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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학생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여학생들이 모여있고 왼쪽으로는 정지동작으로 인간 조각상이 된 학생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성균관대 축제 키다리 학생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여학생들이 모여있고 왼쪽으로는 정지동작으로 인간 조각상이 된 학생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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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살랑살랑 겨드랑이를 간질이는 요즘, 대학가는 축제가 한창이에요. 대학 다닐 때엔 비싼 돈 들여 연예인들 부르는 축제에 흥미를 못 느꼈고 졸업한 뒤엔 대학 소식과는 조금 멀어진지라 축제기간인지도 몰랐어요.

마침 성균관대학에 있는 지인이 9월 30일에 주점을 연다고 초대를 했어요. 대학생들과 이야기도 해보고 싶고 오랜 만에 '대학분위기'를 느껴 보려고 일찍 도착해서 학교를 한 바퀴 둘러봤지요.

고학년은 관심 없는 썰렁한 축제

가요제에 학생이 나와서 열창을 하는데 관객은 많지 않네요. 비어있는 관개석 만큼 마음이 조금 허전해지네요.
▲ 비어있는 관객석 가요제에 학생이 나와서 열창을 하는데 관객은 많지 않네요. 비어있는 관개석 만큼 마음이 조금 허전해지네요.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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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크더군요. 비탈진 길을 오르며 여기저기 둘러보고 학생들 표정을 살펴보았지요. 곳곳에서 행사를 하는데 참여하는 학생들은 생각보다 적더군요. 아직 학교를 다니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어요. 학교 축제인데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지, 나 졸업반이잖아."

대학교 축제가 유명무실된 지는 꽤 되었지만 새삼 느낌이 왔어요. 취직을 앞둔 친구에게 축제는 '남의 일'이겠지요. 연예인이 오지 않으면 썰렁한 축제인 것은 예전과 비슷하더군요. 연예인은 이날 오지 않고 다음날 오거든요. 요즘은 새내기 때부터 학점관리에 열을 올리고 '영어몰입'을 하지 않으면 '이상한 대학생' 취급받는다는 게 틀린 말 같지 않더군요.

발길을 돌려 주점으로 갔어요. 젊어 보이는 학생들 사이로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있더군요. 인근에 사시는 분들인가 싶어서 주점으로 초대를 한 지인에게 물어봤더니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이라고 하네요. 수익금은 포이동 266번지에 후원을 한다고 많이 사먹으라고 웃으며 귀띔을 하네요.

포이동 266번지에 대한 특별한 기억

대학생들이 부르는 최신 유행가를 배경음악삼아 포이동 주민들이 술자리를 갖고 있네요. 학생들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운지 함박 웃음을 지으시네요.
▲ 포이동266번지 주민과 대학생들 대학생들이 부르는 최신 유행가를 배경음악삼아 포이동 주민들이 술자리를 갖고 있네요. 학생들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운지 함박 웃음을 지으시네요.
ⓒ 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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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 266번지란
포이동 266번지는 비닐촌과 판자촌으로 이뤄진 마을이다. 1981년 정부가 도시 빈민들을 모아 자활근로대를 조직하면서 만들어진 마을로 1988년 266번지가 됐다.

그동안 강남구청은 토지구획정리사업에 따라 지번이 폐쇄된 곳이라는 이유로 주민등록 전입조치를 하지 않아, 주민들은 취학, 취업 등 여러 면에서 불편을 겪어왔다. 2004년 한 부부가 목숨을 끊기도 한 이 마을에 대해 사람들은 '한국의 우토로'라는 별명을 붙였다.
저는 포이동 266번지 인근 중학교를 다녔어요. 제가 중학생일 때는 타워펠리스를 비롯해 여러 건물들이 있는 주상복합단지를 만들려고 공터를 다지고 있었고 "일조권 침해, 교통 대란"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주변 아파트에 크게 내걸려 있었지요. 

당시 포이동 266번지, 학교 인근 야산과 언덕 '비닐하우스'에 산다고 뒷담화를 했던 아이들, 그리고 포이동 인근 '구룡 마을'에 사는 친구들이 기억나더군요. 반에 하나 또는 둘이 있던 그 친구들은 조용하였어요. 반 아이들 모두가 '거기 사는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공부를 잘하지도 운동을 잘하지도 않았던 존재감 없던 그 아이들.

