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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삼회'라고 아실는지? 아마 모를 것이다. 53살 먹은 중늙은이 아줌마들이 만든 단체다. 같은 지역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사들이 가끔 모인다. 이 목사 모임은 비록 세 명의 목사만 모여도 소위 '장감성(장로교, 감리교, 성결교)'이 다 모인다. 교회에서는 '장감성'만 모이면 실은 에큐메니칼 운동(교회연합운동)이 되는 것인데, 우린 모일 때마다 그 거창한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셈이다.

 

나이도 50대 중반으로 고만고만한지라 어울리면 늘 화기애애하다. 비록 교단은 다르지만 목회라는 공동관심사가 있고, 같은 또래들이다 보니 자식들 이야기가 나와도 그렇고, 지역 이야기가 나와도 그렇고, 성도들 이야기가 나와도 그렇고, 손발이 잘 맞는다.

 

'산보회'가 '산악회'가 되던 날

 

나이나 지역이 같다 하여도 성격이 다르거나 관심사, 혹은 추구하는 신앙노선이 다르면 이리 잘 어울리기 힘들다. 의외로 목회자들 모임이 그리 원활한 경우가 흔치 않다. 그런데 우리 세 목사가 모이는 모임은 참 잘도 맞는다. 출신교단, 출신학교, 출신고향이 전부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목사들이 맞아도 아내들이 맞지 않으면 아름다운 모임이 힘든데, 세 가족의 아내들은 남편들보다 더 잘 맞는다. 거기다 그들은 나이까지 53살로 같다. 지난 번 모임이 있을 때 이 '장감성' 목사의 아내들이 일을 냈다. 무슨 계 비슷한 걸 결성했다. 아이들이 시집장가 갈 때 돈을 모았다가 태워주기로 했단다.

 

어제 그 첫 번째 모임을 부부 동반으로 가진 것이다. 앞으로도 죽 부부 동반 모임이 될 것 같다. 이번에는 인터넷에서 뒤져 알게 된 묘봉이란 속리산의 지산이 목적지였다. 야트막한 야산으로 산보 가는 정도에서 이번에 업그레이드하여 산다운 산(?)으로 등산을 간 것이다.

 

"이제 산보회가 산악회가 되는 거예요? 이렇게 험한 산을 타는데 뭐. 이제 당당한 산악회원들이지."

 

밧줄에 매달려 가까스로 바위를 오른 우리 일행을 향하여 짓궂은 박 목사 한마디 한다. 우리는 그의 말에 모두 동의하며 함박웃음을 웃었다. 정말 그의 말대로 험하기로 이만큼 한 산이 없겠다 싶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산허리에 걸린 구름, 정말 장관이다.

 

업그레이드된 '산악회원들'... "악!" 소리치다

 

바위를 가운데 놓고 돌고 또 돌기를 몇 번 하다 하산했는데 그러고 보니 안내가 너무 부족하다. 제대로 목표인 묘봉에는 가기나 한 것인지도 모른 채 하산을 하고 말았으니. 처음 입구에는 그럴 듯한 안내표지판도 있고, 여느 산에나 있는 안내지도도 있었는데 막상 정상쯤에 이르니 어디가 토끼봉이고, 상학봉이고, 묘봉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이 지난 자취가 만든 오솔길을 따라 걷는 게 유일한 길안내일 뿐, 어디에도 표지판 하나 세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안내하는 것이 없다. 입장료도 없이(실은 문화재관람료이지만) 공짜로 들어선 기암괴석의 절경이니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이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길안내 표지판만 잘 되어 있어도 이리 헤매지는 않을 터인데. "어디로 가요?" 박 목사가 외치면, "글쎄 이리 가는 걸까요? 아니면 저쪽으로 가야 하는 걸까요?" 내가 받고, "너무 길안내가 안 되어 있네요" 하며 장 목사가 받는다. 소경이 소경에게 길을 묻는 격이니, 누구 하나 시원한 답을 내놓을 사람이 없다.

