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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
ⓒ 대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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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만으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난 작가가 되었고, 작가로 살고 있다. 이제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여지가 나에겐 없다. 내 소설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나의 체험이다."

2001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작가가 된 계기가 무엇이며,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에 후회는 없는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위와 같이 답함으로써 '운명으로서의 작가론' 그리고, '문학적 에너지'를 보여준 프랑스 소설가 장 마리 구스타프 르 클레지오(68)가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벨문학상을 주관·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9일 저녁(한국시각) "인간에 대한 지적 탐구와 새로운 문학적 모험을 실현했다"는 요지의 수상 이유를 전 세계로 타전했다. 그의 첫 작품 <조서>가 씌어진 것이 23세 때니 클레지오로선 작가 생활 45년 만에 얻은 작지 않은 기쁨이다.

1940년 4월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난 클레지오는 각기 국적이 달랐던 부모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어와 함께 영어를 자연스레 접했다. 그가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소설을 쓴 이유는 영국의 식민지정책에 반발해서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앞서 언급한 첫 번째 소설 <조서>로 약관의 나이에 프랑스의 유수 문학상 가운데 하나인 르노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브리스톨대학과 런던대학에서 공부한 그의 석사 논문 주제는 앙리 미쇼에 관한 연구. 1966년엔 태국 방콕에서 군인으로 생활했는데 이때 불교와 동양적 정신세계를 접하게 된다. 이후에도 멕시코와 파나마 등 남미에서의 체험은 그의 문학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가 "내 소설의 뼈대는 나의 체험"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짐작되는 부분이다. 남미에 머물 당시엔 주로 원주민들과 어울렸고, 남미 인디언의 신화와 전설을 번역하기도 했다.

수차례 한국 방문... 대학에서 강의 하기도

<조서> 출간 이후 1965년엔 <열병>을 상재했고, 이후 거대한 현대도시의 혼란과 고독을 특유의 심미안으로 포착해낸 <홍수>(1966년)로 평단과 독자로부터 끊임없이 주목 받았다. 그외에도 <사랑의 대지> <전쟁> <거인들> <저편으로의 여행> <황금물고기> <매혹> <하늘빛 사람들> 등의 작품을 낸 클레지오는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라는 영광스런 수식어를 독자들로부터 얻어내기도 했다.

"나는 카뮈와 싸르트르의 영향권 아래에서 자랐고, 내 소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참여소설"이라는 문학관을 피력하는 클레지오.

많은 수의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이 "서구문명이 가진 한계를 제3세계의 전통 가치에서 찾으려 한다"고 평가한다. 이에 대해 클레지오는 "서구문명을 무조건 비판하려는 건 아니지만, 서구문화의 제3세계 문화 지배는 분명히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얼마 전 타계한 이청준의 소설을 번역본으로 읽고 그 매력에 흠뻑 빠졌었고, 2001년 방한 당시 전남 화순 운주사의 정취에 취해 '운주사, 가을비'라는 시를 쓰기도 한 클레지오는 대산문화재단 등의 초청으로 수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한 대학에선 강의를 했을 정도로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작가다. 뿐아니라, 한국영화에 대한 사랑도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편,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돼 온 고은(75) 시인은 올해 역시 '수상이 유력시되는 후보' 중 한 명이었으나, 아쉽게도 후일을 기약하게 돼 그의 시와 문학을 아끼는 독자들은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태그:#노벨문학상, #클레지오,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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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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