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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서 있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땅바닥에 콩이나 옥수수 알이 떨어져 있으면 누가 때리든 말든 무조건 주워 먹었다. 한번은 너무 배가 고파 땅만 보면서 걷다 길 위에 떨어진 소똥에 섞인 강냉이 세알이 눈에 들어왔다. 강냉이 이삭을 주워 먹은 소가 채 소화시키지 못하고 내보낸 배설물이었다. 너무 배가 고픈 나는 그 강냉이 세알을 옷소매에 대충 똥만 닦아내고는 먹었다. 나는 점점 머저리가 되어 갔다. - 책속에서(신동혁의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 중에서 인용

최순호의 다큐멘터리 사진집 <탈북자 그들의 이야기>(시공사 펴냄)는 이렇게 시작된다. 글을 쓴 신동혁은 북한 내 최악의 수용소로 알려진 평안남도 개천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나 24세까지 성장했다. 눈앞에서 어머니와 형이 총살당하는 것을 봐야만 했던 그는 철조망을 끊고 탈출에 성공, 2006년에 한국에 왔다. 그의 가족은 1965년 형제가 6·25때 월남했다는 죄목으로 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한다(그의 책은 박스 기사로 별도 소개).

-겉그림
▲ <탈북자, 그들의 이야기> -겉그림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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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이야기는 2007년 4월, 저자가 중국 심양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고려항공기에서 바라본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다. '한쪽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고 다른 한쪽은 작은 나무 한그루 없는 민둥산', 그 확연한 차이는 충격이다. 북한의 민둥산을 저자는 '찬바람에 튼 속살처럼 갈라진 채 흉물스런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1976년 10월, 김일성은 노동당 대회에서 산을 깎아 계단식 다락밭을 건설하라고 지시한다. 자연을 개조해  알곡 한 톨이라도 더 얻자는 것. 그리하여 딛을 수 있는 땅이라면 새까맣게 달라붙어 밭으로 일군다.

잘못된 정책임을 알고 지시를 변경하였을 때는 이미 수많은 산들이 걷잡을 수 없이 황폐해져 버린 후였다. 민둥산으로 변해버린 산들은 비가 내리면 작물까지 함께 휩쓸려 무너져 내렸다. 그리하여 1995년, 100년만의 대홍수는 520만이란 이재민을 냈다.

1999년, 북한 당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조림 10개년 계획'으로 6억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발표했다. 그리하여 나무를 심어 나가지만 한해도 되기 전에 그 나무들은 모두 땔감으로 사라지고 만다. 2007년 산림청은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북한 산림면적의 18%에 달하는 163만㏊가 이미 황폐화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서울 면적의 27배에 해당한다.

이 책은 북한의 절대적인 식량부족에 오직 '먹고 싶다'는 일념으로 목숨 걸고 북한을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저자는 이들을 인터뷰해 사진과 함께 그 고단하고 참혹한 여정을 우리에게 전한다.

"산골 탄광 마을에 살았는데 배급이 끊긴 1994년부터 온가족이 굶어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가을걷이가 끝난 옥수수 밭에서 뿌리를 캐내 물에 씻어 먹기도 했다. 건설단위에서 백영토라는 부드러운 진흙을 나누어 주기도 했는데 그로인해 설사를 하거나 피똥을 싸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고 1998년 도강하여 북한을 탈출, 2004년 7월 한국행에 성공한 나연옥(63)씨는 말했다.

최승희 아래서 현대무용을 전공, 북한 사회에서 한때 엘리트였던 김영순은 이렇게 말한다.

"요덕수용소는 모든 것을 자급자족한다. 먹을 것이 없어 통 강냉이를 소금과 씹으면서 살았다. 처음에 가져간 신발, 옷을 12군데도 더 기워 입었다. 허리띠가 없어 새끼줄을 허리에 묶고 다녔다. 거지 중에 상거지였다. 아이들이 식독이 오르면 엄지쥐(털이 안 난 새끼쥐)가 효과가 있다는 말이 있어 쥐를 잡기위해 구멍이라는 구멍은 다 피고 다녔다. 개구리, 개구리알, 도룡뇽알, 뱀, 쥐는 말할 것도 없고 산에서 나는 나물이란 나물은 다 캐다 먹었다. 독버섯을 먹고 죽은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요덕수용소의 삶은 짐승 그 자체였다."


1973년까지 김일성의 첩이었던 성혜림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김영순의 온가족(아버지, 어머니 아이들 넷)은 1970년에 요덕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가족들 대부분이 죽는다. 9년간 그곳에서 짐승 같은 생활을 하던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2001년 2월 1일에 도강, 2003년 11월에 아들과 함께 한국에 왔다. 이외에도 탈북자들의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짧은 글로 계속 된다.

