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예를 들면 쿤요크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에는 짙은 색깔의 커다란 열매가 열렸다 ..  《벤슨 뎅,알폰시온 뎅,벤자민 아작/조유진 옮김-잃어버린 소년들》(현암사,2008) 208쪽

 

 “예(例)를 들면”은 ‘이를테면’으로 다듬거나 “보기를 들면”으로 다듬습니다.

 

 ┌ 색깔(色-)

 │  (1) = 빛깔

 │   - 선명한 색깔 / 화려하고 고운 색깔 / 검푸른 색깔을 띠다 / 색깔이 붉다

 │  (2) 정치나 이념상의 경향

 │   - 그의 소설은 독자적인 색깔을 가졌다 / 정치적 색깔보다는 국가 경영 능력이

 │

 ├ 짙은 색깔의 커다란 열매가

 │→ 짙은 빛깔이며 커다란 열매가

 │→ 빛깔이 짙고 커다란 열매가

 │→ 짙고 커다란 열매가

 └ …

 

 ‘색깔’이라는 말을 어릴 적부터 즐겨썼습니다. 그러다 어느 때였나, ‘색깔’은 다름아닌 ‘色 + 깔’임을 알았고, ‘色’이란 ‘빛 색’이라는 한자임을 알았습니다. 아마 국민학교 3학년 때가 아니랴 싶습니다. 그때 천자문을 떼면서 우리가 쓰던 말 가운데 구태여 한자를 뒤집어씌워서 쓰는 말이 있고, 있는 그대로 손쉽게 쓰는 토박이말이 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 선명한 색깔 → 뚜렷한 빛깔

 ├ 화려하고 고운 색깔 → 눈부시고 고운 빛깔

 ├ 검푸른 색깔을 띠다 → 검푸른 빛깔을 띠다

 └ 색깔이 붉다 → 빛깔이 붉다

 

 ‘빛깔’이 우리 말이고 ‘색깔’은 ‘빛깔’을 어떻게든 한자 옷을 입히려고 애쓰면서 나온 말임을 알고 크게 한방 먹었습니다. 뒷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색연필’이든 ‘색종이’든 ‘색실’이든, 참 얄궂게 지은 말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왜 ‘빛연필’과 ‘빛종이’와 ‘빛실’이라고 말하지 못했을까요. 우리는 우리한테 있는 낱말을 왜 살뜰히 가꾸지 못했을까요. 우리는 어이하여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깎아내리거나 무너뜨리거나 흐트리거나 내동댕이치고 말았을까요.

 

 국어사전에서 ‘색깔’을 찾아보면 “(1) = 빛깔”로 나옵니다. 이는 ‘색깔’이라는 낱말을 쓸 까닭이 없음을 국어사전에서 먼저 보여주는 셈입니다. 두 번째로 “(2) 정치나 이념상의 경향”으로 나옵니다. 두 번째 풀이를 보면서 쓰게 웃었습니다.

 

 ┌ 그의 소설은 독자적인 색깔을 가졌다

 │→ 그 사람이 쓴 소설은 남다른 빛깔이 있다

 │→ 그 사람 소설에는 남다른 빛깔이 담겼다

 │

 ├ 정치적 색깔보다는

 │→ 정치 빛깔보다는

 │→ 정치 무늬보다는

 │→ 어떤 생각으로 정치를 하느냐보다는

 └ …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는 ‘색깔’만큼, ‘빛깔’이라는 낱말도 두 가지로 쓰임직합니다. 아니, 얼마든지 두 가지로 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세 가지 뜻이나 네 가지 뜻으로도 넓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 이 나라 이 겨레 사람들은 토박이말 ‘빛깔’을 살찌우거나 북돋우지 않습니다. 쓰임새를 넓히지 않고 뜻이나 느낌을 키우지 않습니다.

 

 ┌ 이 시에 담긴 빛깔을 느껴 봅시다

 ├ 이분이 걸어온 발자국은 어떤 빛깔이었을까요

 ├ 덴마크 선수들이 보여주는 빛깔은 아주 남다릅니다

 ├ 얼굴 빛깔이 무척 안 좋았다

 └ …

 

 우리 나름대로 가꿀 수 있을 테지만 우리 둘레 어느 곳에서도 좀처럼 우리 말을 가꾸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면, 말만 가꾸지 않는 우리들이 아닙니다. 우리 삶터를 곱다시 돌아보면서 가꾸는 손길도 많이 모자랍니다. 왜냐하면 너무 바쁘기 때문입니다. 국민소득이 이만 달러니 사만 달러니 하고 읊고 있으나, 그렇게 넉넉하고 배부른 삶을 꾸리면서도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더 벌어야 한다고, 더 가져야 한다고, 더 누려야 한다고, 더 써야 한다고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벌이에 바쁜 사람이 자기 집안일에 마음을 기울이기란 어렵습니다. 돈벌이에 매인 사람이 어릴 적 동무들과 살가이 어울리기란 어렵습니다. 돈벌이에 푹 빠진 사람이 자기 넋과 얼을 아름다이 추스르면서 말과 글을 다독이기란 어렵습니다.

 

 우리 스스로 가꾸어야 할 말이건만 우리 스스로 가꾸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은 우리 말을 잃거나 놓칠 뿐 아니라, 우리 삶자락을 잃거나 놓친다고 느낍니다. 날마다 쓰는 말과 글을 잃거나 놓치면서, 날마다 어울리는 사람들하고 주고받거나 나누는 즐거움과 기쁨과 빛남을 못 보는구나 싶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도 새 하루를 보내게 된다는 기쁨을 맛봅니다만, 바삐 돌아치는 사람들이 아침해를 볼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리 지저분하고 뿌연 도시 하늘이라고 해도, 비바람이 며칠 몰아치고 활짝 갠 날 올려다보면, 퍽 맑고 파랗습니다. 그러나 돈벌이에 눈먼 어느 사람들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우리 자연이 참 곱구나’ 하고 헤아리겠습니까.

 

 거님길 돌틈에서 피어나는 새끼손톱 만한 들꽃을 볼 줄 아는 매무새여야, 비로소 우리들 말과 글에 어떠한 빛과 값과 뜻이 배어 있는가를 들여다보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둥둥 떠 가는 구름이 뭉게구름인지 새털구름인지 매지구름인지 가눌 줄 아는 몸가짐이어야, 시나브로 우리 삶과 말을 하나로 이으면서 자기 길을 잃지 않으리라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토씨 ‘-의’, #-의,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