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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마지막까지 저항했다는 불가리아 산성에서
▲ 봉화대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마지막까지 저항했다는 불가리아 산성에서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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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0분이었다. 침낭을 개고, 옷을 갈아입고, 차 안의 취사도구며 책이나 잡동사니들을 '주행 대형'으로 정돈하기까지 걸린 시간. 독일 괴팅겐에서 중고차를 구입해 길을 나설 때엔 엄두도 낼 수 없는 속도였다.

지난 한 달 동안 독일·체코·오스트리아·헝가리·루마니아, 이렇게 다섯 나라를 지나오는  사이에 아내와 내게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는데, 먼저 청바지와 등산화가 반바지와 샌들로 가벼워졌으며, 얼굴은 새까맣게 변했고, 머리는 꼬불꼬불 폭탄머리가 돼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아침저녁으로 차 안 잠자리를 펴고 정돈하는 데 소비되는 시간이다. 처음에는 1시간 넘게 걸리던 것이 50분, 40분, 30분으로 줄어들다가 마침내 이날 아침에는 10분이라는 '신기록'을 수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특히 그 날 신기록에는 별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둘 사이를 흐르는 냉전기류 때문이다.

불가리아에 들어선 첫 날이었다. 다뉴브 강을 건너는데 루마니아 쪽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아주 다양한(!) 세금을 요구했다. 다리세·경제세, 그리고 기억도 나지 않는 또 다른 '무슨세'. 입국도 아니고 출국을 하면서 이만큼의 세금을 내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미 국경도시 '지우르지우'에서 애마에 기름을 넣고, 시장 보고, 미용실에서 파마까지 하며 다 써버린 루마니아 화폐로 지불하기를 요구했다. 루마니아 물가에 비춰보건대 결코 만만치 않은 액수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한낱 여행자일 뿐인 우리가. 구멍가게처럼 생긴 국경 은행에서 최악의 환율로 환전해 납세를 하고 나니 살살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다리세·경제세·소독세... 세금천국 불가리아

(루마니아-불가리아 국경에서)
▲ 다뉴브 강을 넘어 (루마니아-불가리아 국경에서)
ⓒ 양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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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리 부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뉴브 강은 구릿빛 얼굴로 세차게 바다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다리를 넘자 곧 불가리아 쪽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나왔다. 그런데… 여기에도 세금이 있단다. 물 웅덩이 하나를 지나게 하고선 '소독요금'을 내라했다. 그리고는 국경 관리군인이 도로지도를 보여주며 이렇게 묻는 것이다.

"도로통행세를 내야 합니다. 며칠 머무르실 거죠?"
"네…? 그야 모르죠."
"체류기간에 따라 세금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비자요금도 아니고 무슨 도로통행료가 체류기간에 따라 다르다는 건지. 점점 짜증이 난 나는 그만 이렇게 말해버렸다.

"그래요? 그럼 최단기간에 빠져나가는 걸로 하죠!"
"그렇다면 어느 길을 거쳐 어느 나라 어느 도시로 가실 거죠?"

이런! 사실 우린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다만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아무 때나 그리스로 넘어가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미 뱉어버린 말. 곧장 그리스로 넘어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4일 동안 통행세를 매기며 황당하게도 우리가 빠져나가야 할 국경사무소까지 지정해주었다.    

날짜나 루트를 바꾼다고 해서 출국할 때 확인까지 할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 해도 벌금을 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 놈의 나라에 정이 똑 떨어지는 것이다. 특별히 보고 싶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우린 곧장 발칸산맥을 넘어 그리스 최북단을 향해서 달리기로 했다. 

"이제 우리 따로 여행해, 넌 차 타고 난 배낭 메고"

(불가리아)
▲ 발칸 산맥 (불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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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를 내달렸다. 불가리아에 곱지 않은 마음을 먹었기 때문일까. 그날 저녁 우리부부는 크게 '한 판' 하고야 말았다. 내가 운전하다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헤매게 되었는데, 이미 이틀째 심기가 불편해 있던 아내와 나는 서로에게 화풀이를 해댄 것이다.

"넌, 옆에 앉아 지도도 안 보고 뭐 했냐?"
"그럴 수도 있지, 넌 안 그랬어?"

"그 때랑 같아?"
"뭐가 다른데? 흥!"

이렇게 시작된 싸움이 커졌다. 물론, 부부싸움이 늘 그렇듯이, 다툼의 원인이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손을 들면 천정이 닿고 다리를 뻗으면 차문에 부딪히는 좁은 차 안에서 장기간 먹고 자며 24시간 둘이서만 함께 지내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이다.

게다가 우리 애마는 에어컨도 없이 태어난 데다, 날씨는 초여름을 향해 질주하며 하루가 다르게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제 우리 따로 여행해. 넌 차 타고, 난 배낭 메고."

급기야 아내가 이런 제안을 내놓았다. 사실은 나 역시 화가 날 때 생각해보지 않는 일은 아니었지만, 먼저 아내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 보니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좋아, 당장 내일부터 '따로'야. 네가 먼저 한 얘기니까 후회 마라."

(오스만투르크에 대항에 마지막 저항을 했다는 불가리아 산성)
▲ 마지막 항전 (오스만투르크에 대항에 마지막 저항을 했다는 불가리아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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홧김에 말은 이렇게 했으면서도 난 밤새 머리가 복잡했다.

