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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황궁이었다.
▲ 자금성. 명나라의 황궁이었다.
ⓒ 임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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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함락된 북경, 탈출자들의 북새통으로 아비규환

북경의 공기가 흉흉했다. 괴 소문은 바람을 타고 외성을 뒤덮었다.

"반란군이 북경의 턱밑에까지 치고 올라왔다더라."
"춘절이 지나면 대공세를 펼친다 하더라."

자금성을 안고 있는 내성에 떠다니는 소문은 더욱 구체적이었다.

"이자성의 군대가 이미 북경에 들어왔다 하더라."
"조정에 협조했던 자들은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죽인다 하더라."

소문이 소문을 낳았다. 확대재생산 된 소문은 공포분위기를 조성했다. 잃을 것이 없는 백성들은 잠자코 있었으나 돈 있고 권세 있는 자들은 부랴부랴 피난 짐 보따리를 꾸려 북경을 빠져 나갔다. 하지만 북으로 가면 첩첩산중 장성이 가로막고 있었다. 동쪽으로 가면 공포의 팔기군이 노려보고 있다. 갈 곳은 하나. 서쪽이다. 북경에서 산시성으로 빠져 나가는 길은 아비규환 북새통을 이루었다.

한 나라에 황제가 셋, 가히 전국이다

이자성 군대가 서안을 접수했다. 파죽지세다. 이제 북경이 지척이다. 서안을 손아귀에 넣은 이자성은 국호를 대순이라 칭하고 황제에 즉위했다. 천자가 호령하던 대륙에 황제가 셋이다. 숭정제, 순치제, 이자성, 가히 전국시대다. 다급해진 숭정제가 신하들을 불렀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청나라에 원병을 청해야 합니다."

동쪽에서 숨통을 조여오고 있는 청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자고 한다. 어이없는 소리 같지만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궁여지책이다. 반란군에 항복하는 것보다 청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여 위기를 탈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되었다.

신하들의 주청을 받아들인 숭정제는 세 사람의 사신을 선발하여 청나라에 파견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하책이다. 술에 취한 숭정제가 환관을 불렀다.

단발마를 터뜨리는 황제,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랑캐에게 사신은 무슨 놈의 사신이냐? 사신으로 떠난 자를 당장 목 베어라."

청나라 진영으로 향하던 사신은 영문도 모른 채 길거리에서 처형되었다. 이튿날 술이 깬 숭정제가 환관을 불렀다.

"사신은 왜 아직 돌아오지 않느냐?"

황당했지만 환관은 사실대로 보고했다.

"이런 몹쓸 놈들이 있나? 사신을 처형한 놈들을 모조리 목 베고 다시 사신을 선발하라."

새로 임명된 사신이 머뭇거렸다. 사신이 청나라 진영으로 가던 도중 처형되었으니 떠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대노한 숭정제가 명했다.

"꾸물거리는 자를 처형하라."

사신을 처형한 숭정제가 산해관을 방어하고 있던 오삼계를 불러 북경을 사수하라 명했다. 북경사수를 명받은 오삼계는 번민했다. 남쪽엔 이자성의 반란군. 동쪽엔 청나라의 팔기군. 북경은 절해고도와 같았다. 관군 5만으로 100만 이자성군대를 막는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남쪽으로 도망가고 싶다

숭정제가 좌우를 물리치고 중윤 이명예를 내전으로 불러들였다.

"이 일을 어찌하나?"
"남천은 아직 유효하십니까?"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실행하지 못했을 뿐이다."

숭정제는 청나라 군이 산해관을 압박해오자 남경 천도를 생각했었다.

"행차를 4갈래로 나누어야 합니다. 황제께서는 가볍게 차리시고 가장 작은 길을 택하면 20일후면 회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개의 행차는 위장으로 내 보내고 본대는 허술한 차림으로 외진 길을 택하자는 것이다. 숭정제는 천진순무 풍원양에게 배 300척을 직고구에 대기하라 명했다. 반란군이 진을 치고 있는 남쪽을 피해 바닷길로 우회하겠다는 계략이다. 하지만 급사중 대부분의 대신들이 반대했다. 대명황제가 도망갈 수 없다는 명분이었다. 결국 남천(南遷)은 무위로 돌아갔다.

반란군의 협박, 공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15일후면 북경에 입성할 것이니 항복할 준비를 하라."

이자성으로부터 최후의 통첩이 날아왔다. 통첩장을 받아든 숭정제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런 쳐 죽일 놈들 같으니라구. 도적놈들이 감히…."

분노가 허공에 메아리쳤다. 협박은 공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이경이 넘은 이슥한 밤. 숭정제가 대신들을 불러들였다. 황제가 심야에 신하들을 부르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남쪽으로 갈 것이다."
"아니 되옵니다. 폐하!"
급사중 광시현이 반대했다.

"그렇다면 태자를 남쪽으로 보낼 것이다."
이명예는 침묵했고 광시현은 반대했다.

"짐이 망국의 군주가 아니라 경들이 망국의 신하로다."

숭정제는 탄식했다. 숭정제는 여러 대신들을 불러 북경 수비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기우는 해 어떻게 잡을 것인가. 이방화, 항욱, 범경문 등이 남천을 극력 주청했다.

"국군(國君)은 사직을 지키며 죽는 것이 고금의 도리다. 짐의 뜻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다시는 남천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마라."

숭정제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숙연한 분위기가 편전을 감돌았다. 죽음을 각오한 숭정제의 결기 앞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주변을 정리하는 최후의 황제

이튿날, 북경에 꽹과리 소리가 울리고 곳곳에 불길이 치솟았다. 이자성 부대가 북경에 진입한 것이다. 화염에 놀란 숭정제가 태감을 불렀다.

"반란군들이 어디쯤 와있는가?"
"내성에 와있습니다."
"대영병은 어디 있는가?"
"모두 흩어졌습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태감이 도망가 버렸다. 모든 것을 체념한 숭정제가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태자와 비빈들을 불러 자결하라 명했다. 후궁들은 황제에게 마지막 절을 올리고 허리띠를 풀러 목을 맸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나이 어린 공주가 머뭇거렸다. 황제가 딸을 불렀다.

"너는 어쩐 일로 우리집에 태어났느냐?"

탄식과 함께 숭정제의 칼이 허공을 갈랐다. 꽃다운 15살 어린 소녀가 선혈을 뿌리며 꼬꾸라졌다. 숭정제는 숨이 남아 있는 몇몇 후궁들의 목을 쳤다. 공주의 선혈이 낭자한 옷을 입은 숭정제가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유조(遺詔)를 쓰기 시작했다.

"짐의 덕이 부족하여 하늘의 허물을 받았다. 이것은 여러 신하들이 짐을 잘못 이끈 탓이다. 짐은 죽어서도 지하의 조종(祖宗)을 뵐 면목이 없다. 이제 스스로 황관을 벗는다. 도적들에게 이르노니 백성들은 한사람도 죽이지 말라."

정신없이 써내려간 숭정제는 유조를 남기고 내원 백산에 올랐다. 그를 따르는 사람은 자금성을 메웠던 수천 궁녀와 환관은 어디가고 태감 왕승 한 사람뿐이었다. 산에 오른 숭정제는 목을 맸다. 중국 역사 속에서 황제가 목을 매 자결한 것은 숭정제 주유겸이 유일무이하다. 주원장으로부터 시작한 대명제국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로부터 이자성의 '42일천하'가 시작되었다.


태그:#숭정제, #북경, #이자성, #명나라, #오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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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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