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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7(목) 흐림 간만에 견딜만한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5시 40분에 힌두교 예배인 푸자를 보기 위해서이다.

 

카주라호 서측사원 옆에 있는 시바사원을 가니 이미 여러 명이 소원을 빌며 각자의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링가에 물을 뿌리며 꽃을 바치고 간절히 기도를 한다. 저 여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할까.

 

빈부의 격차도 크고 먹을거리 등이 피폐한 이곳에서 힌두교는 사회를 안정시키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종교는 나약한 인간성을 토대로 시작되었으며, 통치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적절히 도입하면서 번성되는 것이 아닌가. 인도 토속민족의 국가인 찬델라왕조에서 건립한 카주라호 사원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리라.

 

거대하고 호화스러운 사원을 신분과 관계없이 공유하며 사회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원천봉쇄해 버리는 것이다.

 

푸자를 본 후 짜이 한 잔을 먹고 서측사원군을 향했다. 이제 현지인들이 매일같이 즐기는 짜이가 익숙해져 간다. 실크로드와 함께 차마고도를 통해 전래된 녹차가 인도인의 삶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부족한 섭생에 우유와 녹차가 섞인 짜이는 적당한 단백질과 비타민을 공급해주는 중요한 음료인 것이다. 게다가 한 잔에 1~5루피 정도하니 십 원짜리 영양식인 것이다.

 

서측사원의 입장료는 250루피이다. 우리 돈으로 6,000원이 넘는 거액이다. 그럼에도 비쌀 경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음을 알기에 1,000루피의 지폐를 내밀었다. 인도라는 동네는 고액권을 쓰기에 매우 불편한 나라이다. 거스름돈이 없으면 아예 받지를 않기 때문이다. 찢어진 돈도 받지를 않고, 그러다 보니 거스름돈으로 대충 받은 돈이 찢어져 있으면 나중에 사용하려 해도 휴지취급을 받는다. 따라서 돈을 주고받을 때마다 꼼꼼히 살펴야 한다. 이래저래 이곳은 익숙해지기 어려운 곳이다.

 

거액 1,000루피를 내미니 매표소 직원이 한참 위폐 여부를 감별한다. 괜히 지은 죄도 없이 무안하다. 그래서 나도 건네받은 거스름돈을 그 앞에서 한참 감별하는 시늉을 하니 기분 나쁜 표정으로 "No Problem"을 외친다. '왜! 너도 기분 나쁘지? ㅋㅋㅋ'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간 사원은 크게 5개 건축물로 구성되어 있다. 소문난 미투나상을 구경하려고 눈을 부라려본다. 통상 조각을 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는 쉽게 접하는 상대를 모델로 삼는데 이곳 조각들은 한결같이 쭉쭉빵빵에 글래머들이다. 내가 인도에 와서 본 여인들은 깡마르고 볼품이 없었는데 이곳 사원의 미투나상의 모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수많은 글래머 미투나상들 틈에 드디어 남녀교합상을 찾았다. 천년만년 유지되라고 돌을 깎아 조각을 하는 것인데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성행위 조각이 지천에 널려 있다. 어른이 보기에도 얼굴이 붉어지는 저 과감하고 변태적인 체위들, 그중에는 말과 관계를 하는 수간조각까지 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사실적인 조각들은 실제로 눈앞에서 남녀가 관계를 가지는 듯하다. 환희에 찬 여자의 표정, 기쁨에 겨워 키스하는 장면들은 카사노바도 울고 갈 지경이다.

 

이러한 낮 뜨거운 조각을 신성한 사원에 돌로 표현하여 영구히 남게 한 이유가 무엇인가. 역시 '인도'이기 때문인가? 이곳 미투나상이 보여주는 각종 자세들은 현재의 색골이라도 엄두내지 못할 것 투성이다.

 

혹자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를 통해 우주의 진리를 깨치고 도에 이르는 수행의 한 행태라고도 이야기 하는데 정말 남녀간의 행위를 도 닦는 마음으로 정진할 수 있을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도라는 곳은 애초에 '이해'라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곳이라는 믿음만 굳어져간다. 값비싼 입장료의 본전 생각을 하면서 이러한 미투나상에 대한 심층(?) 관람을 했다. 집단난교 조각이 있는 곳에서는 나이 지긋한 인도 어르신들도 소리 죽여 킥킥 웃는다. 원초적일수록 만국공통인 모양이다.

