 '주선'하는 포럼이 열립니다. 이 만남은 '대학, 비정규노동자를 만나다'는 이름으로 10월 27일부터 11월 30일까지 총 5주 동안 매주 화·목요일 오후 7시에 민주노총 서울본부 2층 강의실에서 진행됩니다.

'주선자'는 공공노조 서울경인서비스 지부와 서울서부비정규센터(준) 및 대학 비정규직과 함께 하는 학생네트워크입니다.

'대학 비정규직과 함께 하는 학생네트워크'라, 좀 생소하시죠? 이 학생네트워크는 올 10월 꾸려진 모임으로, 학내에서 꾸준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해 왔던 여러 대학의 학생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만들어가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현재 연세대, 세종대, 동국대, 국민대 등 여러 학교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비정규노동에 관심을 갖고 연대하기 원하는 청년학생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습니다. (club.cyworld.com/barricade2008).

우리는 모두 타인의 삶에 빚지며 살고 있다

평소 비정규직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제게 제안된 네트워크 모임과 건네진 포럼 안내문을 받아들곤 한동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네 앞가림이나 잘하라"는 엄마의 걱정 섞인 핀잔의 목소리가 귓속에 웅웅 거렸음은 물론이죠.

한편으론 기륭전자와 이랜드 조합원 분들의 얼굴이 주르륵 필름 영상처럼 눈앞에 흘러갔습니다. 그분들과의 연대를 경험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제 앞가림을 하기 위해서라도 '힘써 도와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더 분명해지긴 했습니다. 태연자약하게 인간을 '일회용품' 취급하는 사회에서 저라고 별 수 있겠어요? 그리고 얼마 전, 성신여대 청소 노동자의 '구인광고 해고'와 학생들의 '연대'가 이루어낸 감동적인 '복직'은 제게 큰 울림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지난 9월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구인광고 해고'를 당했던 성신여대 청소 노동자들이 결의대회를 열고 있는 모습. 성신여대 학생들과 아주머니들의 연대는 '복직'이라는 열매를 가져왔다.
 지난 9월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구인광고 해고'를 당했던 성신여대 청소 노동자들이 결의대회를 열고 있는 모습. 성신여대 학생들과 아주머니들의 연대는 '복직'이라는 열매를 가져왔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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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비정규직이라는 것, 사실 거의 매일 만나면서도 깊이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던 제 모습을 발견했어요.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 끝에 포럼 참여를 결정하고, 학교에 포스터를 붙이면서 학교 청소아주머니들과 인사를 나누게 됐습니다. 제가 만난 그녀 역시 계약직 용역 노동자로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대학의 주 구성원은 학생과 교직원이지만, 그들의 일상을 떠받치고 있는 청소노동자를 빼놓아서는 안되겠죠. 우리가 살면서 빚지고 있는 건 '학자금 대출'뿐일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의 삶에 '빚지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 대학생들이 주로 시간을 보내는 대학 내에서, 학생들이 쾌적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손길이 있다는 것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환경에 놓여있는지 한번쯤 고민하고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가끔 저희 엄마가 늘어놓는 하소연의 레파토리 중의 하나는 "집안일이라는 게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거랍니다. 단출한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도 그렇게 끊임없는 손길이 필요한데, 학교라는 거대한 공간은 오죽할까 싶어요. 

앎과 행동이 분리되지 않는 지식을 만나게 될 포럼

공부는 왜 할까요? 그리고 그 공부는 얼마나 나를, 세상을 풍요롭게 할 수 있을까요? 한 번쯤은 고민해 보신 적 있으시죠? 신영복 선생님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에서 "생활 속에 실현된 것만큼의 사상만이 자기 것이며, 그 나머지는 아무리 강론하고 공감하더라도 결코 자기 것이 아닙니다"라고 적으셨어요.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죠.

포럼이 진행되는 5주의 기간 동안 강의 뿐 아니라 '직접행동'이 병행됩니다. 첫째 날인 27일에는 <소금꽃나무>의 저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한국사회와 비정규노동'이라는 주제로 공개강좌를 합니다. 꼭 대학생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학내 청소노동자 뿐 아니라 비정규노동에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후 11월에는 이수정 민주노무법인 변호사의 '20대가 꼭 알아야 할 노동법 이야기' 등 다양한 강좌와 함께 대학 비정규노동자 방문조사 및 문화 프로그램 만들기 등의 직접행동이 이어집니다.

2008 사회노동포럼 일정표
 2008 사회노동포럼 일정표
ⓒ stu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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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의 사회경제적 소외와 배제를 자신의 문제로 바라본다면,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 문제도 자신과 동일시 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불안을 뒤집어엎기 위해서는 '연대의 윤리'가 필요하겠죠. 연애에 익숙해지듯이 연대에 익숙해지는 길은 당연하겠지만 '실천'입니다.

그렇게 우리 절망으로도 한 걸음, 희망으로도 한 걸음 '함께' 걸어 나갔으면 좋겠어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우리 연대라는 가치 아래 '걷는 사람이 되어 사는 방법'도 고민하고 나누면서 살았으면 해요. 이 포럼에 수많은 '88만원 세대' 및 비정규 노동에 관심있는 당신을 초청합니다. 함께하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 문의 및 참가신청 : 02)701-8138(서경지부) 010-5573-1968(류한승) / 홈페이지 : stunet.co.kr / 싸이클럽 : club.cyworld.com/barricade2008



태그:#비정규직, #대학, #노동사회포럼, #88만원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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