 

그렇게 주고받고 하면서 큰 바위를 한 바퀴 돈다. 또 다른 바위산을 돈다. 아무리 돌아도 바위 위로 올라가는 길은 없다. 낭떠러지에 밧줄이 하나 매어 있기는 한데 그리로는 우리 일행이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그런 코스다. 전문 산악인들도 장비를 갖추지 않으면 오를 수 없는 암벽이다.

 

아무리 방금 업그레이드된 막강파워 갖춘 새 '산악회원들'이라고 할지라도 속수무책으로 이리저리 돌기만 하다, "악!" 소리 한번 치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손에 손을 잡고 끌어주며 잡아주며 자연을 찬미하며 내려왔다.

 

가을, 바람, 하늘, 바위, 그리고 행복

 

까마귀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까악까악" 하며 우릴 반겨준다. 우리가 지른 "악!" 소리에 대한 화답치고는 그럴싸하다. 사람이 그리웠던지 까마귀가 어느 등산객이 버린 빈 PET물병을 우리에게로 굴려 보낸다. "어, 저놈 봐라!" 누군가 이리 외치는 소리에 까마귀를 보니 우리하고 동무하고 놀자는 기세다.

 

흉조로만 생각했던 까마귀조차 기암괴석과 가을 하늘, 바람이 만들어 준 자연 안에서는 이리 친구가 되는 것이려니. 하산을 멈추고 너럭바위에 둘러앉아 가져 온 먹성들을 폈다. 푸짐하다. 누구는 김밥을 말아왔고, 누구는 포도며 사과를 싸왔다. 또 어떤 이는 떡을 가져왔다.

 

고된 등반에 허술해진 배를 그렇게 채우고 나니, 구절초 흐드러진 걸 보고 아내가 구절초 꽃을 뜯으라고 채근이다. 자신은 힘드니 나보고 뜯으라나. 어쩌겠는가. 가정의 화평을 위하여 잠시 앉아 일행이 쉬는 동안 지천에 깔린 구절초 꽃을 조금 뜯었다.

 

그 향기가 코끝에 안연하다. 바위에 붙은 담쟁이넝쿨의 색이 이미 가을의 한복판을 달려가며 빨간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바위 밑으로는 알싸한 사연들을 담은 나무랑 풀잎들이 아련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헤치고 우릴 올려다 본다.

 

아래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다. 오줌을 찔끔 지릴 정도다. 큼지막한 바위가 공중에 뜬 것 같다. 이렇게 멋있는 바위가 또 있을까. 하늘은 우리가 닿기에는 너무 먼 곳에서 구름들로 달리기 시합을 시키고 있다. 이젠 가을이 하늘마저 경쟁의 장으로 몰아낸 셈이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바위는 예술 그 자체다. 저쪽 건너편의 바위를 보아도 절경이요, 내가 지금 막 돌아 든 바위를 보아도 절경이다. 웅장한 바위 둘이 비켜 서 있는 틈으로 들어가 저쪽의 바위 꼭대기에서 무언가 열심히 먹는 등산객들을 보고 묻는다.

 

"거기가 어디예요?"

"여긴 토끼봉예요."

"묘봉은 어디로 가요?"

"그 뒤로 돌아서 가야 하는 걸로 아는데요."

"그래요? 그럼,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죠?"

"글쎄요. 우리도 모르겠는데요."

 

참으로 희한한 대화다. 안내표지판만 있으면 이런 우스운 대화는 없었으리라. 우리가 목표로 한 묘봉을 간 것인지 못 간 것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세 부부의 등반은 정말 행복한 것이었다.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알아야만 꼭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어디에 있든지, 지금 얼마나 가고 있든지, 그 과정 속에 전개되고 있는 아름다움을 보라. 거기 행복이 도사리고 있다. '오삼회'의 이번 등산은 바로 과정 속에서 만난 자연과 가을의 교차 가운데 행복이 들었다는 것을 실감한 등반이었다.

 

 

덧붙이는 글 | * 속리산 묘봉 등반기는 9월 29일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이기사는 갓피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묘봉, #등산, #산악회, #상학봉, #속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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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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