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8월8일(금) 상쾌한 날씨

 

새벽에 일어났다. 어제 스콜성 호우 때문에 일몰을 제대로 못 보았기에 일출을 보기위해서였다. 숙소를 벗어나 옛 사원 터로 향했다. 20여분 정도 걸으니 완전히 시골풍경이 나타난다. 순식간에 몇 십 년 뒤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카주라호 인근에 건설된 수많은 사원 중 오늘 찾은 곳은 거의 파괴되고 벽체만 일부 남아 있는 곳이다. 일출을 기다렸으나 구름 낀 하늘은 오늘도 일출을 선사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조용히 인도의 농촌 마을을 감상해 본다.

 

새벽 6시 정도가 되니 여기저기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서서히 하루를 맞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이때 마을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일제히 들판으로 향했다. '벌써 일을 시작하는 것인가?' 모두들 한 손엔 작은 물통을 들고 있다. 그런데 풀숲에 적당히 떨어져서 주저앉는다. 이럴 수가! 집단으로 마을 옆 들판에 볼일을 보러 나온 것이 아닌가.

 

인도 농촌가정에는 집안에 화장실이 없었다. 그래서 인근 들판이 모두 화장실인 것이다. 뒤처리 또한 물로 한다. 친환경 시스템이다. 자연스럽게 먹고 자고 배설하는, 대자연과 함께하는 최상의 구성이다.  

 

뒤쳐져 보이고 불결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들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들의 불결함과 가진 것 없음을 동정하고 경시하며 본 내가 사실은 지구의 파괴자이자 간악한 약탈자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도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조금씩 인도에 동화되는 내 모습을 봤다. 토스트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 후 오늘은 자전거를 빌려 시골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도심에서 관광객에게 닳고 달은 인도인 말고, 시골 그 자체의 인도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1시간을 달리니, 광활한 평지가 나타났고 가난하지만 차분한 인도의 농촌풍경이 펼쳐졌다.

 

 

이들은 매우 수줍어했고 나를 퍽 신기하게 쳐다봤다. 커다란 눈망울은 맑고 투명했다. 비록 곤궁하긴 하지만 이들의 행복지수가 높을 수 있다는 것에 공감이 가기 시작한다. 이들의 때 묻지 않은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면서 굳이 화폐가 필요치 않아 보이는 이들에게 나를, 한국을 기억할 수 있는 조그만 선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공간에서 너무 많은 물질을 소비하고 있는 내가 괜히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카주라호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기차가 연결되지 않는 이곳에서 일단 버스 등을 이용하여 사트나로 간 뒤 야간열차를 타고 바라나시로 갈 계획이다. 우리는 숙소에서 같이 머문 여행객들과 함께 지프를 렌트하기로 했다. 도무지 이곳 버스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주라호에서 사트나까지 8인승 지프를 빌리는데 1400루피, 1인당 175루피씩 내면 훨씬 쾌적한 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여행을 앞두고 새벽에 보았던 총각식당으로 향했다. 카주라호에는 아씨식당, 전라도밥집, 총각식당 등 3곳의 한국식당이 있다. 모두 현지인이 운영하고 요리하는 곳이다.

 

작아 보이는 총각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2층 전망대가 압권이다. 서측사원 옆 호수가 한눈에 보이고 시원한 바람도 있는 그야말로 지금까지 식당중 여건이 가장 좋았다. 게다가 메뉴에 수제비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수제비를 인도에 와서 먹을 수 있다니 감개가 무량하다.

 

이곳은 총각이 어린 남동생과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이름만이 아닌 정말 총각식당인 것이다. 이곳에 있는 한식당에선 푹 삭힌 열무김치가 공통적으로 나온다. 기온 탓이라 생각된다. 이 식당의 특이한 점은 주문할 때마다 시장 보러 간다는 점이다. 수제비를 주문하니 밀가루와 감자를 사러가고, 생수를 주문하니 또 사러가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니 다시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 손님이라고 성환이와 나 둘뿐인데 수제비가 요리되어 나오는데 1시간은 걸린다. 이렇게 장사하고도 망하지 않는 나라는 아마 인도뿐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카주라호를 떠난다. 잔시에서 카주라호로 이동할 때 이미 열악한 도로사정을 경험했지만 이번에도 아찔한 순간의 연속이다. 포장부위는 1차선밖에 안 되는데 마주 오는 차와 정면충돌 하듯이 돌진하다가 충돌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비켜 지나간다. 저승을 오락가락한다. 이렇게 거칠게 운전하는 차량도 도로를 가로막는 소를 만나면 미련 없이 속도를 낮춘다.

 

2시간 반만에 저승길 같은 도로주행을 마치고 우리는 야간열차를 탈 수 있는 사트라에 도착했다. 오늘밤 기차를 타면 내일 새벽 바라나시에 도착한다. 밤차를 타야하기에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사트라는 작은 도시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여행객이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경유하는 도시지만 석식을 위해 둘러 본 시장 통은 여느 도시 못지않게 혼란스럽다. 성환이가 들뜬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계속 물건을 챙기지 못한다. 카주커리와 달(밀전병)을 시켜 든든히 저녁을 먹었다. 우리 카레보다 훨씬 걸죽하다.

 

야간열차는 저녁 7시 30분에 사트라를 출발하여 새벽 4시 40분에 바라나시 도착할 예정이다. 하지만 역시 연착을 하여 저녁 8시에 출발했다. 자리를 잡고 배낭을 쇠사슬로 고정시킨 후 알람을 맞추었다. 지형을 알 수 없고 단지 도착시간쯤해서 내릴 역을 확인해야 하니 기차에 타도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 앞좌석에 외국인 가족여행객이 앉아 있다. 삼남매를 데리고 배낭여행 중인 유럽쪽 친구들인 것 같았다. 어설픈 영어로 남편에게 말을 거니 자기는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영어를 할줄 모른다고 한다.

 

남의 나라말을 못한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영어를 못하면 바보가 되는 것처럼 쩔쩔매니, 굳건한 정체성이 없거나 사대주의적 사고가 저변에 깔려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그 후 나도 당당히 영어를 못한다고 표현했다. 그러니 현지인들이 오히려 쩔쩔매며 나에게 설명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것이 아닌가.

 

어쨌거나 이런 자성의 기회를 준 프랑스 가족과의 만남은 이번 여행의 또 다른 보너스이다. 결국 프랑스 가족과 바디랭귀지로 대충 어려움 없이 대화했다. 왜냐하면 그들과 우리는 같은 목적으로 인도를 방문했고 관심사도 같기 때문이리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광명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도, #가족여행, #베낭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지역내 소소하지만 살아있는 이야기를 함께 하고싶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