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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0일 일요이,  맑음, 몬순 소나기

바라나시에서의 이틀째 날이 밝았다. 모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어제의 치열한 경험들이 깊은 숙면을 유도한 것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메인가트를 어슬렁어슬렁 거렸다. 휴일이라 그런지 가트는 더욱 혼잡스러웠다. 오늘따라 목욕하는 이, 빨래하는 이, 소원을 비는 이 등등, 오늘도 사자들의 행렬은 지속된다.

갠지스강에 목욕하는이와 빨래하는이, 그리고 기도하는 이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 갠지스강 갠지스강에 목욕하는이와 빨래하는이, 그리고 기도하는 이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 박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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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친구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손을 내민다. 악수를 하는 순간 내 손을 떡 주무르듯이 한다. 말로만 듣던 갠지스 맛사지왈라이다. "How much?(얼마예요?)", "Free!(공짜!)"

'짜식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다시 가격을 재차 물으니 내 맘대로 달란다. 상투적으로 바가지 씌우는 수작이다. 계속 물어도 내 맘대로 주라니, 네 맘대로 하라고 몸을 맡겼다. 이곳에서는 따로 마련된 특별한 공간에서 마사지를 하지 않는다. 그냥 길가에서 자리를 펴고 하는 것이다. 지나는 행인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면서.

장사가 안 되는지 내가 누우니 세 명이 달라붙는다. 한데 이들의 마사지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손가락부터 시작하여 근육 하나하나를 훑고 관절도 하나하나 풀어준다. 그간의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다 풀리는 듯하다. 그들은 내 귀에 소곤거린다.

"You happy! sleeping(행복하죠, 잠이 오지 않나요?)", 나도 나직이 대답한다. "I'm no time, How much(나는 시간이 없어요, 얼마예요)?"

그러자 아주 나직이 속삭인다. 500루피라고, 이놈이 미쳤군. 권장소비자 가격이 50루피인 걸 내가 알고 있는데. "You crazy(당신 미쳤군)!"라고 하자, 찔끔한 녀석은 400만 달란다. 내 표정을 살피더니 알아서 300으로 낮춘다. 이 놈들은 흥정할 때마다 이 난리를 쳐야 하니 이걸 재미라 해야 할지, 우습기까지 하다.

말다툼하기 싫어 50루피만 던져주니 펄펄 뛴다. "그래 그럼 경찰서로 가자"하니 표정이 멍해진다. 의기양양하게 50루피만 주고 일어나니 녀석의 얼굴 가득 좌절감이 퍼진다. 아마 이들은 내가 봉으로 보였나 보다. 한 달치 삥을 뜯으려고 작심하고 달려들었는데 내가 세게 나가니 꼬리를 내린 것이다. 매몰차게 돌아섰다가 돌아서 살짝 10루피를 더 주니 입이 귀에 걸린다. 어쩌거나 마사지를 받아 개운하게 풀린 몸으로 사르나트를 찾았다.

녹야원 유적지에는 불교신자들의 순례객이 많다
▲ 사르나트 녹야원 유적지에는 불교신자들의 순례객이 많다
ⓒ 박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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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릭사로 30분 거리다. 이번에도 500루피를 부르는 녀석들을 100루피에 평정하고 사르나트에 도착하니 관광객 보다는 순례객이 더 많다. 이곳은 석가가 깨달음을 얻고 최초로 설법을 한 불교성지로 전 세계 불자들이 순례를 온다.

석가가 최초로 설법을 하였다는 사르나트의 유적지 옆에 석가의 설법을 듣는 다섯제자의 모습을 형상화 했다
▲ 설법형상 석가가 최초로 설법을 하였다는 사르나트의 유적지 옆에 석가의 설법을 듣는 다섯제자의 모습을 형상화 했다
ⓒ 박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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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이곳 노점에서 해결을 했다. 삶은 계란을 중간에 넣고 감자로 겉을 싼 후 기름에 튀긴 것이 먹음직스럽다. 10루피를 주고 하나 주문하니 먹기 좋게 자른 다음 커리(카레)를 조금 뿌리고 나뭇잎에 싸서준다. 자연을 훼손할 게 하나도 없다. 매콤한 커리맛이 나는 음식을 성환이와 먹고 나니 조금 허하다.

그때 노점 하는 이중에 한국아주머니가 섞여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거니 네팔사람이란다. 네팔은 인종 자체가 우리와 매우 흡사한 모양이다. 괜히 당기는 마음에 그 아주머니가 파는 네팔 비빔면 하나를 시켰다. 그것도 10루피이다. 자장라면 맛에 매운 맛이 가미되어 우리 입맛에 딱 맞다. 네팔은 생김만 우리와 비슷한 게 아니고 입맛도 비슷하다 했다.

사르나트에 있는 우리나라 절인 녹야원사, 포교활동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한다
▲ 우리절 사르나트에 있는 우리나라 절인 녹야원사, 포교활동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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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음식으로 속을 든든히 채운 우리는 사르나트 유적군을 둘러본 후 이곳에 있다는 한국 절을 찾았다. 유적지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곳은 조계종 산하 '녹야원'이란다. 10여 년 전에 불교성지마다 조계종에서 사찰을 마련했다고 한다. 절을 방문하니 주지스님이 시원한 얼음물을 대접한다. 평소 물 한잔이 무에 그리 고마울까 마는 인도에 온 이래로 공짜는 처음이라 상당히 감격스럽다. 주지에게서는 한국인으로 살기 어려운 물선 이국땅에서의 향수 젖은 모습이 언뜻 투영되는 듯하다.

이제 조금씩 인도에 익숙해진다. 바라나시의 좁고 습한 골목도 눈에 익고 길가의 똥도 더 이상 거슬리지 않는다. 물건 흥정의 요령도 생겼다.

바라나시에서 델리로 가는 야간기차안, 성환이가 지쳐 잠에 푹 빠져있다.
▲ 기차안 바라나시에서 델리로 가는 야간기차안, 성환이가 지쳐 잠에 푹 빠져있다.
ⓒ 박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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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여행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밤 기차로 델리에 가면 내일 밤 비행기로 인도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붙은 탄력으로 한두 달의 배낭여행은 재미있게 지낼 것 같다. 씀씀이는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 갈수록 체류비가 줄 거라는 선배 여행자의 말이 피부로 와 닿기 시작한다.

바라나시는 시간이 지나고 체류기간이 늘더라도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인도 자체가 신들의 나라이고 그 중심에 바라나시가 있기에 내가 어찌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단지 내가 바라나시에 익숙해질 수는 있을 것 같다. 소와 개와 똥이 지천에 널린 바라나시를 뒤로하고 델리행 야간기차에 몸을 실었다.

바라나시여! 현생에 내가 다시 너를 만날 수 있을까? 떠나는 지금 내 눈앞에는 어젯밤 화장터에서 나에게 굴러온 시신 머리가 오버랩 되는 이유가 무얼까.

석양에 물들은 갠지스강, 이승과 저승의 가교역활을 한다는 '강가'의 느낌을 물씬 느꼈다.
▲ 갠지스강 석양에 물들은 갠지스강, 이승과 저승의 가교역활을 한다는 '강가'의 느낌을 물씬 느꼈다.
ⓒ 박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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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광명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도, #가족여행, #베낭여행, #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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