옛 생각에 잠시 젖어보았어요. 대학생들이 그룹 <빅뱅>의 인기곡 '마지막 인사'를 부르고,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이 학생들 노래를 배경음악 삼아 오붓한 술자리를 갖는 모습이 묘하네요. 20대의 댄스 리듬과 정서에도 사회 약자에 대한 배려가 녹아있는 거 같았어요.

술자리를 끝내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떠나는 설 아무개씨에게 학생들의 행동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학생들이 대견하고 감격스럽습니다. 저희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라며 고마움을 나타내시더군요.

아직 남아있다! 사회과학 학회

지인에게 그때서야 이 모임이 어떤 모임인지 물어보았지요. 요즘 대학가에서 취직동아리 열풍에 밀려 '박물관의 유물'이 된 사회과학 학회가 주최하는 주점이더군요. 학회 이름은 무빙(無氷)입니다. '얼어있는 상상력을 깨뜨리자'는 취지로 사회 과학책을 읽고 세미나를 한다고 하네요. 살아있는 화석을 만난 것처럼 반가움에 학회장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나눴지요.

유준선씨는 운동권이 사라진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의 사회 참여가 약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현재 분위기를 전해줬지요.
▲ 무빙 학회장 유준선씨 유준선씨는 운동권이 사라진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의 사회 참여가 약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현재 분위기를 전해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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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장 07학번 유준선씨는 "1년에 한 번 이상 포이동 266번지를 찾아가 피켓도 만들고 행사에도 참여하려고 해요. 이렇게 주점을 연 이유도 대학생으로서 사회를 고민하고 소통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네요.

386과 88만원 세대의 만남

일행 중에는 이 학교 82학번인 박현진씨가 있었어요. 82학번과 07학번, 세대와 시간을 뛰어넘어 같이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이야기를 나누네요. 인생과 사회에 대해서, 달라진 시대에 대학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치열한 대화가 이루어졌지요. 386세대와 88만원 세대의 만남은 진지하고 정감있게 이루어졌지요. 서로의 아쉬운 점과 바라는 점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토로를 하며 교감을 하네요.

선배는 자신이 다닐 적 학교 분위기와 사회 환경에 대해 말하고 요즘 대학생들에 대해 아쉬운 점을 얘기하며 따뜻한 격려를 했지요. 후배는 격려를 감사히 받아들이며 달라진 환경에서도 대학생으로서 지녀야 할 기상에 대해 얘기하네요.
▲ 82학번과 07학번 선배는 자신이 다닐 적 학교 분위기와 사회 환경에 대해 말하고 요즘 대학생들에 대해 아쉬운 점을 얘기하며 따뜻한 격려를 했지요. 후배는 격려를 감사히 받아들이며 달라진 환경에서도 대학생으로서 지녀야 할 기상에 대해 얘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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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가 무르익자 새내기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요. 기꺼이 초대에 응해준 08학번 새내기 이창규씨는 차분하게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고등학교 때만 해도 포이동 주민이나 기륭전자 비정규직 같은 문제는 전혀 몰랐어요. 대학 와서 몰랐던 진실들에 눈을 뜨게 되었죠."

25만원 하는 고시원에서 생활한다는 그는 요즘 대학생이라고 사회의식이 없다는 우려에 대해 사회 구조상 취직경쟁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라며 대학생들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하네요. 불안한 앞날이지만 공부에 뜻을 두고 있는 그의 밝은 웃음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오랜 만에 대학 주점에 앉아서 대학생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해보았어요. 학생이 없는 썰렁한 축제였지만 '개인화'된 학생들은 진지하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지요. 심야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취기는 오르지 않고 학생들의 푸르른 눈만 자꾸 생각나네요.

새내기로서 풋풋하고 솔직한 심경과 대학교 생활을 이야기해주었지요. 그의 맑은 눈을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어요.
▲ 08학번 새내기 이창규씨 새내기로서 풋풋하고 솔직한 심경과 대학교 생활을 이야기해주었지요. 그의 맑은 눈을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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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성균관대, #포이동266번지, #새내기, #대학주점, #대학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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