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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토) 후끈하게 맑음

오늘은 바라나시 입성의 날이다. 사트나에서 출발한 열차는 가득 찬 사람들의 열기 등으로 인해 잠들기가 힘들었다. 뒤척이다 선잠에 꿈도 꾸었다. 기차 안 공기가 선선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새벽이 가까운 모양이다.

이번 여행은 고행의 연속이다. 최근 들어 이렇게 지속적으로 잠자리가 불편한 적이 있었는가? 이러함을 감수하면서 진행하는 이번 여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마도 인도는 인생에 있어 자신을 돌아보고 인생을 생각하고 정리되지 않은 삶을 추스르게 하는 그런 곳이 아닐까?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5시경 우리는 바라나시 정크역에 도착했다. 일단 숙소를 정해 지친 심신을 추스르기로 하고 여행사에서 소개한 바바게스트하우스를 가기로 했다. 바바게스트하우스는 다사수와멧 가트 인근에 있다.

게스트하우스 바라나시에 있는 바바게스트하우스, 종이로 적은 안내문에 한글도 보인다.
▲ 게스트하우스 바라나시에 있는 바바게스트하우스, 종이로 적은 안내문에 한글도 보인다.
ⓒ 박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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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 역 앞에서 사이클릭사를 30루피에 흥정하여 출발했다. 인도에서 관광객이 몰리는 도시는 바가지가 기본이다. 값을 물으면 심하게는 10배부터 부른다. 이제 나도 흥정하는 솜씨가 점점 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사이클릭사에서 바라 본 바라나시의 거리는 델리 이상으로 혼란스러웠다.

오히려 길에 있는 오물은 더욱더 심한 것 같다. 15분 정도 걸려서 메인가트(다사수와멧 가트의 다른 말) 삼거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난관은 지금부터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어깨가 부딪치는 좁은 골목길을 헤매며 겨우 숙소를 찾았다.

온통 똥과 소와 개들이 뒤섞인 미로 속에 자리 잡은 숙소는 눈을 휘둥그레하게 할 만큼 특급이었다. 물론 그간의 숙소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숙소내부 바바게스트하우스 내부의 침실 모습. 널직한 침대와 외부 전망이 좋다
▲ 숙소내부 바바게스트하우스 내부의 침실 모습. 널직한 침대와 외부 전망이 좋다
ⓒ 박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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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찍한 룸과 정갈한 화장실, 게다가 갠지스 강 바로 옆이다. 모처럼 가슴 편히 짐을 풀고 샤워를 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이 더러운 골목에 이런 환상적인 숙소가 존재한다니……. 나중에 확인하니 바라나시 전 골목길이 똑같이 더러웠다. 원래 더러운 동네인 것이다. 적어도 내 눈에는.

인간은 소위 기대치라는 것이 있다. 만일 인도에 와서 처음 접한 숙소가 이곳이었다면 이토록 감격하진 않았으리라. 요 며칠 사이에 조그만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내 가슴에 스며든 것이다.

숙소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한식도 된다. 이 집 사장 부인도 역시 한국에서 시집 온 여자란다. 인도로 배낭여행 오는 여자들이 혹여 시집 가려고 오는 것인가. 왜 이리 배낭여행 출신 신부가 많은 것인가. 아침 식사 후 바라나시 시내투어를 나섰다.

뒷골목 바라나시 뒷골목 풍경, 좁고 지저분하고 습한 곳이며 전체 골목이 같은 상황이다
▲ 뒷골목 바라나시 뒷골목 풍경, 좁고 지저분하고 습한 곳이며 전체 골목이 같은 상황이다
ⓒ 박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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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좁고 음습하고 바닥은 오물로 질척이며 가게들은 하나같이 반 평도 되지 않는다. 이게 사람 사는 공간인지 짐승이 사는 공간인지 구별할 수가 없다. 지천에 깔린 병든 개들, 상상할 수 없이 좁은 곳까지 소들이 들어와 서성인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이 생존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으로 보인다.