 

서측사원군을 뒤로 하고 우리는 동측사원군을 찾기로 했다. 오토릭사 50루피를 부르는 것을 성환이에게 체험차 싸이클릭사를 40루피씩 2대를 계약했다. 사실은 나중에 싸이클릭사를 지겹도록 타야 하는 것인데…….

 

우리 식구들은 하나같이 한 덩치 하기 때문에 한 대에 다 탈수가 없다. 내가 탄 릭사는 젊은 친구가 몰고 집사람과 성환이가 탄 릭사는 보기에도 안쓰러운 깡마른 노인이 몰고 간다.

 

 미안하다고 노인의 릭사를 외면하면 그 노인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 뿐이다. 돈을 벌러 나왔는데 벌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인원배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출발 후 금방 드러났다. 내가 탄 릭사는 시원시원 잘 달리는데 두 덩치를 태운 노인은 매우 힘들어한다. 결국 오는 길에는 반대로 타서 노인을 조금 배려(?)를 했다.

 

하지만 동측사원군을 다녀온 뒤 릭사값을 계산하는데 노인네가 먼저 50루피를 요구한다. 이곳 카주라호는 관광객이 많이 찾아 바가지 상혼이 판을 친다는데, 시골 할아버지 같아 측은지심을 가졌었는데 정이 뚝 떨어진다. 10루피 더 준다 해도 우리 돈으로 250원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 지침서에서 누누이 지적했던 규칙을 지키라는 말에 단호히 거절하고 돌아섰다.

 

서측사원이 남녀교합상으로 시선을 끌었는데 동측사원은 자이나교의 사원이 중심에 있었다. 자이나교는 발가벗고 수행하는 것이 특징인 모양이다. 모든 불상의 모습을 하고 있는 조각이 하나같이 발가벗겨져 있으며 남성의 성기까지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다. 참으로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원 순례를 마치니 허기가 매우 진다. 우리는 이곳에서 전통도 있고 인터넷상으로도 유명세를 탄다는 '아씨식당'을 찾았다. 원래 인도식당이었다가 한국관광객이 많아지고 마침 주인집 삼형제 중 첫째가 배낭여행 온 한국 처자와 결혼한 것을 기화로 한국식당으로 변신한 곳이다.

 

지금은 한국며느리가 남편을 따라 이스라엘로 가서 살고 있으며 남은 두 형제가 요리법을 배워서 운영을 하고 있다. 막내가 자기 한국이름이 '박진영'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러고 보니 가수 박진영과 매우 닮았다. 메뉴판을 보니 어지간한 한식요리에 닭백숙까지 준비가 된단다.

 

기가 막히다. 개운함을 위해 나는 얼큰한 라면을 시켰고 성환이는 라볶기를, 집사람은 김치볶음밥을 시켰다. 같은 맛은 아니지만 느글거리는 속을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계속된 강행군에 지친 심신도 달랠 겸 카주라호에서 모처럼 휴식을 취해본다. 특별한 관광 없이 낮잠도 자고 일몰도 구경하며 인도에서의 게으름을 피워본다. 깜박 선잠이 들었는데 천둥소리에 잠을 깼다. 스콜이다. 멀쩡했던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진다. 주먹만한 빗줄기에 천둥번개가 동반한 것이다.

 

현재 인도의 날씨는 전형적인 몬순기후의 우기로서 하루에 두세 차례 이처럼 반짝 비가 쏟아진다. 주르륵 내리는 비를 보니 소주 생각이 간절하다. 성환이는 현지 아이들과 비를 맞으며 신나게 뛰어 다니고 있다. 저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인데…….

 

한참을 지켜보다 성환이를 불러 목욕을 시킨 후 아씨 식당을 다시 찾았다.

 

점심때 눈여겨보았던 닭볶음탕을 시켰다. 맛을 보니 칼칼한 게 안줏감으로 딱이다. 인도소주를 시켰다. 인도 특유의 향은 강하지만 취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늘은 마음껏 게으름을 피운 행복한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광명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도, #가족여행, #베낭여행, #카주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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