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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일 년 중 가장 큰 일 중 하나가 바로 김장입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단풍 빛깔이 사치스러워질 때쯤이면 배추를 장만하고 양념거리를 마련하는 일로 주부들은 마음부터 부산해집니다. 김치를 만드는 일은 이렇듯 우리와는 떼 낼 수 없는 생활문화입니다.

잘 절인 배추를 택배로 받아 집에서 김치를 담그는 집이 이제 많은 것 같다. 편리하고, 업체만 잘 선택하면 더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인듯 하다.
▲ 배달된 절인배추 잘 절인 배추를 택배로 받아 집에서 김치를 담그는 집이 이제 많은 것 같다. 편리하고, 업체만 잘 선택하면 더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인듯 하다.
ⓒ 강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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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김장날은 골목 잔칫날이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살림에 맞게 김장도 단출해졌지만 골목에 배추가 산을 이루던 그 시기에는 김장은 모두의 일이었지요. 어머니들이 우물가에 모여 막 담금 김치를 죽죽 찢어 맛을 보고, 웃음꽃을 피워가며 서로의 입에 넣어주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입맛과 함께 우리들 마음도 덩달아 설렜고요.

문득 어떤 노래에서 들은 가사가 기억나서 찾아보니 나희덕 시인의 ‘배추의 마음’이란 시(詩)더군요. 배추 하얀 속살에까지 따뜻한 눈길을 보낸 시인의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읽어드리고 싶군요. 배추는 이렇게 자기를 노래하는 이쁜 시와 시인을 가졌습니다. 찬찬히 읽어보시고, 가락 붙여 다시 읊어보세요. 좋지 않습니까?    

배추에게도 마음이 있나 보다.
씨앗 뿌리고 농약 없이 키우려니
하도 자라지 않아
가을이 되어도 헛일일 것 같더니
여름내 밭둑 지나며 잊지 않았던 말
―나는 너희로 하여 기쁠 것 같아.
―잘 자라 기쁠 것 같아.

늦가을 배추포기 묶어주며 보니
그래도 튼실하게 자라 속이 꽤 찼다.
―혹시 배추벌레 한 마리
이 속에 갇혀 나오지 못하면 어떡하지?
꼭 동여매지도 못하는 사람 마음이나
배추벌레에게 반 넘어 먹히고도
속은 점점 순결한 잎으로 차오르는
배추의 마음이 뭐가 다를까?
배추 풀물이 사람 소매에도 들었나 보다.
(나희덕 詩 ‘배추의 마음’)

김치냉장고가 김장풍습을 바꾸고 있답니다. 가을 김장을 조금하고 제품김치를 사먹거나 겨울에 조금씩 김치를 담가먹던 것에서, 이젠 봄까지 먹을 분량을 넉넉히 담그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11월이면 택배차가 절인배추 나르느라 밤까지 시끄럽다죠? 새로운 '가을 풍경'으로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시골서 절여 보내주면 버무리는 것만으로 김장이 된다고 하니 참 편한 세상입니다.

배추 얘기 나온 김에 오래 전 온 동네가 김장으로 떠들썩하던 골목을 그려봅니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를 다시 읽으니 지은이 마음만큼 배추가 착하군요. 참 이쁜 시를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한 번 읽고 그 풍경 떠올려 보시지요. 시와 시를 외우는 마음을 항상 지니시기 바랍니다. 배추와 시가 우리 모두를 건강하고 착하게 해줄 것입니다. 참, 농약이나 나쁜 소금 범벅인 중국김치나 배추는 피하세요.

오늘 우리집에서는 충남 홍성의 영농단이 키워 절였다는  ‘고인돌절인배추’ 2박스를 택배로 받아 김치를 담갔습니다. 옛날과 분위기가 같진 않지만, 그래도 기쁘지요. 날 서늘해지면 제대로 김장을 할 터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시민사회신문(www.ingo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시민사회신문 논설위원입니다.



태그:#절인배추, #김치, #김장, #절임배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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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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