주요 사원 인근에는 중무장한 경찰의 경비가 삼엄하다. 힌두와 이슬람의 화해할 수 없는 관계가 그 원인이다. 어쩌면 이 정도의 평화가 유지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간혹 인도의 폭탄 테러 소식을 접한 기억이 있다.

계속된 문화적 충격과 강행군으로 인하여 심신이 다 녹초가 된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누운 것이 깊은 잠에 빠졌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깨니 스콜성 소나기가 창문을 때리고 있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이다. 약 3시간 정도 꿀 같은 단잠에 빠진 것이다.

몸을 추슬러 성환이를 앞세워 밖을 나선다. 이미 소나기는 말끔하게 개이고 음습한 골목을 빠져나온 우리는 사이클릭사를 타고 아시가트를 향했다.

아시가트 소와 사람이 함께 목욕하는 아시가트, 물빛은 완전히 흙탕물이다.
▲ 아시가트 소와 사람이 함께 목욕하는 아시가트, 물빛은 완전히 흙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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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은 몬순기후에 따른 호우로 모든 가트가 끝까지 잠겨 있어 가트간 연결된 길이 모두 끊어진 상황이다. 물이 불어 좁아진 가트 입구에는 온갖 군상의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그래서 가장 한적하지만 힌두인들이 신성시한다는 아시가트를 향한 것이다. 30여분을 달리니 시골 느낌이 드는 아시가트가 나온다. 호객꾼도 별로 없고 사람들도 수줍어한다.

이곳에서 빨래하는 이, 목욕하는 이, 기도하는 이들을 계단에 앉아 멍하니 구경을 했다. 사람들 사이로는 소들도 물 속에 들어가 있다. 그 밑에서는 설거지도 한다. 이들에게 있어 갠지스 강의 의미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카스트 제도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지치고 힘든 삶의 윤회를 끊는 유일한 방법으로 이곳에서의 목욕을 통해 세속의 죄를 씻고, 죽어서 화장한 후 갠지스 강에 뿌리면 고해로부터 영원히 해방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박한 믿음이 있어 인도인들을 갠지스 강에 광적으로 몰두한다는 것이다.

겐지스보트 순전히 인력으로만 운행하는 갠지스강 보트, 노잡이의 선그라스가 이체롭다.
▲ 겐지스보트 순전히 인력으로만 운행하는 갠지스강 보트, 노잡이의 선그라스가 이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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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까지 와서 갠지스 보트를 타지 않을 수 없다. 흥정을 시작하니 메인가트까지 왕복에 600루피를 달란다. 안내책자에는 150~200루피 정도 하는데 몬순으로 강물이 불었을 때는 가격이 몇 배로 뛴다고 되어 있다. 나는 무조건 반을 잘라 우리 세 명 타는데 300을 제시했다. 그러자 펄펄 뛰며 500을 제시한다.

내가 고개를 저으니 지금 물살이 너무 세서 노 젖기가 너무 힘들다고 400은 받아야 한다고 한다. 미련 없이 발길을 돌리니 체념한 표정으로 300에 타라고 한다. 매번 흥정을 할 때마다 마음은 무겁다. 하지만 흥정을 포기하는 것은 배낭여행의 기본을 어긋나는 것이라는 선배들의 충고를 가슴에 담는다.

흥정을 끝낸 후 보트에 오르니 비록 물이 불어 상당 부분 가트가 잠겨 있지만 갠지스에 여러 가트들이 한눈에 보인다. 한강보다 더럽고 작은 갠지스 강에 수억 힌디교인들의 꿈이 있다고 생각하니 비록 흙탕물이지만 경건함도 느껴진다.

바라나시 전경 갠지스강 보트에서 바라본 바라나시 가트의 전경, 몬슨기후에 따른 호우로 가트가 다  잠겨있다.
▲ 바라나시 전경 갠지스강 보트에서 바라본 바라나시 가트의 전경, 몬슨기후에 따른 호우로 가트가 다 잠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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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가트는 최상류에 있어서 메인가트에는 20여분만에 도착했다. 비쩍 마른 노잡이가 선원이라고 선글라스로 한껏 멋을 냈다. 보트에는 우리 말고 세 사람이 더 탑승을 했다. 노잡이 1명 외에 2명이 괜히 탔는가 싶었는데 보트를 돌려 상류쪽 아시가트를 향하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몬순으로 인하여 물도 불고 유속도 빨라져 세 명의 사공이 팔뚝에 근육이 튀도록 노를 저어야 강을 거슬러 오를 수 있는 것이다.

