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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안성의 한 시민단체에서 '생태 안내자 교육'을 위해 차량운행을 부탁해왔다. 평소 하던 대로 쾌히 승낙을 하고 15인승 승합차를 몰았다.

 

행선지는 서운산. 그것도 청룡사가 있는 서운산(경기도 안성시 서운면)이다. 서운산은 반대쪽으로 올라가게 되면 석남사가 있다. 둘다 소위 '천년 고찰'이다. 그래서 서운산은 이쪽으로 올라가도 천년고찰, 저쪽으로 올라가도 천년고찰을 만나게 된다.

 

하여튼 사람들을 내려주고 차를 주차시켰다. 어떻게 할까,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바로 옆에 있는 청룡사를 찾았다. 역시 청룡사는 갈 때마다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아직 가을이 완연하지 않았지만, 천년의 기풍이 살아있는 청룡사의 대웅전이 백미였다.

 

마침 스님과 신도들이 108배 중 이었다. 스님은 계속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고, 신도들은 계속 108배를 했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시상이 절로 떠올랐다.(그래서 시를 지은 것이 아래 시다) 가을의 산새소리와 풍경소리, 스님의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가을을 노래하고 있는 듯.

 

천년고찰 산사에는 가을이 내려와 앉았다. 스님도 신도도 산새도 어느 덧 마음을 비우고 부처가 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넋을 놓고 보다가 처음 청룡사에 온 것도 아닌데 여기 저기를 새삼스래 또 돌아보았다. 역시 올때 마다 새로웠다. 물론 가져간 카메라에 열심히 담는 것은 기본이었다. 찍고 또 찍었다. 같은 그림을 놓고 찍었는데도 찍을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것은 아마도 천년 사찰의 천년 내공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때 마침 절에서 일 보시는 어르신 한 분이 말을 건네왔다.

 

“어디서 오셨쑤”

“아, 에. 안성 금광면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어 되오”

“아 제가 글을 좀 쓰는 사람이라. 사진을 찍습니다.”

“아하, 그러쇼. 그럼 점심 때가 되었는데 공양(식사)이나 하고 가쇼.”

“괜찮습니다. 일행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겠습니다.”

 

확실히 절 인심이 좋다.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순간 나는 천년 사찰의 멋에 빠지고, 가을의 맛에 빠지고, 절 인심의 맘에 푹 빠져 버렸다. 그 어르신에게 넙죽 인사를 하고 거기를 황급히 빠져 나왔다. 무슨 천년의 멋을 훔쳐 나오는 사람처럼 말이다. 괜히 송구하니까 취한 나의 행동이었다.

 

그렇게 나는 가을 산사에서 경건한 108배를 맛보았다.

 

 

가을 산사는 지금 108배 중

 

                                      일해(一海)

                                                                

지금은 부처가 되는 시간,

지금은 가을이 되는 시간.

 

풍경 소리에 색즉시공,

목탁 소리에 공즉시색.

 

두 손 모으고 나무아미타불,

무릎 꿇고 관세음보살.

 

스님은 부처님을 부르느라 점잖고,

중생은 부처님을  맞이하느라 숨차다.

 


태그:#청룡사, #안성 서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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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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