'아내 혼자… 좀 위험하지 않을까. 아니 무슨 소리? 넌 아직도 그녀를 잘 모르는구나. 그래도 나 혼자… 좀 외롭지 않을까. 아니야! 따로 여행해보는 것도 필요해. 그렇지만… 이처럼 싸우고 나서 헤어지는 건 아니지 않을까….'

생각이 엎치락뒤치락 널을 뛰고 재주를 넘고 하늘에 닿았다 땅에 떨어지며 요동을 치는 것이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깊은 밤, 마침내, 마음을 먹었다.

'그래, 내가 배낭을 메고 떠나기로 하자. 아내에게 차를 주는 거여. 노트북도. 하지만 사진기는 내가 가져갈 거야. 음… 취사도구는 챙길 수 없을 테니, 앞으로 빵 먹으며 고생 좀 하겠지. 짐은 그렇다 치고, 다시 만날 약속 정도는 해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한 달 뒤 이탈리아? 그런데 혹시… 아내는 기약도 없이 이대로 헤어지기를 바라는 걸까?'

언제 잠이 들었을까. 눈을 뜨자 창문에 오려붙인 종이커튼 틈새로 햇살이 들어와 있었다. 눈이 부셨다. 지난 밤 머리를 달구었던 생각들은 하루 지난 반창고처럼 힘없이 너덜거렸다. 반창고는 막 깨어난 아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만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나도 아내도 말이 없었다. 둘 다 말 한 마디 없이 짐만 챙기고 있었다. 그래서 딱 10분, 신기록이 수립된 것이다.

부부를 화해시킨 물건, 닭똥집

(불가리아 벨리코 타르노보)
▲ 닭똥집 요리를 만난 오래된 마을 (불가리아 벨리코 타르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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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코 타르노보)
▲ 성벽 사이로 (벨리코 타르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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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이나 달렸을까. 굽이굽이 산길을 넘자 파키스탄의 훈자나 인도의 다람살라 같이 산 능선을 따라 세워진 벨리코 타르노보(Veliko Tarnovo)라는 작은 도시가 나타났다. 가장 높아 보이는 곳에 오래된 성이 있고 성으로 올라가는 좁고 예쁜 돌길 좌우로 빨간 지붕의 마을이 오밀조밀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 광장에 내렸다.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든다. 싼 호텔을 알고 있다고. 영어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말하는 투가 반은 협박이다. 말쑥한 차림으로 지나가던 '신사'까지 와서 호텔이든 식당이든 아무런 문제가 없냐고 파고든다.

동유럽이라 하더라도 유럽에서는 흔치 않은 풍경이다.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긴 한 모양이었다. 평상시라면 같이 능글맞게 장난도 쳐가며 놀아줄 텐데, 이런 날은 좀 버겁다. 일단 시간 많은 동네청년들을 물리고,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노천 레스토랑에 앉았다.

'헤어질 땐 헤어지더라도 밥은 먹어야지.'

아침에 눈 뜨고 나서 여태껏 아내와 난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상태였다. 서로 눈치를 보다 내가 메뉴판을 보며 아무렇게나 웨이터에게 손가락을 짚어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 주문한 요리가 나왔을 때 우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 뭐야?"
"닭똥집?"

피자와 함께 나온 요리는 놀랍게도 닭똥집볶음이었다. 누가 먼저랄 거도 없이 감탄사를 터트리고는 닭똥집 한 점씩을 입에 밀어 넣었다.

'아… 고향의 맛.'

(불가리아를 떠나며)
▲ 여행자의 하루 (불가리아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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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콤하고도 달착지근한 맛이 온 몸으로 알싸하게 퍼져나갔다. 집 떠나 먹는 고향음식은 그냥 음식이 아니라고 했던가. 짧은 순간, 지난 시간 길 위에서의 피로도, 세금폭탄(?)을 안겨준 불가리아에 대한 미움도, 밤새 머리를 달구었던 아내를 향한 서운함도 한꺼번에 날아간 것만 같았다. 

"우와! 죽인다. 자기야, 많이 먹어!"
"어, 그래. 자기도."
"……"
"푸하하하."

그만 아내와 난 얼굴을 쳐다보며 웃고 말았다. 이틀간의 팽팽했던 신경전이 닭똥집 한 접시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단 3일. 여행 떠나 가장 짧게 체류했던 나라 불가리아가 여행자 부부에게 이제 어떻게 기억되리라는 건 분명했다. 

덧붙이는 글 | 양학용 기자는 결혼 10년째이던 해에 아내 김향미님과 함께 길을 떠나 2003년에서 2006년까지 2년 8개월 동안 아시아·유럽·북미·중남미·아프리카·중동·러시아 등 세계 47개국을 여행했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길 위에서 만난 세상 사람들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후, 여행에세이 <길은 사람사이로 흐른다>(예담)를 출간했습니다. 기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wetravelin



태그:#중고차여행, #자동차유럽여행, #불가리아, #동유럽, #닭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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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섬 제주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초등교사가 되었고, 가끔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자주 먼 곳으로 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한 967일 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묶어 낸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이후,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 <아이들, 길을 떠나 날다>, <여행자의 유혹>(공저), <라오스가 좋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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