20여분만에 온 지점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3명의 사공이 죽기 살기로 노를 저어 1시간만에 돌아왔다. 이렇게 처절하게 노를 젓는 3명의 대가가 7000원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참으로 무겁다.

힌두대학 바라나시에 있는 힌두교 최고의 대학, 이곳에는 유일하게 소가 없는 지역이다. 대학경내에 있는 뉴 비쉬와나트 힌두사원앞에서 증명사진
▲ 힌두대학 바라나시에 있는 힌두교 최고의 대학, 이곳에는 유일하게 소가 없는 지역이다. 대학경내에 있는 뉴 비쉬와나트 힌두사원앞에서 증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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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음은 사이클릭사를 탈 때에도 든다. 조금 전 아시가트에서 30여 분 간 부들부들 떨며 죽기 살기로 페달을 밟은 릭사왈라에게 내가 가혹하게 흥정하여 준 돈은 800원도 안 되는 돈이었던 것이다. 이게 바라나시의 물가이다. 혼자 적선을 베푼다고 돈을 펑펑 쓰면 이들 사회에 일련의 혼란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시가트에서 힌두대학으로 이동했다. 전 세계 힌두인의 최고 지성을 키운다는 곳이며 바라나시에서 소로부터 유일하게 해방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 캠퍼스의 크기는 걸어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넓었다.

인도대학의 수준이 세계적이라는 말을 들은 만큼 힌두대학의 분위기는 그간의 바라나시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불가촉천민도 대학을 통해 카스트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한 불가촉천민 출신의 학생들은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르띠푸자 겐지스강 가트에서 저녁마다 벌어지는 힌두교 전통푸자, 매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전면에는 보트에 타고 참여하는 인도인들
▲ 아르띠푸자 겐지스강 가트에서 저녁마다 벌어지는 힌두교 전통푸자, 매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전면에는 보트에 타고 참여하는 인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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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돌아온 우리는 이번엔 갠지스 강에서 벌어지는 힌두교의 푸자를 구경한 후 인도 전통음악회를 관람했다. 인도 전통악기인 시타르와 타블라가 서로를 어우르며 만드는 몽상적 분위기가 매우 이채로웠다. 슬픈 듯 꿈결인 듯 이어져 가는 수십 개의 현을 가진 시타르와 두 개의 북에서 수십 가지의 타악기 소리가 나는 타블라는 신비주의 인도의 정취에 푹 빠지게 했다.

전통공연 인도 전통악기인 시타르와 타볼라의 협연, 이곳의 명인들의 공연에 몽상적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 전통공연 인도 전통악기인 시타르와 타볼라의 협연, 이곳의 명인들의 공연에 몽상적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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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갠지스하면 떠오르는 화장터에 갔다. 힌두교인의 최대 소망인 갠지스에서 화장 후 강에 뿌려지는 현장인 것이다. 화장터는 노천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하루에 도대체 몇 구가 화장되는지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에도 수십 구가 화장되고 있었으며 화장을 기다리는 시신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원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노천화장터라 두려움이 생기지도 않는다. 지금 바로 내 눈앞에서 시신이 불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장작을 건드릴 때마다 팔도 떨어지고 다리도 떨어진다. 마침 균형을 잃은 머리 하나가 내 쪽으로 굴러온다. 이곳은 모두 바쁘게 각자의 역할을 하며 화장된 뼈를 수습하는가 하면 새로운 시신을 장작 위에 올려놓는 등, 내 앞으로 굴러온 머리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런 엽기적인 상황에 나조차도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고기타는 냄새와 그저 한 줌의 재로 변하는 생명 잃은 유기체들만 존재하는 것 같다. 이곳에 성환이를 데려온 것이 잘한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미 공포와 너무 빨리 알아버린 죽음이라는 커다란 명제를 소화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바라나시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길게 흐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광명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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