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산비탈에 쓸쓸하게 피어 있는 하얀 구절초를 쪼그려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올 봄에 몇몇 사람들이 풀을 뽑고 자갈을 골라내어 씨를 뿌렸다. 가뭄이 들면 호수를 연결하여 물을 주었고 구절초가 나기도 전에 잡초가 무성하면 풀을 뽑아 주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손길을 받아 가을이 되자 푸른 몸을 가냘프게 흔들며 하얀 꽃들을 피웠다.

 

꽃을 피웠으나 그들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많지 않다. 아이들도 별 관심이 없다. 워낙 외진 곳에 피어 있기도 하려니와 꽃이 성글게 피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을 심은 사람은 늘 관심을 두고 바라본다. 윤 선생도 그렇다. 학생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윤 선생은 아이들에게 피함의 대상이다. 먼발치에서 그림자만 봐도 피해갈 정도다. 물론 그렇게 피하는 아이들은 뭔가 구린 곳이 있는 아이들이다.

 

그 윤 선생은 봄내 꽃을 심었다. 꽃씨를 구해다가 이곳저곳에 뿌렸다. 때론 다른 곳에서 옮겨다 심기도 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한 덕으로 급식실 앞에는 코스모스가 피었다. 다른 한 쪽엔 골드 메리라는 꽃이 나란히 피었다.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나오면 가녀린 코스모스가 활짝 반겼다. 어떤 아이는 코스모스에 코를 대고 킁킁 댔다. 어떤 아이는 연붉은 꽃잎 하나를 따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어르기도 했다. 또 어떤 아이는 꽃송이를 끊어 입에 물고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잠시나마 코스모스는 아이들의 동무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내게 그리움이 되어 주었다.

 

 

한 포기의 풀을 볼 때 생각했습니다. 한 포기의 풀이

꽃이 피울 때 가슴 쓸어 내렸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도 저처럼 꽃피워 지는 것이라면 꽃으로 말입니다

사랑으로 가득 차 피어나는 꽃

 

꽃 꽃 꽃 꽃 꽃

기다림 끝에 피어납니다.

그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가슴 저미는 그리움

그리움 가득 없이는

한 송이의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열매 맺지 못합니다. - 박남준의 '한 송이의 꽃도'

 

기다림 아닌 게 없다. 사랑 아닌 게 없다. 살아가면서 꽃 한 송이와 인연을 맺지 않은 사람도 없다. 아무리 무서운 사람도 눈물이 없는 사람은 없다.

 

아이들에게 엄격한 윤 선생은 정이 참 많다. 수련회나 무슨 캠프에 가면 아이들의 간식을 손수 만들어 주었다. 지난 여름 간부 수련회 때엔 손수 국수를 삶아 40여명의 아이들에게 비빔국수를 만들어 주었다.

 

어쩌다 아이들을 혼내고 나면 마음 아파했다. 함께 술잔을 나누면서도 한숨을 쉬곤 했다. 시인은 한 포기 풀이 꽃이 피울 때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했지만 훈장 노릇으로 생활하는 이들은 아이들과 복닥거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면서도 아이들 때문에 웃고, 아이들 때문에 행복해한다. 아이들은 꽃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뭄이 들면 물을 뿌려주고, 잡초가 무성하면 풀을 뽑아주고, 비가 너무 많이 와 흙이 패여 뿌리가 보이면 흙을 북돋아주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윤 선생이 요 며칠 동안 꽃씨를 가득 모아왔다. 박스 하나엔 코스모스 씨앗이 가득했고, 다른 하나엔 골드메리 꽃씨가 가득 담겨 있다.

 

"웬 꽃씨를 가득 따왔어?"

"내년 봄에 심으려고요."

"와! 그럼 내년엔 학교가 꽃동산 되겠네."

"일거리죠. 그래도 꽃을 보면 마음이 좋아져요."

 

꽃을 보면 마음이 좋아진다는 윤 선생은 꽃처럼 웃는다. 웃음에는 조금은 외로운 가을 꽃 냄새가 묻어났다. 그렇게 보였다. 그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꽃씨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부드러운 꽃씨가 손등의 핏줄을 타고 마음으로 전해온다. 그 느낌이 참 좋아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느낌 참 좋죠?" 그는 내게 그렇게 물었다. 그래서 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답했다.

 

"응. 내년에 당신은 꽃을 심어. 난 꽃을 찍을 게."

 


태그:#꽃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너! 나! 따로 가지 말고 함께 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