이 책은 사진집이다. 책속 사진 한 장, 한 장은 북한과 탈북자에 관한 많은 것들을 들려주고 있다. 사진과 함께 저자는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짧은 글에 담고 있다. 저자의 글 한 꼭지 한 꼭지는 생생한 다큐멘터리 한편이나 다름없다. 저자가 만난 탈북자들, 그들이 들려주는 북한의 실상은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끔찍해 보였다.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금강산 여행이나 개성공단 건설 등으로 최근 몇 년 사이 우리에게 자주 노출되고 있는 북한은 어떤 곳이고, 책속의 주인공들이 증언하는 북한은 어떤 곳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의 작업기간은 10년. 1991년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로 입사, 이후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연길시 <조선일보> 연수특파원(1997년)으로 그곳에서 머물던 그는 1998년 겨울 어느 날 중국 두만강 가 조선족 집에서 한 탈북자와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나누게된다. 그 이후 탈북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카메라에 담고 그들을 직접 만나는 오랜 작업을 하게 된다. 이 책은 그 기록이다.

국내 입국 탈북자 수는 1999년 처음으로 100명을 넘은 이후 2002년 1천명, 2006년 이후 연간 입국자 2천명이 넘어 2008년 현재 1만 3천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우리 곁에 왔으며 현재 어떻게 살아가는지 등 거의 알려지지 않은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 작업은 결코 완성할 수 없는 퍼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수없이 많은 사진들을 모아 조합을 해도 도저히 밑그림조차 맞출 수 없을 만큼 어렵고 당혹스런 작업이었고 하면 할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돈이 되는 것도 그렇다고 사회적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나를 보며 아직도 탈북자냐며 비웃는다. 하지만 탈북자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끌고 올 수 있던 것은 우리가 앞으로 안고 가야할 현실이고 미래이기 때문이었다. …내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사진집으로 인해 바로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인 탈북자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작게나마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저자 최순호

책속에서 만난 또 다른 책 <세상밖으로 나오다-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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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밖으로 나오다> -겉그림
ⓒ 북한인권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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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다닐 때나 공장에 다닐 때도 쥐가 있다고 하면 무서워 달아나는 사람 하나 없이 모든 이들의 눈길이 쥐에 쏠린다. 우리에게 가장 인기있는 일은 쥐를 잡아서 구워 먹는 것이다. 나도 관리소에서 쥐를 많이 잡아 먹었다. 쥐를 불에 살짝 구워서 껍질을 벗겨내고, 내장을 파낸 다음 소금을 뿌려서 바삭하게 굽는다. 그렇게 바삭하게 익힌 다음 머리도 남기지 않고 뼈까지 다 씹어 먹는다.

농촌 지원을 나가면 쥐를 많이 잡을 수 있어 일주일 내내 쥐를 잡아 먹은 적도 있다. 쥐가 보이지 않아 한 달에 한 번도 못먹은 적도 있다. 쥐를 잡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먹지 않고 학교로 가져가서 '화구'에 구워 먹는다. 작업이 끝난 후 친구들끼리 모여 잡아 온 쥐를 꺼내놓고 함께 먹는다. 쥐 잡아 먹는다고 나무라지는 않는다. 여름에는 나뭇가지를 모아서 굽기도 하고, 작업반 내 불을 피워놓은 곳에서 구워먹기도 한다.

화장실에도 쥐가 많아 화장실에 있는 쥐를 잡아 먹기도 한다. 쥐가 관리소에서 많이 걸리는 병인 '빠라그라(펠라그라)'에 좋다고 한다. 오히려 뱀보다 쥐가 영양가가 많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관리소는 평안남도 개천 정치범 수용소. 저자 신동혁은 이 수용소 14관리소에서 태어나 24세까지 자랐다. <탈북자 그들의 이야기>에는 신동혁의 이야기와 이 책속 글 몇 꼭지가 짤막하게 소개되어 있다. 위 인용글도 이 사진집에 실려 있어 만났고 책을 검색해봤다. 조만간 읽어봐야겠다.(저자:신동혁/2007년 12월/13,000)

덧붙이는 글 | <탈북자 그들의 이야기>(최순호(글과 사진)/시공사/2008년 9월 25일/14000)



탈북자, 그들의 이야기 - 가슴 아픈 역사의 그림자를 담아낸 포토 에세이

최순호 글 사진, 시공사(2008)


태그:#탈북자, #북한, #다큐멘터리, #북한의 식량난, #북한인권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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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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