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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에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 추억을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은행나무> 곽재구 시-

 

 

바야흐로 가을 단풍이 절정이다. 지금쯤 은행나무, 단풍나무들이 즐비한 가로수길이나 대학로 등에는 지금 황금빛으로 붉게 타오르는 나무 아래로 가을을 만끽하며 걷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은행나무, 하면 학창시절 교정을 노랗게 물들이던 오래 묵은 은행나무 생각난다. 가을이 되면 노오란 은행나무 잎이 불타는 듯 환하고 나무 아래로 후두둑 후두둑 떨어진 은행잎들이 뒹구는 것조차 아름다웠다.

 

친구랑 함께 단풍으로 붉게 물든 나뭇잎과 노란 은행잎을 책갈피에 차곡차곡 끼워 넣으며 걷던 추억도 함께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을이면 노랗게 활활 타오르듯 하는 은행나무 잎은 보아왔지만 은행 열매는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다가 은행나무가 봄이면 꽃이 열리는 것조차도 몰랐다. 무슨 일이든지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보이나보다.

 

얼마 전에 대구로 가을 산행을 갔다가 유가사 내에 심겨진 은행나무를 발견하고 은행나무 위에 살구열매 만한 황색 은행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참으로 신기했다. 가끔 은행을 따기도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또 시장에 가면 은행열매를 되로 파는 것도 보기도 하고 또 구워서 파는 것도 보기도 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나무에 달린 은행을 발견한 것은 처음이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유가사 내에 있는 노랗게 물들어가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떨어진 은행을 주웠다. 떨어진 것만 주워도 제법 많아 검은 비닐봉투 거의 가득 담아왔다. 은행 표면은 황색인데 말랑말랑하고 약간 물컹했다. 거기다 냄새는 또 얼마나 독한지 역한 냄새가 났다. 차에 싣고 올 때도 은행 특유의 냄새가 차 안에 가득했을 정도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집에 돌아와서 맨 겉껍질을 가볍게 벗기자 단단한 껍질로 쌓인 모양이 드러났다.

 

물컹거리는 겉껍질을 다 벗겨 씻어서 물기를 빼내자 단단한 은행이 보기만 해도 신기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두 번째 겉껍질을 벗겨야 했다. 마땅한 도구가 없어서 망치로 살짝 깼다. 단단한 껍질이 망치의 자극에 금이 갔다. 금간 껍질을 벗겨보았다. 그 안에 드러나는 속살은 또 얇은 껍질로 덮여 있었다. 신기하고 신기하다. 열매를 이렇게 싸고 또 싸고 신비 속에 감춰져 있다니, 두 번째 껍질까지 벗기고 망치로 깨고 나서 이제 프라이팬에 살짝 볶았다.

 

엷은 막으로 덮여 있던 마지막 남은 껍질이 벗겨졌고 먹기 좋게 약간의 소금을 치고 볶았더니 곱디고운 연초록빛 보석이 만들어져 나왔다. 어쩜 이렇게 예쁠까. 보석처럼 신비로운 색깔의 은행이었다. 선물은 포장을 풀어야 하는 법, 마치 귀한 사람에게서 받은 선물을 풀듯이, 겉껍질을 벗기고 단단한 껍질을 깨고 드러난 알맹이, 그 알맹이를 볶아 신비로운 보석을 대하는 마음은 먹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참 신기하고 신기했다.

 

저녁을 먹은 뒤, 남편과 함께 식탁 아래 신문을 깔고 마주 앉아서 망치로 단단한 은행껍질을 깨고 껍질 안에 잘 포장된 은행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프라이팬에다 포장을 푼 은행을 몇 알씩 볶아서 먹는 즐거움, 그 오묘한 색깔과 맛, 그리고 그 시간을 즐겼다. 접시에 담긴 연초록 은행들은 보석들이었다. 대자연의 오묘한 신비를 이 작은 은행 한 알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은행나무의 원산지는 중국인데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이며 봄에 피는 꽃은 3밀리미터 내의 크기라 웬만해서는 눈으로 관찰하기 힘들다. 은행은, 열매가 살구나무의 열매를 닮았지만 흰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은행나무 잎은 고혈압, 파킨스병, 당뇨병, 위경련, 진해제로도 쓰일 정도로 성인병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낸다고 한다.

 

은행에는 탄수화물의 당질과 단백질, 무기질의 인과 칼륨 등이 많이 들어있고, 폐에 좋고, 천식, 기침에 좋고, 소변의 빈도를 조절하는 등 많은 효능이 있지만 너무 많이 섭취할 때 역효과도 있으므로 하루 대여섯개 정도를 구워서 먹는 것이 적당하다고 한다. 은행나무 열매의 악취의 원인은 은행나무의 외종피가 은행나무의 씨앗을 동물이나 곤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나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은행나무에는 벌레가 기생하지 않으며 몸속에 살균과 살충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 성분은 갖가지 벌레의 유충, 식물에 기생하는 곰팡이, 바이러스 등을 죽이거나 억제하는 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행잎을 집에 두면 바퀴벌레나 다른 해충이 없어 사람들은 이를 이용하기도 한다. 가끔 뉴스를 통해 은행나무 열매를 채취하다가 주민들이 절도혐의로 입건되는 사례도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은행열매를 채취하는 장면이 사진에 찍혀 뉴스화 되기도 하는 것을 본다.

 

도심 한가운데 은행나무 아래서 은행을 줍기도 하고, 또 은행나무를 억지로 흔들어서 따기도 하여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고, 사고도 나기도 해 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소식도 접한다. 어떤 도시는 은행나무 열매를 따려는 주민과 공동자산이란 이유로 이를 막기 위한 지자체가 마찰을 빚기도 하고 또 어느 도시에서는 은행나무 열매를 시민들이 채취하는 것을 개방하여 시민들의 환영을 받기도 한다는 소식도 접한다.

 

 무엇이든지 지나친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아름다운 선물들은 또한 우리 주변의 자연 속에서 맘껏 누릴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은 또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거저 주신 선물들이니, 거저 받아 또한 나눌 수 있는 그 작은 일상 속의 기쁨은 필요하리라.


태그:#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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