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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나예요. 지금은 머리색이 이렇게 변했지만."

"막걸리 트레이닝이라고 해. 하하"

"와우, 정말 예뻤네."

 

1966년부터 1981년까지 국내에서 미국 평화봉사단원(Peace Corps)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을 대표해서 발표를 했던 평화봉사단 1기(K1) 다비드(David Lassiter)가 평화봉사단원들의 활동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진을 보여주는 쪽이나 사진을 보는 쪽이나 감회에 젖어들긴 마찬가지였다. 사진을 보여주는 쪽에선 이삼십대 청춘의 한 부분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는 순간이었고, 사진을 보는 쪽에선 '우리가 저렇게 가난했고 어렵게 살 때 우리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있었구나.' 하는 사실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들 속에는 초가집을 비롯한 허름한 가구 도구들, 찬이 많지 않은 밥상에 둘러 앉아 한국인들과 막걸리를 마시는 평화봉사단원의 모습(환영식을 겸한 자리였던 것 같았다), 당시만 해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한복 차림의 어르신들, 교복을 입고 전체 조회하는 모습, (숫기 없는) 남학생들이 웃지 않아 선생님이 분위기를 띄우고 두 번째 찍었다는 사진 등, 60-70년대 가난했지만 교육에 대한 열정과 순수함,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던 한국의 모습, 아련하게 우리의 지난 세월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사진들이 있었다.

 

세브란스와 서울대 병원 언어교정센터 설립에 기여했다는 글로리아(Gloria)의 사진은 살이 많이 찐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날씬하고 예쁜 모습이었고, 의정부에서 영어교사로 활동했던 다비드는 백발로 변한 자신의 사진을 보며 자신에게도 검은 머리가 있었음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사진을 보고 나서 서로 자유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때, 평화봉사단 한국사무소장이었던 존 키톤(Jon Keeton)은 "당시만 해도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던 대한민국의 발전과 해외봉사단 파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존 키튼 자신은 태국에서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원조 수여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대한민국의 발전이 놀라울 수밖에 없다며, '한국해외봉사단원들의 다양한 해외봉사활동은 또 다른 봉사자를 만드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파견을 앞두고 국내훈련중인 한국해외봉사단원들을 격려했다.

 

사실 평화봉사단원들과의 만남이 있기 전, '미국 평화봉사단 출신들의 방문이 있으니 자리에 함께 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하루 종일 잡혀 있는 선약이 있어서 참 난감했었다.

 

그러나 선약을 했던 사람들의 양해를 얻어 한국국제협력단을 방문한 이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깊은 인상과 감동을 선사해 줬다. 그 인상과 감동을 한마디로 한다면 '나도 저렇게 곱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었다.

 

젊었을 때의 날씬함을 찾을 수 없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를 갖고 있는 이에게선 단순히 물질의 여유만이 아니라,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 자체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고, 백발이 성성한 이에게선 지혜의 왕 솔로몬이 말한 바,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잠언20장 29절)"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줬다.

덧붙이는 글 | 국제교류재단(이사장 임성준) 초청으로 온 전 미국 평화봉사단(Peace Corps) 단원 42명과 가족 등 61명과의 만남은 6일 오후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있었다. 
이들은 7∼9일에는 자신들이 봉사활동했던 곳을 방문하고 옛 지인들과 해후할 계획이라고 한다.


태그:#평화봉사단, #한국국제협력단, #한국해외봉사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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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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