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뜻밖이었다. 마치 어느 3류 작가가 쓴 멜로드라마의 억지 결말을 본 기분이다.

불과 얼마 전 어린 두 아들에게 자신의 성을 갖게 한 의지있던 엄마가, '국민요정'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벗고 이제 '아름다운 40대'로 거듭나기 시작했던 여배우가 갑자기 이 세상을 훌쩍 떠나고 말았다. 한 줌의 재로 사라진 지도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최진실. 90년대 학창시절을 보냈던 이들에게는 '책받침 속 연인', 혹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귀엽게 귀뜀하는 발랄한 여인으로, 어려운 가정형편을 딛고 일어선 '또순이'로 기억할 것이다.

최근에 최진실을 보기 시작한 이들은 불치병에 걸리면서도 삶의 의욕을 불태우던 '맹순이'로, 이혼의 아픔 속에서도 두 아이를 키우려는 '의지의 엄마'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런 그가 그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살'을 택했다. 각종 악성 루머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한 모습을 보이며 차기작을 준비하던 최진실은 끝내 우울함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이 세상을 미련없이 떠나고 말았다. 가족과 지인들은 물론 세상살이의 힘겨움 속에서 한숨쉬는 이들을 뒤로 한 채.

가난 속에 나온 '또순이 요정', 국민을 사로잡다

채시라(왼쪽)와 함께 공연한 MBC 주말드라마 <아파트>
 채시라(왼쪽)와 함께 공연한 MBC 주말드라마 <아파트>
ⓒ MBC

관련사진보기


90년대 초반, 국민은 한 여배우의 모습에 푹 빠지게 된다. 드라마와 CF에서 늘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미소를 날리던 요정이 등장한 것이다. 그 웃음의 뒤에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수제비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가난이 있었다. 그러나 그 가난 속에서 요정의 미소는 탄생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보여진 최진실의 첫 모습이었다. <질투>를 위시한 드라마에서 최진실은 당당하고 자기 주장 강한 20대 여성의 아이콘이었다.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그녀는 정말 아내로 삼고 싶은, 우리들의 영원한 새댁의 모습이었다.

물론 <꼭지딴>이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은> 등의 영화에서 변신을 시도했다고는 하지만 대중이 바라는 모습은 한 살씩 나이를 먹을수록 자연스럽게 여인이 되고 엄마가 되는 최진실의 모습이었다. 결혼과 이혼, 양육권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고 이 때문에 재기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90년대 초반의 최진실을 잊으려 하지 않았다.

그랬다. 최진실은 분명히 '희망의 상징'이었다. 가난을 이겨낸 소녀, 가난 속에서도 명랑함을 잃지않고 아이들에게, 동료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여인. 최진실은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는 하나의 '이상향'이었다. 감수성 예민한 10대들 또한 당연히 최진실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30대 아줌마'의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서다

우리는 최진실의 최고의 변신을 잊지 못한다. 아줌마 '맹순이'로 나타난 드라마 <장미빛 인생>을 말이다. 비록 드라마 내용에 있어서는 시비거리가 있었지만 최진실의 연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최진실의 재기작 <장미빛 인생>
 최진실의 재기작 <장미빛 인생>
ⓒ KBS

관련사진보기


개인적인 아픔이 너무나 컸지만 최진실은 이것을 연기로 극복하려했다. 그리고 예쁘고 똑똑한 배역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맞는 30대 아줌마 '맹순이'를 택했다. 그는 아줌마를 선택하면서 동시에 두 아이의 진정한 엄마라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는 놀랬다. 재기 불능이라고 믿었던 최진실이 가장 최진실의 현실에 맞는 모습으로 돌아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다시 찾게 될 줄이야. 동시에 최진실은 이제 당당한 여성의 대표로 자리매김을 시작했다. 시련을 딛고 아이를 키우며 떳떳하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싱글맘. 그렇게 최진실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제 조용히 떠나보낼 때...

수많은 유명인들이 세상을 등졌지만 최진실의 죽음이 유독 대한민국 전체를 충격에 빠뜨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간 최진실을 이상향으로 여겼던 이들, 그리고 최진실이 꿋꿋하게 살아남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이들이 이 어처구니없는 자살 소식에 얼마나 큰 허무감을 느꼈을까? '당신마저도…'라는 생각에 더 큰 실의에 잠기는 것은 아닐까?

최진실의 유작이 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이것이 유작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최진실의 유작이 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이것이 유작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 MBC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밝혔지만 그는 외로움에 항상 시달렸다고 한다. 그 외로움을 같이 느끼고 나눌 생각은 하지 못하고 우리는 최진실에게 웃음만을 강요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라고 강요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자세한 정황은 알지 못한 채 무조건 '최진실'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과 욕을 퍼부어대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라'를 강요하기엔 그녀의 외로움과 우울함이 너무나 깊었을 것이다.

이제 최진실은 이 세상에 없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모두 과거가 됐다. 그럼에도 세상은 시끌시끌하다. 최진실의 죽음 논란을 연예언론들은 계속해서 다루려하고, 한나라당은 인터넷실명제를 거론하면서 최진실을 들먹이고 있다. 정략을 위해선 고인의 이름까지 팔아도 된다는 것이다.

분명히 최진실은 비겁한 선택을 했다. 그렇다 해도 이제는 최진실을 조용히 떠나보낼 때다. 그리고 우리는 한때나마 힘겨운 삶을 지탱시킬 의욕을 심어줬던 최진실을 마음 속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동안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느라 너무 고생많았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태그:#최진실, #맹순이, #장미빛 인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